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 의병 운동과 의열 투쟁

1. 을미의병

  • 배경 : 을미 사변과 단발령의 공포로 인한 반일 감정의 폭발
  • 주도 세력 : 유인석, 이소응 등 위정 척사 사상을 가진 유생층(농민, 동학 농민군 잔여 세력 등 포함)
  • 전개 : 일본군 공격, 지방 관청 공격해 친일 관리 처단
  • 결과 : 고종의 단발령 철회, 의병 해산 권고 조칙 발표 (일부 농민과 잔여 세력 등은 활빈당, 역학당 등 조직해 투쟁 지속)

2. 을사의병

  • 배경 : 을사늑약 체결로 인한 외교권 강탈
  • 주도 세력 : 유생과 평민 출신 의병장(위정척사를 넘어 국권 회복 운동의 성격을 띠기 시작)
  • 전개 : 민종식 의병 부대(홍주성 점령 이후, 일본군 반격으로 후퇴), 최익현 부대(정읍 및 순창 일대를 장악했으나, 관군 파견으로 체포되어 쓰시마섬 유배, 순국), 평민 의병장 신돌석 부대(평해와 영해 중심으로 활동)

3. 정미의병

  • 배경 : 헤이그 특사 파견으로 인한 고종의 강제 퇴위, 대한 제국 군대의 강제 해산
  • 주도 세력 : 기존 주도 세력(유생보다는 농민, 군인 등 평민 의병장이 대다수를 차지) + 해산 군인
  • 전개 : 의병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

4. 13도 창의군(13도 연합 의병 부대)

  • 결성 : 이인영을 총대장으로 하여 결성
  • 활동 : 각국 영사관에 의병을 국제 공법상의 교전 단체로 승인해줄 것을 호소, 서울 진공 작전 전개
  • 결과 : 서울 진공 작전은 일본군의 공격으로 실패하였으나, 그 이후에도 전국에서 투쟁 지속

5. 남한 대토벌 작전

  • 1909년부터 점차 의병 운동이 약화되었으나, 호남 지역에서는 여전히 의병 항쟁 전개
  • 일본은 호남에 병력을 집중하여 의병 근거지 포위 공격(방화와 살육으로 초토화)
  • 일본군의 공격으로 국내 활동이 어려워진 일부 의병은 간도, 연해주로 이동 → 무장 독립 투쟁 준비

6. 의열 투쟁

  • 오기호 : 자신회를 조직해 을사 5적 처단을 위한 활동 전개
  • 장인환과 전명운 : 일본의 대한 제국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화하였던 스티븐스를 샌프란시스코에서 사살
  • 이재명 : 을사늑약과 한일 신협약 체결을 주도한 이완용 습격
  • 안중근 : 이토 히로부미 저격 및 처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