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시 확대
교육부는 2019년 11월 서울 소재 16개 대학의 정시 비율을 40% 이상으로 올리는 내용의 '대입 공정성 개선방안'을 내놓았다. 현 고2가 대학에 들어가는 2023학년도 대입부터는 권고가 아니라 반드시 정시 비율이 40%를 넘어야 한다.
정시는 통상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반영 비율이 50%를 넘는 수능 위주 전형을 뜻한다. 수시는 학교생활기록부 내용을 입학사정관이 평가하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대표된다.
2019년 조국 전 법무부장관 딸의 부정입학 의혹이 불거지자 이 같은 방안이 나왔다. 또한 영재·발명 교육 실적, 자율 동아리 활동, 수상 경력과 개인 봉사활동 실적 등 정규교육과정 외 활동들은 2024학년도 대입부터 반영하지 않는다.
올해 입시였던 2021학년도 대입에서 4년제 대학 모집인원 총 34만7447명 가운데 77%인 26만774명을 수시로 뽑았다. 나머지 23%인 8만73명은 정시로 모집했다. 정시는 수능 위주 전형이 88.4%(7만771명)으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이어 실기 위주 전형이 8356명(10.4%), 나머지 946명은 학생부전형 등으로 선발한다.
공정성 방안에 따라 정시 40% 이상 확대 권고를 받은 16개 대학은 정시 수능 위주 전형 비율이 평균 29%였지만 2022학년도에는 37.6%로 올린다. 2023학년도에는 40.6%가 된다. 이처럼 주요 대학이 정시 비율을 늘리기 시작하면 다른 대학들도 따라가기 마련이라 정시 확대 기조는 계속될 전망이다.
교육계에서는 찬반 논란이 지금도 뜨겁다. 문제풀이식 교육의 문제점을 짚는 쪽과 수시의 불공정성을 논하는 쪽의 대립이 첨예하다. 학생들도 마찬가지.
논리
정시는 내신+수능 점수를 바탕으로 학생을 평가하기 때문에 외부 요인이 개입할 여지가 상대적으로 적다. 내신은 학교 수업만 잘 들으면 따라갈 수 있으며 수능 또한 EBS와 연계되기 때문에 충실히 공부하면 고득점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내신 학원과 수능특강, 과외 등 정시 준비를 돕는 사교육이 있다. 하지만 학종으로 대표되는 수시 준비를 위한 비교과 학습이나 자기소개서 컨설팅에 비하면 비용이 낮다.
어떤 부모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치가 고액 과외라고 치면 수시는 자기소개서 컨설팅부터 대회 활동 컨설팅, 대회 입상 노하우 전수 등 훨씬 많은 사교육을 부록처럼 더 붙일 수 있다. 사교육 상품이 훨씬 많아 이때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대거 작용하게 된다.
경제적 측면을 떠나서도 수시 준비를 위해서는 학생 역량 자체가 아니라 부모의 백그라운드가 작용한다. 정시는 부모가 시험장에 들어가서 대신 쳐줄 수도 없다. 하지만 수시는 이른바 '부모 찬스'가 쓰일 수 있다.
예시
예를 들어 부가 의사, 판사 등 고위직인 학생과 평범한 회사원인 경우가 있다고 치자.
의사 부모를 둔 학생은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거나 환자 상대 인터뷰, 간호 체험 등 관련 비교과 활동을 할 수 있다. 반대로 월급쟁이인 부모의 회사에서 인터뷰를 하거나 여느 활동을 하기는 쉽지 않을 테다. 여기서 차이가 난다. 한 학생은 학생부가 빵빵하게 채워지지만 반대의 경우는 그렇지 못하다.
논리
정시가 수시에 비해 외부 요인이 적다는 건 낭설이다. 오히려 사교육 영향이 더 커진다. 사교육에 따라 정시는 점수를 쉽게 올릴 수 있다. 부모의 지위 등 외부 요인 또한 작용한다.
정시는 강남이나 목동 같은 사교육 특구나 고소득층에게 유리하다는 게 중론이다. 상위권 대학 진학률을 보면 서울 강남구가 높다. 문제를 반복해 풀면 수능 점수가 오를 가능성이 큰데, 여기에 족집게 과외나 1타강사 강의 등 사교육비를 투입할수록 수능 점수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 학생부 내용을 충실히 채우는 것보다 쉽다.
또한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은 n수를 통해 가는 경우가 많다. 이때 부모의 경제적 요인이 작용한다. 한편에서는 "전국에서 서울대를 가장 많이 보내는 학교는 고등학교가 아니라 그 아래에 있는 대학"이라는 우스개까지 던진다. n수를 할 수 있는 학생과 아닌 학생이 있다. 정시로 가더라도 이때 경제 논리가 작용한다. 기숙학원, 특강, 과외까지 어떤 걸 선택하냐에 따라 n수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예시
정시에 실패해 재수하게 되면 1년에 드는 비용은 기숙학원을 다닐 경우 수천만원에 달한다. 반대로 고교 3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하는 학생부종합전형에는 큰 비용이 들지 않는다. 학교생활에 충실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 학종 컨설팅을 이야기하는데 족집게 과외의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논리
받은 점수 그대로를 정량평가해 상대평가로 등급을 매긴다. 말 그대로 잘하는 학생은 상위권, 그보다 낮은 점수를 받으면 하위권이 되는 구조다.
시험 난이도가 어렵더라도 모두에게 공평히 어렵다. 결국 실력에 따라 갈리기 때문에 투명하다. 시험문제만 유출되지 않으면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이기 때문에 명확하다.
반대로 수시 학종은 입학사정관의 평가와 면접 등 불투명한 평가 과정이 있다. 어떻게 좋은 점수를 받은 건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게다가 평가 배점 기준에 대해서도 공개하지 않는다.
또한 일반고에서는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자원이 상당히 한정돼 있다고 여긴다. 상위권 학생에게 학종 몰아주기 상황이 생긴다. 전교 몇 등 안에 드는 학생들의 학생부를 잘 채워주기 위해 대회 참여를 독려하거나 동아리 활동을 독려한다.
또한 일반고에서는 좋은 대학에 보낼 수 있는 자원이 상당히 한정돼 있다고 여긴다. 상위권 학생에게 학종 몰아주기 상황이 생긴다. 전교 몇등 안에 드는 학생들의 학생부를 잘 채워 합격 가능성을 높이는 식이다.
예시
정시에 대해 논란이 인 적은 없지만 수시는 수많은 논란이 촉발됐다. 이는 모호한 기준과 깜깜이 선발이 이유가 됐다. 교사가 주관적 평가에 의해 학생부를 쓰고, 다음엔 대학의 입학사정관이 정성평가를 진행한다. 이 두 가지 주관성에는 불투명성이 존재한다.
하지만 수능을 누가 대신 치르거나 내신 정보가 유출되지 않는 이상 기준에 대한 이견이 없다. 숙명여고 쌍둥이의 경우 내신 시험문제를 유출했다는 아빠는 법적 처벌을 받았다.
논리
학종도 정해진 명확한 기준이 있다. 입학사정관의 마음대로 평가하는 것이 절대 아니다. 평가 항목이 있고 저마다 배점이 있다. 여기 기준이 있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학생들을 변별할 수 있다.
입학사정관은 수년간 입시 경력을 쌓은 전문가들이다. 학생부 내용은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 자기소개서 내용은 거짓은 아닌지 구별해낼 수 있다. 또 한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한 학생의 자료를 복수의 사정관이 교차평가하기 때문에 사정관 개개인의 평가가 그대로 반영되는 것이 아니다.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건 오히려 학생들이 해당되는 부분만 공부하는 부작용 때문이다. 점수 받기에 초점을 맞추므로 학교생활 전반에서 최선을 다하기 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시험 기간에만 반짝 열심히하는 문화가 생긴다.
정시 제도는 학생을 줄 세워 차례대로 대학에 입학시킨다. 오로지 점수로만 봐 인성이나 발전 가능성을 측정하지 못한다. 오히려 공정하지 못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평가하기 어려운 제도다. 수능이 변별력이 약했거나 1년에 한 번 있는 기회에서 실수하면 다시 회복하기가 어렵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다시 기회를 얻는데도 차이가 생긴다. 반대로 수시는 학교 3년간 일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기 때문에 실수에 대한 판단을 메꿀 수가 있다.
예시
기준을 공개하지 않는 건 오히려 학생들이 해당되는 부분만 공부하는 부작용 때문이다. 점수 받기에 초점을 맞춰 학교 생활 전반에서 최선을 다하기보다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특정 학생부만 채우는 문제가 생긴다.
또한 학종의 목적 자체가 대학에 와서 적성에 맞춰 공부할 수 있는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준 또한 다를 수밖에 없다. 이미 각 대학의 인재상은 공개하고 있다.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고 교실에서 잠만 잔다며 교실 붕괴라는 표현을 하곤 한다.
하지만 왜 자는지를 들여다보면 높은 수시 비율로 인해 학교는 도장만 찍어주는 곳이 됐다는 이야기에 집중해야 한다. 어차피 학생부 내용만 잘 채우면 되기 때문에 공부는 대충하고 비교과 활동에 힘을 쏟는 거다. 열심히 하는 학생은 꾸준히 열심히 하겠지만 학종 합격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일부는 페이스 조절을 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교사에게 학생부 기록 권한이 있기 때문에 교사의 말을 듣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일 뿐, 실제로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거나 교사에게 자발적으로 존경심을 갖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실 붕괴, 학교 붕괴는 학생부를 채우기에 쓰는 수많은 다른 활동들 때문에 일어났다. 수상실적 밀어주기 등의 부작용이 학생들의 의욕을 떨어뜨린다.
논리
시험 점수만 잘 받으면 되는 정시에서는 학생들이 학교생활을 충실히 하지 않는다. 단순히 생각해도 수능만으로 대학을 간다면 학교에서 잠을 자고, 학원에서 밤샘 공부를 하는 학생이 늘어날 수 있다. 이같이 잠자는 교실, 정상적 수업이 불가능했던 교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도입된 게 바로 수시다.
학종은 교실에서의 수업 태도, 교우와의 관계, 인성 등을 종합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만큼 학생들도 학교생활에 충실히 할 수밖에 없다.
교사의 지도에 잘 따르지 않거나 인성이 좋지 않아도 점수만 잘 받으면 대학에 갈 수 있는 게 정시다.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오로지 점수뿐이라 문제 맞히기 기계로만 학생들이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