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갑신정변
1️. 개화 정책 추진의 어려움과 급진 개화파 주도의 정변 계획
- 청의 간섭과 민씨 일파의 보수적 태도
- 급진 개화파의 개혁 주도권 상실 : 개화 자금 마련을 두고 급진 개화파는 일본에서 차관의 도입을, 민씨 일파는 당오전 발행 주장 → 급진개화파(김옥균)이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도입해 오는 데 실패
- 베트남을 놓고 청과 프랑스 간 갈등이 거세지자, 청은 조선에 주둔한 병력 일부를 베트남으로 이동 → 급진 개화파는 이를 틈타 일본 공사로부터 지원을 약속 받고 정변 계획
2️. 갑신정변의 발생
- 급진 개화파는 우정총국의 개국 축하 행사에서 개화 반대파 인사들을 제거하고, 개화당 정부 수립(갑신정변)
- 급진 개화파는 개혁 정강을 마련하여 국가 체제의 개혁 모색, 청과의 사대 관계를 청산하고 내각 중심의 정치 체제 확립, 재정의 확충과 혜상공국의 폐지를 통해 자유로운 상업 활동 도모
- 청군의 공격으로 일본군이 곧바로 철수하자 정변은 3일천하로 마무리, 정변을 주도한 급진 개화파의 핵심 인사들은 살해되거나 일본으로 망명
- 의의 : 최초의 근대적 정치 개혁 운동
- 한계 : 소수 지식인 중심의 근대화 운동(대다수 관료나 민중의 지지를 얻지 못함), 일본의 군사적 지원에 의존
3️. 한성 조약과 톈진 조약
- 한성 조약 : 일본은 갑신정변에 대한 책임을 조선에 떠넘기며 피해 배상 요구 → 조선은 일본에 배상금 지불, 일본 공사관의 신축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한성 조약 체결
- 톈진 조약 : 청과 일본 사이에 맺어진 조약으로, 양국이 조선에서 함께 군대를 철수하고 앞으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야 할 시 상대국에 미리 알리도록 규정
4️.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대립
- 거문도 사건 : 영국이 조선으로 접근해 오는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거문도 불법 점령 → 조선이 청에 중재 요청 → 영국은 조선으로 진출하지 않겠다는 러시아의 약속을 확인한 이후 철수
- 조선 중립화론 대두 : 조선 주재 독일 부영사, 부들러가 처음 정부에 건의, 미국에서 돌아온 유길준도 청을 중심으로 열강으로부터 조선의 중립을 보장 받아 독립을 보존해야 한다는 <중립론> 집필 → 정책에는 미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