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2
사림의 집권과 붕당의 형성
1️. 사림의 성장
- 15세기 중반부터 세조의 계유정난 당시 공을 세운 한명회 등 훈구세력이 정치 운영 주도하기 시작 -> 이후 권력 독점, 왕권 제약
- 이에 성종 즉위와 함께 훈구 견제 및 왕권 안정 위해 사림 등용
- 사림 : 조선 건국에 참여하지 않았던 정몽주, 길재 등의 학통을 계승 -> 성리학을 중심으로 왕도 정치 및 향촌 정치 강조
- 성종은 훈구와 사림(영남 출신 김종직과 그의 제자들)을 적절히 조율하며 국정 운영 -> 주로 3사 언관직에 임명, 훈구 세력의 부정비리 및 비판
- 이후 기존 훈구세력과 신진 사림세력 간 정치적 갈등 격화
2️. 사화의 발생
- 연산군 즉위와 함께 사림에 대한 탄압, 권력 강화 시도
- 이 과정에서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빌미로 무오사화 발생, 이후 연산군의 친어머니(폐비 윤씨) 폐위 관련하여 갑자사화 발생
- 갑자사화 당시 훈구 세력 또한 피해 -> 연산국 축출, 중종 추대(중종반정, 1506) -> 이후 반정을 주도한 훈구가 권력을 다시 장악
- 이에 중종 훈구 견제 위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등용
- 왕도 정치를 위한 조광조의 급진적 개혁 ex. 3사 언론 활동 활성화, 소격서 폐지, 현량과 실시 -> 훈구뿐만 아니라, 중종에게도 큰 부담 -> 결국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 제거(기묘사화)
- 이후 명종 때 외척 간 권력 다툼으로 을사사화 발생
3️. 사림의 세력 확대
- 총 4차례의 사화 이후 사림 세력은 중앙 정계가 아닌 지방 향촌을 중심으로 세력 확대 -> 서원 설립 + 향약 보급 중심
- 서원 : 사림 중심의 연구 교육 기관 -> 제사 시행, 성리학 연구, 지방 양반 자제 교육, 사림의 공론 취합 담당
- 명종 때 이황의 건의로 백운동 서원(주세붕)이 최초로 사액 서원('소수서원')이 됨 -> 이후 국가 주도로 서원 설립 장려 -> 성리학 확산, 지방 문화 발달
- 향약 : 향촌 내 풍속에 유교 윤리를 더한 향촌의 자치 규약
- 중종 때 중국의 '여씨향약' 번역본 보급, 16세기 후반 이황, 이이 등을 중심으로 본격적으로 보급 -> 풍속 교화, 질서 유지에 기여 -> 지방 향촌 사회에서의 사림의 영향력 확대
4. 붕당의 형성
- 서원과 향약을 바탕으로 사림은 16세기 후반 선조 때 정권 주도 -> 공론에 따른 정치와 사회 운영 주장, 3사 관리 중심의 언론 활동 강조
- 그러나, 명종 때 조정에 남은 훈구 세력 처리 문제를 두고 내부 갈등 발생 + 이조 전랑 임명 문제 관련 갈등이 추가적으로 발생
- 결국, 사림은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 붕당 형성
- 동인 : 김효원 중심 / 이황과 조식, 서경덕 등 영남학파 계승 -> 선조 때 정계 진출
- 서인 : 심의겸 중심 / 이이와 성혼 등 기호학파(경기서울) 계승 -> 명종 때부터 정치 참여
- 이후 동인은 이황을 계승한 남인, 조식을 계승한 북인으로 나뉨
- 사림은 상대 붕당에 대한 존중, 인정과 동시에 상호 비판 및 견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