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광복
-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항복 -> 한국의 광복
1. 한국의 광복
- 일제의 탄압 하에서도 꾸준히 진행한 한국인의 독립에 대한 노력을 국제 사회가 인정한 것
- 동시에 연합국의 승리를 의미
- 이는 이후 정부 수립 과정에서의 미국과 소련의 영향을 받게되는 계기가 됌
38도선으로 분단
1. 일본의 항복 직전의 미국과 소련
- 소련 : 1945년 8월 일본에 대해 선전 포고 -> 만주와 한반도에서 일본과 전투 진행
- 미국 : 소련의 한반도 남하를 막기 위한 제안 제시
2. 제안의 내용
- 38도선 기준 남과 북에 미국과 소련이 각각 군대를 주둔
- 주둔한 군대를 통해 한반도에 남은 일본군의 무장 해제 진행
3. 미국의 제안에 대한 소련의 승낙 이후
- 38도선 이북은 소련 관할
- 38도선 이남은 미국 관할
4. 미군정
- 미군의 군정청 설치 : 미군은 서울에 진주하여 조선 총독부의 항복을 받아낸 이후, 군정청을 설치 -> 이후 직접 남한 통치 진행
- 미군정의 목표 : 새로이 수립될 정부에 권한을 넘겨 주기 위한 관료제 유지에 중점 -> 이로 인해 일제의 식민 통치 기구 & 관료 & 경찰의 유지
- 대한민국 임시 정부 : 정식적인 정부로 인정받지 못함. 각 지역의 인민 위원회와 기구도 인정받지 못함
5. 소련군
- 각 지역에 이미 결성 됐던 인민 위원회에 행정권을 이양 -> 간접 통치의 방법 실현
- 소련군에 협력한 공산주의자 지원 -> 소련에 우호적인 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
1. 광복 이후
- 가장 신속하게 움직인 지도자 : 여운형
- 여운형의 활동 :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건준) 조직
2.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의 활동
- 사회 안정화를 위한 노력
- 식량 및 생필품 확보 주력 -> 국민 생활 안정화 주력
- 조선 인민 공화국의 성립 선포 : 미국의 진주시 대등한 관계에서의 논의를 위함
- 각 지역부서을 인민 위원회로 전환 : 좌익 세력이 주도권을 장악하자 우익 세력은 건준에서 탈퇴함
3. 광복 이후 주요 인사의 정치 활동
- 미국에서 돌아온 이승만은 세력을 모아 독립 촉성 중앙 협의회 조직
- 김구 등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인사들은 미군정 방침에 따라 개인 자격으로 귀국해 한국 독립당을 중심으로 활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