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
명·청의 해금 정책과 조공 무역
1. 명
- 해금 정책 : 민간인이 나라 밖으로 나가 무역하는 것을 금지하고 오직 조공의 형태로만 교역하도록 함
- 해금 정책의 영향 : 은, 동전, 생사, 비단 등을 구하려는 명과 일본 상인이 왜구로 가장해 밀무역을 벌임 → 16세기 후반 상인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명은 동남아시아 방면 도항과 무역 허용 → 중국인이 베트남, 필리핀 등에 진출해 화교 사회를 형성하는 계기가 됨
- 영락제 재위 이후 정화의 함대를 동남아시아 등에 수차례 파견해 위세를 드러내고 조공 확대를 꾀함
- 조공 무역 : 조선, 류큐, 대월 ->정기적으로 명에 조공, 일본과 그 외 -> 감합을 발급받아 교역 / 명에 조공하는 국가 사이에서도 교역망 형성
2. 청
- 천계령 : 푸젠, 광둥성 등의 연해 주민을 내지로 이주시킨 정책으로 해상권을 장악하고 반청 운동을 막고자 시행 → 반청 운동의 주요 세력인 타이완의 정씨 세력을 복속 후 17세기 후반 해제
- 천계령 해제의 영향 : 청의 상인은 일본 나가사키에서 활발히 교역 → 무역의 증가와 일본의 은 유출 → 에도 막부는 청 상인에게 나가사키 입항 허가 증서인 신패를 발급해 무역량 통제
조선의 무역
1. 명·청과의 무역
- 명·청과 조공 관계를 맺고 정기적으로 사절을 보냄 -> 사절을 통해 공물을 바치면 명·청으로부터 답례품을 받아옴
- 공물 : 종이, 붓, 화문석, 인삼 등
- 답례품 : 비단, 약재, 책 등
- 16세기 이후엔 역관이나 상인들에 의해 사무역이 활발해짐 → 중계무역을 통해 일본산 은과 명·청의 비단이 교환됨
2. 일본과의 무역
- 세종 때 쓰시마섬의 왜구를 토벌한 뒤 남해안의 세 항구를 개항하고 일본 교역의 거점인 왜관을 설치 → 왜란으로 단절됐던 교역은 일본 에도 막부 수립 후 재개
- 일본은 구리, 유황, 향신료 등을 가져와 팔고 쌀, 인삼, 목면, 서적 등을 사감
- 일본 외에도 류큐, 시암(타이), 자와 등에서도 상인이 찾아와 교역함
- 쓰시마번 : 17세기 이후 에도 막부는 조선에 대한 외교 교섭을 위임 -> 조선 통신사가 일본에 갈 때 쓰시마번 관리가 동행, 조선-일본 무역에서 중요 역할을 함
일본의 무역
1. 무로마치 막부
- 수립 초기에 명에 조공하기도 했으나 16세기 중반 이후 관계 단절 → 명의 물품을 구하기 위해 밀무역과 왜구가 창궐함
- 16세기 이후 일본 상인은 해외로 활발히 진출해 동남아시아에 무역 거점을 마련하기도 함
2. 에도 막부
- 해외 진출 상인에게 슈인장을 발급해 교역을 통제함
- 슈인장 무역을 통해 일부 다이묘 세력이 대두하고 크리스트교가 전파됨 → 이를 견제하고자 해금을 실시하고 크리스트교를 탄압함
- 해금 실시로 서양인의 내왕과 사무역이 통제됐지만 네덜란드 상인에게는 나가사키를 개방해 무역을 허용함
- 청과 조공 관계를 맺지 않고 청 상인이 나가사키에 와서 교역하는 것은 허용
- 조선과의 중계로 청과 간접적인 교역이 이뤄지기도 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