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사
연합국의 전후 처리 구상
1. 카이로 회담
- 제2차 세계 대전의 우위를 차지한 연합국이 전후 처리를 논의하기 위한 국제 회담으로 카이로 회담 개최, 카이로 선언 발표(1943)
-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일본 식민지의 독립과 점령지 반환을 요구함
- 한국의 독립, 만주·타이완의 반환 등이 약속됨
2. 얄타 회담
- 승리를 굳힌 연합국은 미국, 영국, 소련이 얄타 회담 개최(1945)
- 유럽 및 동아시아에서의 전쟁과 전후 처리에 관한 주요 사항 합의 및 소련의 대일전 참전에 관한 비밀 협정 체결
3. 포츠담 회담
- 독일 항복 후 포츠담 회담 개최, 포츠담 선언 발표
- 카이로 선언의 실행과 일본 영토의 한정,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
- 일본은 포츠담 선언을 거부하지만 원자 폭탄의 투하와 소련의 참전 후 8월 15일 무조건 항복
4. 국제 연합(UN)의 발족
-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연합국은 국제 평화와 안전 유지를 위한 국제기구의 필요성에 합의
- 1945년 10월 국제 연합(UN) 발족
동아시아의 전후 처리
1. 미국의 일본 제재
- 일본의 항복 이후 연합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일본 점령
- 도쿄에 연합국 최고 사령부(SCAP/GHQ) 설치해 군정 실시
- 맥아더 중심으로 개혁 추진(군국주의자 공직 추방, 전쟁 지도부 처벌 목적으로 극동 국제 군사 재판 주도, 재벌과 지주의 경제력 축소 목적으로 재벌 및 농지 개혁 실시)
- 신헌법(평화 헌법) 제정 : 천황을 상징적 존재로 규정, 주권 재민 원칙에 따라 인권 보호 조항 강화, 일본의 군사력 보유 금지
2. 미국의 대일본 정책 변화
- 배경 : 소련과의 대립 격화, 중국과 북한의 공산화로 냉전 본격화
- 미국은 일본을 동아시아에서 공산 세력에 대항하는 전략적 거점으로 삼고자 함 → 일본 경제의 재건을 우선시하고 일본 내 노동 운동을 억제
- 공산주의자를 탄압하며 군국주의 세력의 복귀를 허용함
3. 6·25 전쟁 이후 일본
- 일본은 6·25 전쟁 발발 이후 경찰 예비대를 조직해 다시 군사력을 보유하게 됨
-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1951)을 체결하고 다음해 주권을 회복하면서 군정 종식 + 미국과 미·일 안보 조약을 체결해 군사 동맹을 맺음
4. 해방과 남북한 분단
- 해방 이후 일본군의 무장 해제를 이유로 38도선 이북에는 소련군, 이남에는 미군이 들어서 분단이 시작됨
- 1948년 유엔의 감시 아래 남한에서는 총선거가 시행 → 제헌 국회 구성 → 그해 8월 대한민국 정부 수립(초대 대통령 이승만)
- 북한에서는 1948년 9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정부 수립(초대 수상 김일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