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의 성립과 확산

동아시아사

성리학의 성립과 확산

유학에서 성리학으로

1. 유학의 쇠퇴와 성리학의 성립

  • 유학의 지위 변천 : 한나라 때 국교 지정 → 남북조 시대 불교와 도교가 떠오르며 약화 → 수·당 시절 과거제 시행으로 부흥 → 인간의 심성과 사물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점이 문제로 남음
  • 성리학의 성립 : 송나라 때 불교와 도교의 형이상학적 논리 체계를 수양하고 이론적인 탐구와 수양을 중요시 하는 경향이 나타남 → 신유학(성리학) 성립

2. 사대부와 성리학

  • 송 대 사대부들은 인간, 사회, 자연을 구성하는 보편적 원리에 관심을 두고 이를 밝혀내고자 함
  • 정이 : 인간 본성과 우주 만물이 ‘이(理)’라는 보편적 원리로 묶여 있다고 주장 → 인간의 본성인 성(性)이 곧 우주의 원리
  • 주희 : 성리학을 집대성했으며 수행의 실천을 통해 본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 → 수행 방법으로 거경 궁리와 격물치지 제시

오경에서 사서로

1. 변화

  • 송 대 유학자들은 오경보다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를 중요하게 여김
  • 『사서집주』 : 주희가 사서에 주석을 단 책으로 원 나라 때엔 과거 시험 교재로 채택될 정도로 이후 큰 권위를 지님
  • 『소학』 : 성리학 입문서로서 성리학의 기본 개념, 수행 방법, 예절 등을 담아 어릴 때부터 읽도록 함
  • 성리학의 바탕이 되는 성선설과 천명사상 등을 주장한 맹자의 위상이 유학의 시초 공자만큼 커짐

2. 전파

  • 성리학은 동아시아 각국에 전파돼 충, 효, 예 등의 가치관을 전파하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심화하는 데 기여
  • 유목 민족이 세운 금이 한족의 남송을 압박하자 한족의 민족의식이 높아져 성리학에 영향을 미침 → 성리학에서 대의명분론과 화이관 대두
  • 조선과 일본에도 영향 (예: 조선에서 병자호란 이후 제기된 북벌론, 19세기 척화론, 일본의 존왕양이론)

성리학의 보급

1. 남송 이후

  • 서원 : 성현의 제사와 후학 양성을 위한 사설 교육 기관으로 사대부들의 결집지 역할도 함
  • 향약 : 향촌의 자치 규약으로 성리학적 규범이 서민에게도 확산하는 역할을 함

2. 명

  • 민간에 유학 이념을 널리 보급하고 원에 이어 성리학을 과거 시험의 기준으로 삼음
  • 성리학을 집대성한 문헌이 편찬돼 과거 시험의 참고서 역할을 함(예: 『성리대전』)
  • 신사 : 명나라의 지배층으로 지역 여론을 주도하고 향촌 사회에 유학적 가치관을 널리 퍼뜨림

3. 양명학

  • 성립 : 성리학이 도덕적 통치나 과거제를 위한 학문으로만 쏠리자 이에 반발해 실천을 강조하는 양명학 출현
  • 왕수인 : 마음이 곧 만물의 원리이고 인간의 본질은 평등하므로 태어났을 때의 착한 마음을 잘 수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주장
  • 실용적이고 실천적이어서 사대부뿐 아니라 서민에게 환영받음
  • 실천 없이 공허한 이론으로 흐르는 공리공론의 폐단도 나타남

고려와 조선의 성리학

1. 고려

  • 성리학의 전파 : 13세기 말 원에서 고려로 전해짐
  • 신흥 세력인 신진 사대부들에 의해 퍼졌으며 사서는 과거 시험 과목에 포함되기도 함
  • 신진 사대부들은 성리학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아 당대 불교 및 권문세족의 부패를 비판

2. 조선

  • 신진 사대부와 신흥 무인 세력이 세운 조선에서 성리학은 조선의 건국 이념이 됨
  • 국가 의례나 사회 의례의 기준으로도 작용
  • 예시 : 유교적 혼례, 상례, 제례 등
  • 조선 중엽 ‘인간의 본성이 곧 우주의 원리’라는 성리학의 기본 개념에서 출발한 철학적 논의가 활발해짐
  • 예시 : ‘사단(인, 의, 예, 지의 단서가 되는 네 가지 마음인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과 칠정(사람의 일곱 가지 감정인 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은 구별되는가?’ ‘사람과 동물의 본성이 같은가?’ 등
  • 16세기 이후 사림이 성장하며 서원이 세워지고 향약이 보급됨 → 향촌 사회 곳곳에 성리학적 질서가 자리 잡음
  • 최초의 서원 : 백운동 서원
  • 향약 : 중종 때 처음 시행돼 선조 때 전국으로 확산

일본의 성리학

1. 전파

  • 가마쿠라 시대 후기에 전파돼 주로 승려 사이에서 연구
  • 정착 : 에도 시대 승려 후지와라 세이카가 정유재란 때 일본에 잡혀온 강항과 교류하며 성리학 연구가 활발해짐
  • 후지와라 세이카 : 일본 최초의 사서오경 주석본인 『사서오경왜훈』을 간행하고 하야시 라잔 등 제자를 기름
  • 하야시 라잔 : 성리학을 바탕으로 에도 막부의 제도와 의례 정비 → 성리학은 막부의 관학이 됨

2. 한계

  • 중국이나 한국과 달리 무사들이 신분을 세습하며 지배층을 구성
  • 유학 경전에 대한 소양으로 관리를 임명하는 과거제가 없음
  • 불교와 신토의 영향력이 우세해 성리학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