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과 바이든 전 부통령의 입장은 극명하게 갈린다. 트럼프는 의료 보험과 보건 분야에서 연방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싶어하는 반면, 바이든은 이를 확대하기를 원한다. 의료 체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의료 보험 가입자 확대, 의료비 지출 감소, 필수 의약품의 가격 감소 등의 목적을 이루는데 구체적 방안은 모두 다르다. 미국의 의료 체계의 문제점, 그리고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후보자들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자.
미국은 전세계 어떤 국가보다도 의료 서비스에 많은 비용을 지출한다. 평균적으로 다른 OECD 국가에 비해 1인당 두 배 이상의 공공 및 민간 자금을 쓰는 수준이다. GDP의 무려 18% 가까이 의료비에 쓰인다. 이는 미국이 OECD 국가 중 멕시코와 함께 보편적 의료보험 제도가 없는 나라 중 하나라는 데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미국인은 주로 고용주에 의존하여 개인 의료 보험을 제공 받으며, 정부가 제공하는 의료보험 체계는 노인, 장애인, 일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다. 그리고 이러한 민간 및 공공 의료 보험 체계가 보장하는 혜택은 서비스에 따라 천차만별이기에, 의료 접근성과 실제 건강 수준과 관련한 인구 별 불평등이 심각하다.
미국은 인구의 30%에만 적용되는 세 가지 국가 차원의 의료보험 제도가 있다.
메디케어(Medicare)는 연방 정부에서 관리하는 사회보장제도로, 65세 이상 노인과 일부 장애가 있는 사람을 위한 의료보험이다.
메디케이드(Medicaid)는 주 정부에서 관리하는 제도로, 민간 보험에 가입할 형편이 없는 가난한 사람(주 마다 기준이 다름)에게 제공되는 의료보험이다.
아동 건강보험 프로그램(Children's Health Insurance Program, CHIP)은 소득이 높아 메디케이드에 가입하지못한 가정에 한해 19세까지의 아동의 의료보험을 보장하는 제도다.
미국인의 6명 중 1명(4천8백만명)이 보험에 가입되지 않았던 2010년, 오바마케어로 널리 알려진 환자 보호 및 적정부담보험법이 승인되었다. 보험 규제 개혁과 개인 및 고용주에게 보험 구매 의무를 부여함으로써 의료보험 적용 범위를 늘리는 것이 목적이었다.
오바마케어의 방대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본래는 2010년에 승인된 법이지만 의무가입 및 가입 거부시 벌금을 징수하기 때문에 미국 국민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 주 정부의 의사를 무시하는 강제적인 법이라는 점 등 때문에 공화당을 필두로 한 반대 세력과의 갈등으로 2013년 10월에는 연방 정부의 정부 폐쇄까지 일어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결국 극적인 의회 타결 끝에 오바마케어가 시행되기 시작했다.
미국은 현재 개인, 민간 보험사, 고용주, 그리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가 의료비를 나누어 부담한다. 이에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와 엘리자베스 워렌(Elizabeth Warren) 민주당 경선 후보자를 비롯한 사람들은 미국도 한국, 영국, 캐나다, 호주, 그리고 대다수의 유럽 국가와 같이 보편적 의료보험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적 차원의 보편적 의료보험 제도를 설립한다면, 간단하게 얘기해서 전국민이 낸 세금으로 전국민의 의료비를 충당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 의료보험, 오바마케어,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는 새로운 보험제도가 대신하게 된다. 이에 의료보험 산업에 국가가 전격적으로 개입하고 아예 대신하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 과도한 세금 인상으로 국민이 보험료 부담을 더 지게되는 것은 아닐지 논란이 크다.
진보 성향의 민주당에서 이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점차 늘고 있는 추세고, 미국인의 62%가 보편적 의료보험제를 지지하지만, 트럼프와 바이든 후보 모두 공식적으로 반대의사를 밝혔다.
보험 가입자 숫자가 많아졌다: 오바마케어의 입법으로 2천만명이 넘는 사람이 보험에 가입하게 되면서, 정책 적용 이전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해 사망하는 국민의 수를 대폭 낮추는 효과를 가져왔다.
또한, 기존에 있던 메디케이드를 확장하여 빈곤층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 빈곤층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보험이 부담이 되던 중산층까지 혜택을 볼 수 있도록 도왔다. 덕분에 덕분에 뉴욕 주정부는 연방 정부의 도움을 받아 메디케이드를 빈곤선 200%까지 확대할 수 있었고, 28만 6천 명의 뉴욕 주민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됐다. 또한 오바마케어로 연방정부의 지원이 확대된 이후로 주정부의 재정 부담이 줄어들어, 주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부담을 이유로 오바마케어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정부의 의료비 지출을 줄인다: 무엇보다 대대적인 의료 개혁으로 계속 증가하던 정부의 의료비 지출을 막을 수 있었고, 미국 의회 예산정책처(CBO)는 오바마케어가 2012년부터 2020년 사이에 약 2천억 달러(220조원)에 이르는 지출 절감을 가져올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메디케이드 확장을 반대하는 주 정부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지출 절감은 2천억 달러에서 8백억 달러로 하향 조정됐다.
오바마케어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이와 같은 지출 절감은 단순히 높은 세금 인상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비록 오바마케어 법안의 결과로 상위 5%의 세금을 인상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오바마케어가 9,400억 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도 정부 부채를 오히려 감소시킬 수 있던 이유는 여태까지 무보험으로 병이 경미할 때 진단받지 못하고 중증으로 발전되고 나서야 겨우 병원을 찾았던 사람들의 숫자를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바마케어가 통과되기 이전에는 이 비용이 모두 메디케어 프로그램으로 나갔지만, 오바마케어로 무보험자 수가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정부와 병원은 타협하여 약 3,350억 달러의 메디케어 비용을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즉, 오바마케어는 기존의 정부 프로그램을 보다 더 효율적인 정책을 제시하여 전체적 의료 비용을 줄인 것이다. 이외에도 오바마케어로 제약 회사의 매출이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자, 정부는 제약 회사와 협상하여 제약 회사가 1,070억 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불하도록 만들었다. 또한 세금 인상은 상위 5%에 부과됐으며, 대부분의 인상은 상위 1%에 집중됐다.
보험료를 낮췄다: 오바마케어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이 정책이 본래 입법 취지와는 어긋난 결과를 낳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원래도 비싸기로 악명 높았던 미국의 의료보험은 오바마케어 시행 이후 더 올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의회 예산정책처의 분석 결과에 따르면 오바마케어 덕분에 보험률 증가율이 느려졌다고 한다. 무엇보다 오바마케어로 인해서 보험이 올랐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미국가 보험료이 계속해서 증가해왔다는 사실을 고의적으로 누락시키고 있다. 실제로 오바마케어 도입 이전에 보험료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었으며, 오히려 도입 이후에 의료 보험 증가율은 떨어졌다.
이렇게 보험료를 전체적으로 낮출 수 있었던 이유는, 보험 가입을 의무화했기 때문이다. 현재는 질병이 없어 건강하지만 미래에 아플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이가 어려 보험에 가입할 인센티브가 적은 사람들을 모두 보험에 가입시켜, 전국민의 보험료를 내린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침범한다: 국민 모두에게 보험 가입을 의무화하는 것은 명백한 선택의 자유 침해다. 그래서 2019년 1월, 미국의 상하원 의회에서 보험 무가입자에게 벌금을 내게 하는 조항을 삭제했다.
의료 서비스의 선택권을 줄인다: 보험에 이미 가입되어 있고 주치의가 있는 중산 계층 미국 시민들이 기존에 이용하던 보험을 취소당하고 강제로 오바마케어를 가입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경우가 있다. 또한 의사도 마음대로 지정할 수 없을 뿐더러 보험료가 전에 내던 금액보다 증가했다. 오바마케어 입법으로 인해 보험사들이 의무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혜택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업 취지에 공감해 동참했던 애트나, 유나이티드헬스, 휴매나 등 건강보험 회사들이 최근 들어 손실을 이유로 철수하기 시작했고, 일부 지역에선 오바마케어 가입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문제는 오바마케어를 폐지하려는 공화당이나 트럼프 정권 입장에서, 이를 대신할 제도를 전혀 준비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2016년에 당선 되자마자 오바마케어를 없애겠다고 공언했고, 2017년 1월부터 대안책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했는데 지금도 없는 상황이다. 일단 무작정 오바마케어를 폐지했다간 현재 오바마케어의 혜택을 받는 2천만명의 미국 시민이 또 다시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 내몰리게 되므로, 당분간은 정책이 유지될 전망이다. 분명 오바마케어는 여러가지 논란이 있으나 의료사각지대 해소라는 측면에서 확실하게 진일보한 정책이기 때문에, 오바마케어를 대신할 정책이 마련되기 전까지 완전 폐지는 어려울 전망이다. 트럼프는 당선인 시절 오바마와 대담하면서, 26세 이하 자녀가 부모의 건강보험 혜택을 보게 하고, 건강상 이유로 가입 거절을 금지한다는 오바마케어의 조항은 '좋은 것'으로 간주하여 존치하겠다는 의향을 밝힌 바 있다.
전국민에게 의료보험을 제공할 수 있다
국가적 의료비 지출을 줄일 것이다
세금 부담이 너무 심해질 것이다
의료 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것이다
개인의 의료 서비스 선택권이 줄어든다
의료보험 산업을 없애 수많은 사람의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