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조선의 대외 관계 변화
1️. 사대교린 외교
- 사대 외교 : 조공 책봉 체제를 바탕으로 명과 친선 관계 유지 → 명 중심 국제 질서 속에서 왕권 안정과 경제 문화적 실리를 얻기 위한 방법
- 교린 관계 : 일본, 여진 등에는 회유책과 강경책 병행(ex. 세종 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 토벌(강경책), 일본의 교역 요청으로 삼포 개방 & 제한적 교역 허용(회유책))
2️. 왜란의 발발
-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일본 통일 → 일본의 조선 침략(통일에 불만 있는 세력의 관심을 밖으로 돌리려는 의도와 대륙 침략 의도) → 20일 만에 수도 한성 함락 → 이순신이 지휘하는 수군의 활약 + 의병 활약 → 명군과 함께 평양성 탈환
- 왜군의 휴전 회담 제의 → 결렬 → 왜군 재침략 → 일본의 전세가 불리해진 가운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왜군 철수
- 임진왜란의 영향 : 조선(국토 황폐화 및 사람의 희생), 중국(명 국력 쇠퇴 & 여진 세력 확장), 일본(에도 막부 성립)
3️. 호란의 발발
- 광해군의 대내 정책 : 전후 복구 사업 주력, 토지 개간 및 토지 대장과 호적 정비, 국방 강화
- 광해군의 대외 정책 : 후금과 명 사이 중립 외교 추진
- 인조 반정 이후 서인이 정권을 차지하고 친명 배금 정책 추진 → 후금의 침략 →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음(정묘 호란)
- 후금이 세력을 키워 국호를 청으로 바꾼 후 조선에 군신 관계 요구 → 정부 내 주화론과 척화론 대립 → 척화론에 따라 청의 요구 거부 → 청이 조선 다시 침략(병자호란) → 청에 굴복하고 군신 관계 맺음
4️. 북벌론과 북학론의 대두
- 북벌론 대두 : ‘병자호란 후 청에게 당한 치욕을 씻어버리고 명에 대하여 의리를 지키자!’
- 효종 : 송시열, 이완 등을 함께 군대를 양성하는 등 북벌 준비
- 숙종 : 남인 중심으로 북벌론 제기
- 점차 강해지는 청의 세력과 군비로 인한 재정 악화로 북벌 계획 중단
- 북학론 제기 : ‘청의 문물을 받아들여서 조선의 발전을 이루자!’
- 북학파에 의한 주장은 19세기 후반 개화사상으로 계승
5️. 조선의 세계관 변화
- 서양 과학 기술의 유입 : 자명종과 천리경(망원경), 세계 지도인 ‘곤여만국전도’, 서양 역법인 시헌력
- 중국 중심의 세계관 탈피 : 이익(지구가 둥글단 주장을 내세움), 김석문과 홍대용(지전설)
- 조선을 중화 문명 계승 국가로 보는 시각 등장 → 역사와 국토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국학 연구 활성화
6️. 연행사와 통신사 파견
- 조선은 청에 연행사, 일본에 통신사를 각각 파견
- 청과의 외교 : 초반에는 청과의 외교를 굴욕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청의 권력 확대 이후 청 중심의 조공 책봉 관계 수립
- 일본과의 외교 : 일본 에도 막부의 국교 재개 요청 → 기유약조를 통해 제한 범위 내 무역 허용
7️. 백두산정계비와 독도 수호
- 백두산 정계비 : 청이 조선에 양국 간 경계를 명확히 할 것을 요구 → 조선과 청 관리가 함께 백두산 일대 답사 → 백두산 정계비를 세움
- 독도 : 일본 어민들의 울릉도, 독도 침범 → 안용복 등의 어민이 이들을 내쫓고, 일본으로 가서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명확히 확인 받고 돌아옴 → 울릉도 및 독도 귀속 문제 확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