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 계몽 운동

1️. 실력 양성을 위한 애국 계몽 운동

  • 보안회 : 1904년 관료와 유생 등이 결성, 러일 전쟁 중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에 저항 → 일본의 압력으로 강제 해산
  • 헌정 연구회 : 1905년 국권 수호와 독립 유지 목적으로 독립 협회 계승, 입헌 군주제의 도입을 목표로 활동, 친일 성향의 일진회 강력 비판 → 을사늑약 반대 입장을 표명한 지도부가 체포되면서 활동 중단
  • 대한 자강회 : 1906년 해산된 헌정 연구회 회원을 중심으로 조직, 전국에 지회를 두고 월보 발행, 정기적인 대중 연설 개최를 통해 계몽 활동 전개 → 고종 강제 퇴위 반대 운동으로 강제 해산
  • 일본의 탄압이 심화되자, 애국 계몽 운동은 일본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실력 양성에 집중

2️. 교육과 언론 활동

  • 국권 회복에 필요한 인재 양성 : 애국 계몽 운동가들은 서북 학회, 기호 흥학회 등을 설립해 월보 발행, 강연회 개최 → 통감부는 사립학교령을 통해 탄압
  • 언론 활동 : 황성신문(’시일야방성대곡’을 통해 을사늑약 비판), 대한매일신보(일본의 침략 행위 적극 비판, 의병 활동에 호의적 보도) → 일본은 신문지법을 재정하여 신문 검열 등 언론 탄압계를 극복한 신민회

3. 신민회의 조직

  • 성격 : 안창호와 양기탁의 주도로 조직된 비밀 결사
  • 목표 : 국권 회복과 공화정 수립
  • 활동 : 오산 학교, 대성 학교 등의 설립을 통해 민족 교육 실시, 자기 회사와 태극 서관 등의 운영을 통해 민족 산업 육성, 국외 독립군 기지와 무관 학교 설립을 위해 노력(독립운동 기지 건설을 위해 이회영 등의 회원들이 만주로 이주)
  • 신민회의 국내 조직은 일제가 날조한 105인 사건으로 와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