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트 스피치: 특정 인종이나 국적, 종교, 성별 등과 관련해 타인에게 증오를 일으키고 선동하는 발언. 크게는 폭력을 부추기는 위협, 선동 발언 뿐 아니라, 국기 등 상징물을 모욕하는 행위까지 포함한다. 이는 증오 연설, 증오, 언설, 증오 발언, 증오 표현 등으로 불린다.
많은 국가에서 증오 발언을 규제하고 있다.
독일
캐나다
뉴질랜드
일본
미국
중앙일보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자유는 매우 중요하지만, 절대적이지는 않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순간, 제한돼야 한다. 발언의 자유도 마찬가지다. 발언의 자유 자체가 엄청난 가치를 지니기 때문에 모든 권리에 우선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에 존재하는 지켜져야 할 권리 중 하나라 지켜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발언의 자유가 다른 권리를 침해할 때 사회는 발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증오 발언은 사회에 다음과 같은 피해를 준다.
첫째, 증오 발언은 다수가 소수자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유도한다. 모든 문제의 원인은 소수자에게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폭력이 답이라고 말한다. 이는 증오에 가득 찬 다수가 소수에게 폭력을 일으키게 할 수 있다.
둘째, 증오 발언이 소수자에게 직접적이진 않더라도, 간접적 피해를 줄 수 있다. 만약 공공장소에서 증오 발언을 하는 군중이 있다면 소수자는 군중에게 피해를 입을까 우려해 그 군중들이 있는 장소에 갈 수 없게 된다. 이는 소수자의 이동 자유를 침해한다.
셋째, 증오 발언은 소수자에게 심리적 손해를 끼친다. 정체성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증오 발언 자체가 소수자는 다수에 비해 낮은 가치를 지닌 사람이고, 사회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계속 이야기한다. 이런 발언을 듣는 소수자나 정체성이 정립되지 않은 소수자 가운데 청소년들은 자존감과 자신감에 큰 상처를 입는다.
이는 이들이 자신을 부정하게 만드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정체성이 인종, 종교, 성(性)처럼 바꿀 수 없는 요소에 기인한다는 데 있다.
따라서, 증오 발언은 금지돼야 한다.
아무리 듣기 거북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발언이라도 발언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민주사회에서 간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을 권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증오 발언으로 "기분이 나쁘다" 또는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와 같이 정서적으로 피해를 볼 수는 있지만, 이는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에 사는 시민이 지급해야 하는 비용이다.
이러한 주관적인 피해를 타인의 행동을 제약하는 기준으로 삼는다면 사회의 많은 자유가 억압될 것이다.
내 외모가 다른 사람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도 있고, 인종차별주의자에게는 다른 인종 커플이 손을 잡거나 공공장소에서 애정 표현을 하는 것이 기분 나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의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길거리를 돌아다니거나 타 인종 간의 관계 맺는 일을 금지시킬 수 없다. 내가 볼 때 못생긴 사람이 반대로 내 외모에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것처럼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발언 또한 마찬가지다. 발언의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에서 살고 있다면, 타인도 발언의 자유가 있다. 내 기분을 나쁘게 하더라도 이는 발언을 막는 이유가 될 수 없다. 나 또는 사회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발언 또한 타인의 기분을 나쁘게 할 수 있어서다. 따라서, 발언의 자유가 존중되는 사회에서는 증오 발언도 존중돼야 한다
둘째, 증오 발언 처벌은 죄형 법정주의에 어긋난다. 도덕적 비난과 별론으로, 처벌 대상 여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 법적 처벌은 불가하다. 어떤 게 증오 발언인지의 기준도 매우 모호하다. 따라서, 증오 발언을 금지하는 기준은 법정에서 판사에 의해 결정되기 마련인데, 판사가 관대하다면 처벌받지 않거나, 반대로 증오 발언으로 피해를 본 판사는 처벌을 내리는 상황이 발생한다. 따라서, 확실한 기준이 없다면 법적인 잣대를 들이대 금지할 수 없다.
셋째, 발언의 피해는 듣는 사람의 성향과 관계와 같은 제3의 요소에 따라 달라진다. 친구들 사이에 욕을 하는 것은 친근감의 표현이지만, 처음 본 이에게 욕을 먹는다면 이는 적대적인 발언으로 받아들여진다.
증오 발언 또한 마찬가지다. 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아무런 피해가 없을 수 있지만, 특정 사람은 큰 상처를 입는다.
이처럼 증오 발언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으로 피해를 일으키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피해를 주는 행동으로 간주할 수 없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많은 사람이 권력과 인기를 얻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증오 발언을 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증오 발언을 없애기 위해 대거 노력하고 있다. 노력은 공교육에서부터 시작된다. 공교육은 증오 발언이 일으키는 피해를 이야기하고 하지 않도록 교육한다.
또한, TV나 영화 그리고 공영 광고를 통해 증오 발언의 문제점을 설파하는데, 이는 사적인 자리에서 증오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비난받게 만드는 효과를 만든다.
하지만 인터넷상이나 유명한 정치인이 석상에서 증오 발언을 한다면 국가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통상 사회적 비난이 두렵거나 그룹 안에서 혐오주의자로 낙인찍혀 외톨이가 되는 것이 두려워 많은 사람이 증오 발언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명 정치인이 혐오 발언을 하게 된다면 다른 사람들도 더 자신 있게 증오 발언에 나서게 된다. 왜냐하면, 유명 인사들이 이들의 발언은 틀리지 않았고 오히려 증오 발언을 억압하는 사람들이 틀렸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여성 비하 발언을 하기 전에는 여성 비하 발언자는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가 공연하게 여성 비하 발언을 한 후, 많은 사람이 여성 비하 발언에 동조하고 심지어 직접 비하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뿐만 아니라, 인터넷 공간에서 많은 사람이 증오 발언에 동조한다면 자신은 혼자가 아니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그룹이 형성될 수 있다는 생각에 더욱 자신 있게 혐오 발언을 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이 자기만의 그룹을 만들게 된다면, 외부의 비판은 수용하지 않고, 증오의 생각은 더욱더 단단해진다. 따라서, 증오 발언은 금지해야 한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음담패설 녹음파일' 폭로로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그의 여성 혐오, 비하 발언이 비판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영 일간지 가디언 등에 따르면 트럼프는 1990년대부터 대선 출마에 나선 지금까지 여성 혐오·성차별적 발언을 줄기차게 이어왔다.
연합뉴스
공공장소에서의 증오 발언은 사회를 교육하고 증오 발언에 올바르게 대처할 방법을 알려준다.
단기적으로 증오 발언이 사회에 손해를 끼칠 수 있지만, 단기적 문제를 막기 위해 단순히 증오 발언을 금지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발언을 금지하는 것만으로는 발언하는 사람들의 올바르지 않은 생각을 고치지 못한다. 오히려, 사람들은 자신 의견이 무시된다고 여겨 국가에 반감을 품고 자신의 지역사회와 사적인 자리에서 증오 발언을 하게 한다.
만약, 폐쇄적 지역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증오 발언을 지속하고 본인의 친구들과 자식들에게 생각을 계속해서 주입한다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의 숫자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증오 발언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발언하게 해 그 생각이 왜 틀렸는지에 대해 계속해서 논의해야 한다.
찰리 쉰이 TV 프로그램에 나와 증오 발언을 했을 당시 많은 패널과 다른 프로그램이 찰리 쉰의 스피치에 반박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여성 비하 발언도 마찬가지다. 많은 정치인과 프로그램이 그 스피치의 문제점을 이야기했다.
이는 다음과 같은 장점을 가진다.
첫째, 무분별하게 증오 발언을 받아들여 같은 생각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에게 이것이 왜 문제가 되는지 이야기해 줄 수 있다. 증오 발언이 공공장소에서 일어나지 않으면 이들은 주변의 좁은 시야로만 영향을 받게 되고 그게 왜 문제가 되는지 알 수 없다. 반면 공공장소에서 일어난 발언에 강력한 반박을 보면서 무엇이 옳은 생각인지 판단할 기회를 갖는다.
둘째, 소수자들이 사적인 자리에서 증오 발언을 맞이했을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지 알려줄 수 있다. 자신들을 공격하는 증오 발언에 제대로 된 반박을 할 수 있다면 소수자들의 정체성은 오히려 더욱 강해질 것이다.
팝스타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과거 본인이 저질렀던 혐오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는 "내가 여성 혐오와 인종차별을 용인하는 제도에서 수혜를 입었다는 점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민주사회에서 차이에서 기인하는 분쟁은 필연적이며, 사회 발전을 꼭 저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분쟁으로 인해 사회적 문제를 인식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의견을 교환해 합치를 도모한다면 사회 발전을 꾀할 수 있다. 하지만 증오 발언은 올바른 토론의 형성을 방해하고 사회적 분란을 조장한다.
첫째, 증오 발언은 논리적인 의견 교환을 막는다. 의견 교환은 서로의 발언을 경청하고 존중할 때 가능하다. 하지만,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이 논리적 발언보다는 상대방을 혐오하고 헐뜯는 발언에 초점을 맞춘다면 상대방은 대화하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오히려, 상대방에 보복하기 위해 똑같은 방식으로 대할 수 있다.
둘째, 증오 발언을 당하는 소수자들은 이것이 절대 다수의 생각이라고 믿게 되고 이는 소수자와 다수의 싸움으로 번지게 된다.
계속된 증오에 노출된다면, 소수자는 다수에 대한 증오를 쌓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 두 그룹은 서로를 존중하고 같이 살아가는 존재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싸워서 이겨야 하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예를 들어, 대표적 여성 혐오 사이트인 일간 베스트는 계속해서 여성 혐오 발언을 해왔고, 여시와 같은 여성 대표 사이트들도 남성 혐오로 반응해왔다. 이러한 반응을 통해 서로에 대한 증오가 굳어지며 남성과 여성의 싸움으로 번지게 됐다.
남성들은 여성들의 남성혐오에 대해 '남혐 미러링'으로 반격하기 시작했다.
파이낸셜뉴스
증오 발언을 하는 유명인과 정치인을 처벌하면 이들은 더욱 큰 유명세를 떨치게 된다. 이는 그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결과로 이어진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증오 발언과 싸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논리적 반박이다. 논리적 반박 없이 단순히 그들을 처벌한다면 그들을 옹호하고 따랐던 사람들은 오히려 정부가 자신들을 억압한다고 느낄 것이다. 이는 이들이 서로가 더욱 단결하고 결집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증오 발언을 금지한다고 해 그 사람들의 생각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오프라인과 사적인 공간에서 영향력을 더욱 크게 행사할 것이다. 이는 혐오 범죄 또는 혐오 차별의 증가로 이어져 소수자의 삶은 오히려 더욱 큰 피해를 입는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르스가 이민자에 대한 혐오 발언을 했을 때 네덜란드 당국은 그를 처벌했는데 이는 오히려 인기와 영향력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졌다.
네덜란드 헤이르트 빌더르스는 증오 발언으로 처벌받았고, 이는 그의 정치적 힘을 더욱 더 강하게 만들어줬다.
THE ECONOMIST
The Netherlands has found Geert Wilders guilty of hate spee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