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몽골(원)의 간섭과 정치 변화
1. 몽골의 침략
- 13세기 초, 칭기즈 칸이 몽골 지역을 통합하며 세력 확대 → 고려는 몽골과 국교를 맺어 평화 유지
- 점차 몽골이 과도한 공물을 요구하기 시작 & 몽골 사신이 귀국길에 살해된 사건을 빌미로 고려 침입
- 고려의 최우는 몽골과 강화를 맺고, 수도를 강화도로 옮겨 장기 항전에 대비
- 고려는 백성, 하층민을 중심으로, 처인성, 충주성 등에서 몽골과 항전하였으나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 약화, 국토 황폐화
- 고려 정부는 결국 몽골과 강화를 맺고 개경으로 환도
- 삼별초는 진도, 제주도 등지로 근거지를 옮기며 저항하였으나, 끝내 고려와 몽골 연합군에 진압
2️. 몽골(원)의 간섭과 권문세족의 등장
- 고려 왕은 원의 공주와 결혼하여 원 황제의 부마(사위)가 되었으며, 제후국 체제로 격하
- 원은 다루가치와 정동행성을 통해 고려에 내정 간섭
- 고려 영토에 쌍성총관부, 동녕부, 탐라총관부 등 설치
- 금, 은, 인삼 등의 물품과 공녀(처녀), 환관 등을 요구
- 권문 세족의 등장 : 친원적인 성향에 따라 새로운 지배 계층으로 등장 → 도평의사사 장악, 농장 및 노비 소유를 늘려 부 축적
3️. 개혁 추진한 공민왕
- 공민왕의 반원 자주 정책 : 변발, 몽골식 복식 등 몽골의 풍습과 제도 폐지, 기씨 세력 등 친원 세력 제거, 정동행성 이문소 폐지, 쌍성총관부 공격 후 철령 이북 지역 회복
- 공민왕의 왕권 강화 정책 : 신돈 등용 → 전민변정도감 설치 → 권문세족이 불법적으로 빼앗은 토지와 억울하게 노비가 된 양민을 해방, 신진 사대부 등용
- 공민왕 개혁의 성과 : 권문세족의 반대, 홍건적 및 왜구의 침입 등으로 성과 미비, 신돈이 제거되고 공민왕이 시해되면서 개혁 중단
4️. 신진 사대부의 성장
-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등장 → 토지, 불교 폐단 등을 지적하며 적극적으로 현실 개혁
- 성리학 : 안향이 원에서 들여와 고려에 전하면서 확산되어 신진 사대부가 성장할 수 있는 토대로 작용, 원의 영향으로 현실 실천 윤리의 측면을 강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