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수의 중국 통일
1️. 수 문제
- 북주 외척인 수문제(선비족 출신, 양견)에 의해 수 건국(581), 남북조 통일(589)
- 중앙집권 체제 확립 : 3성 6부제(중앙), 주현제(지방)
- 9품증정제 폐지 및 과거제 실시 -> 지방 문벌 귀족 세력 약화
- 균전제, 조용조, 부병제 정비 -> 국가 재정 안정화 및 군사력 강화 ->이후 당 율령 체제에 영향
2️. 수 양제
- 대운하 건설 : 대규모 공사 통해 화북과 강남 연결 -> 남북간 물자 유통 활성화, 경제 통합 도모
- 대외 진출 추진 : 고구려 원정 시도했으나 실패 → 국력 쇠퇴
당의 성립과 발전
1️. 당의 성립 (고조)
- 수의 지방관 출신이었던 당 고조(이연)가 수 멸망 이후 혼란을 수습하며 장안을 수도 삼아 당 건국(618)
2. 당의 발전 (태종)
- '정관의 치' : 체제 정비와 세력 팽창으로 태평 성대 이룩
- '천가한' : 동동궐 및 서북 지방 북방 민족 점령, '중국과 북방 유목민의 왕'
3. 당의 발전 (고종)
- 서돌궐 및 중앙아시아 돌궐 정복, 신라와 연합해 백제와 고구려 멸망
- 기미 정책 :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주변 민족은 간접적으로 통치함 → 도독 임명 및 도호부 설치
- 율령 체제 확립 : 중앙 -> 3성 6부제(중앙 행정 조직, 중앙집권체제 강화) / 지방 -> 주현제
- 조세 : 조·용·조(각각 곡물, 노동력, 직물을 가리킴)
- 군사 : 부병제(토지를 받은 농민이 군사 의무를 지님)
- 관리 임용 : 과거제(능력에 따른 인재 등용)
4. 당의 쇠퇴
- '개원의 치' : 당 현종 때 농업, 수공업, 무역 등의 발전 ->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고 전성기를 맞음
- 8세기 중반 안사(안녹산, 사사명)의 난 → 지방 최고 사령관 절도사 세력의 성장, 중앙의 권력 다툼, 화북 지역 황폐화 → 당의 율령 체제 붕괴
- 농민의 몰락 : 균전제 → 장원제(지주 등장 및 사유화), 조·용·조 → 양세법(1년에 2번 세급 납부), 부병제 → 모병제(직업 군인 모집)
- 멸망 : 환관의 횡포, 황소의 난(875) → 절도사 주전충에게 멸망(907) → 절도사들이 서로 나라를 세워 난립, 5대 10국의 혼란기 시작
당의 교류와 문화
1️. 교류
- 배경 : 농업 생산력 향상 이후 상업 발달 -> 상인 조합 결성, 약속 어음 발행 등 + 적극적 대외 정책으로 7세기 중반 도서 교역료 확보
- 비단길과 바닷길을 통해 서역의 유리와 보석, 중국의 비단과 화려하고 이국적인 도자기(당삼채)가 교류됨
- 수도 장안은 비단길의 출발점이자 다양한 종교의 사원이 존재
- 조로아스터교, 경교(네스토리우스교), 이슬람교, 마니교 등 다양한 종교 전래
2. 종교
- 불교 : 선종, 정토종 등 다양한 종파 형성 / 국가 지원 아래 호국 불교 성격 / 현장의 여행기 『대당서역기』
- 도교 : 왕실 지원 아래 도교 사원 건립하며 발전
3️. 문화
- 귀족적 성격 : 시(이백, 두보), 회화(왕유), 서예(구양순,안진경)
- 유학 : 훈고학을 집대성한 『오경정의』(공영달) → 과거 시험의 기준, 획일적인 경전 해석으로 유학의 발전을 저해
- 주변 국가에 큰 영향을 미쳐 한자, 유교, 율령, 불교 등을 중심으로 하는 동아시아 문화권 형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