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개항과 불평등 조약 체제의 성립
1️. 조선의 대외 정책 변화
- 고종의 친정 이후, 통상 개화론의 영향으로 조선의 외교 정책 변화
- 통상 개화론자의 주장 :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은 외세의 침략만 발생시키므로, 서양 문물을 수용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자’
2️. 강화도 조약 체결
- 일본에서는 ‘정한론’을 바탕으로 조선에 함대를 파견해 조선을 강제 개항시키고자 함
- 운요호 사건 : 일본의 운요호가 허가 없이 강화도에 접근, 초지진 파괴, 영종도에서 살인, 약탈, 방화 → 조선 측에서 위협 사격 실시
- 일본 측은 운요호 사건에 대한 피해 배상을 요구하며 조선의 문호 개방 요구 & 무력 시위 → 조선은 일본의 교섭 요구를 받아들여 강화도 조약 체결
3️. 불평등 조약 체계로의 편입
- 강화도 조약의 성격 : 조선 최초의 근대적 조약이자 불평등 조약
- 강화도 조약의 내용 : 일본의 영사 재판권, 조선 영해에서의 해안 측량권 인정, 원산 인천의 개항(정치 군사적 침략 의도 반영)
- 강화도 조약 체결 이후 : 조일 수호 조규 부록과 조일 무역 규칙 체결 → 개항장에서의 일본 화폐 유통, 무제한의 양곡 유출 허용, 관세 관련 내용 미포함
4️. 여러 나라와 수교한 조선
- <조선책략> : ‘러시아의 남하를 막기 위해 조선이 중국, 일본, 미국과 연합해야 한다.’ → 조선 내 미국에 우호적인 여론 형성 → 미국과 수호 통상 조약 체결
- 조미 수호 통상 조약 : 거중 조정, 관세 부과 등의 조항도 있었으나, 영사 재판권, 최혜국 대우 등이 포함된 불평등 조약(미국 공사 부임에 관한 답례로 미국에 보빙 사절단 파견)
- 조선은 청의 중재로 영국, 독일, 러시아, 프랑스 등과 수교 → 이들과도 불평등 조약 체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