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2
근대 국가 수립의 과정
1️. 흥선 대원군과 개화
- 19세기 후반 정치 혼란, 농민 봉기에 이어 서구 열강 세력 접근
- 어린 고종 즉위와 함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하응) 권력 장악 -> 왕권 강화, 민생 안정 정책 추진
- 정치 : 비변사 기능 축소 -> 세도 가문 세력 견제, 경복궁 중건
- 외교 : 병인양요, 신미양요 이후 전국에 척화비 건립 -> 서구 열강과의 통상 거부 의지 천명 -> 서양 세력 진출 저지, 국제 정세 변화에 능동적 대처 X
- 고종이 직접 통치 시작 -> 통상 수교 거부 정책 완화, 개화 분위기 형성
- 이틈을 타 일본이 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조선과 강화도 조약(조일 수호 조규) 체결(1876), 인천 등 항구 개항 통해 문호 개방
- 강화도 조약 : 외국과의 최초의 근대적 조약 & 불평등 조약(영사 재판권, 연안 측량권 등 허용)
- 이후 조선은 서양 여러 나라와 조약 체결, 문호 개방
2. 개화 정책에 대한 입장
- 개항 이후 정부는 김옥균, 박영효, 김홍집 등 개화사상을 가진 인사들을 양성, 개화 정책 추진
- 개화 정책 : 근대적 개혁 추진 기관 통리기무아문 설치, 신식 군대 별기군 설치, 일본(조사 시찰단)과 청(영선사)에 사신 파견
- 하지만, 개화 정책의 성과 X & 위정척사 운동, 임오군란 등 개화를 둘러싼 각종 갈등 발생
- 위정척사 운동 : 최익현을 비롯한 유생들을 중심으로 통상과 개항 반대 상소 제기 -> 이후 항일 의병 운동에 영향
- 임오군란(1882) : 별기군과 다른 처우에 대한 구식 군인들의 불만 표출 -> 청에 의해 진압, 이후 조선에 청의 근대가 주둔
3. 갑신정변
- 한편, 개화 세력 내부에서도 추진 방법을 두고 온건파와 급진파로 나뉨
- 김옥균, 박영효 등 급진 개화파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을 계기로 정변 주도(갑신정변, 1884)
- 일본 지원을 바탕으로 개화당 정부 구성, 청과 사대 관계 청산, 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조세 개혁 등을 주장
- 하지만, 임오군란 이후 내정에 간섭하고 있던 청의 개입으로 3일 만에 실패
- 영향 : 일본은 정변 과정에서 공사관 소실을 빌미로 오히려 배상금을 획득 / 청은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 강화
- 의의 : 자주적인 근대 국가를 만드려는 최초의 개혁 운동
4. 동학 농민 운동
- 개항 이후 부당한 세금 징수 증가, 외국 상인들의 경제 침탈 -> 농민 생활 불안정, 사회 개혁 요구 증가, 외세 반감 표출
- 그 과정에서 인간 평등과 사회 개혁을 추구하는 동학 확산
- 1894년 전라도 고부 군수의 횡포에 맞서 지도자 전봉준을 중심으로 봉기 -> 백산 봉기 -> 이후 동학 농민군 전라도 일대 장악, 전주성 점령 -> 이에 정부가 청에 지원 요청
- 이때, 일본군도 개입 의지 -> 외세 개입을 막기 위해 동학 농민군 - 정부와 전주 화약 체결, 전라도 각지에 집강소 설치
- 하지만, 일본 경복궁 점령, 청일전쟁(1894) 승리 후 청을 대신해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
- 일본 대항 위해 동학 농민군 다시 봉기, 한성 진격 -> 무기 열세로 우금치 전투 패배, 전봉준 체포 -> 동학 농민 운동 종료
- 의의 : 근대 국가 수립 운동과 항일 의병 운동에 큰 영향
5. 갑오·을미개혁
- 경복궁 점령 이후 일본은 김홍집을 중심으로 친일 내각 구성 -> 군국기무처 설치, 신분제 폐지, 조세 금납화 추진(제1차 갑오개혁, 1894)
- 뒤이어 고종이 개혁 방침을 담은 홍범 14조 반포.(제2차 갑오개혁)
- 한편, 청일 전쟁 이후 일본의 내정 간섭 확대 -> 조선에서는 러시아 개입 통해 일본 견제하자는 여론 형성, 친러파 등용
- 이에 일본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 내각 재구성 -> 태양력 사용, 단발령 실시 등 추진(을미개혁)
- 그 과정에서 을미사변 및 단발령 시행에 반대하는 유생들 의병 운동 전개
6. 아관 파천과 독립 협회
- 고종이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 공관으로 피신(아관 파천, 1896) -> 이후 김홍집 내각 붕괴, 개혁 중단
- 하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열강 세력의 이권 침달 더욱 확대
- 이에 독립 협회가 각계가 참여한 만민 공동회 개최, 열강의 이권 침탈 비판 -> 이후 헌의 6조 결의하여 고종에게 건의
- 독립 협회 : 서재필 등 개화파를 중심으로 하는 협회 -> 독립신문 창간, 독립문 건립, 토론회와 연설회 개최
- 하지만 결국 보수 세력의 모함으로 독립 협회는 강제 해산
7. 대한 제국 성립과 일제의 국권 침탈
- 아관 파천 이후 1년 만에 고종 환궁, 전제 군주제 기반의 대한 제국 수립, 황제 즉위(1897)
- 대한 제국 성립 이후 양전 사업 실시, 지계 발급, 상공업 진흥 -> 국가 재정 확보 시도, 이외에도 유학생 파견, 학교 설립 등 부국강병 시도
- 한편, 아관 파천 계기로 세력이 약화된 일본이 러시아 견제 -> 러일전쟁 승리(1904), 을사늑약 강제 체결(1905) 통해 외교권 강탈 및 통감부 설치
- 이에 고종 만국 평화 회의에 헤이그 특사 파견(1907) -> 이를 문제 삼아 일본 고종 퇴위, 군대 해산, 사법권 및 경찰권 강탈
- 결국 일본은 강제로 대한 제국을 병합(1910. 8.)
8. 국권 수호 운동
- 을사늑약 체결 이후 국권 수호를 위한 다양한 민족 운동 전개
- 의병 활동 : 을미사변과 단발령 시행(을미의병), 을사늑약 체결(을사의병) 등 주요 사건 때마다 항일 운동 전개 -> 전국 수준으로 확대, 군인 계층의 합류 -> 그러나 결국, 일본의 탄압으로 실패 -> 이후 독립군 조직에 영향
- 애국 계몽 운동 : 지식인과 관료 중심 -> 신민회 등의 민족 역량 강화 활동 /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의 대중 계몽 운동
- 이외에도, 일반 국민들 사이에서는 국채보상운동 등이 전개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