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십자군 전쟁과 중세 유럽의 변화
1️. 십자군 전쟁
- 대내적 배경 : 11세기 들어 서유럽 지역 농업 생산력 향상 및인구 증가 -> 대외 확장에 관심
- 대외적 배경 : 11세기 후반 이슬람 세력인 셀주크 튀르크가 예루살렘 점령, 비잔티움 공격 → 비잔티움 황제가 로마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 도움 요청
- 전개 : 로마 교황이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예루살렘 회복 위해 전쟁 호소 → 유럽의 제후와 기사·상인·농민 등이 십자군 결성 → 십자군 전쟁 시작(1095)
- 경과 : 200여년간 수차례 원정 → 한때 예루살렘 회복, 점차 상업적 이익을 추구하며 변질(ex. 콘스탄티노폴리스에 라틴 제국 수립, 약탈) → 성지 회복 실패
2. 십자군 전쟁 이후 유럽의 변화
- 정치 : 전쟁을 주도한 교황의 권위 약화, 전쟁에 참여한 제후와 기사 몰락 / 상대적으로 왕권은 강화됨
- 경제 : 지중해 중심의 원거리 무역 활발 → 상공업 및 도시 발달
교역의 발달과 도시의 성장
1️. 배경
- 11세기 농업 생산력 증대, 시장 형성, 상공업 발달 → 도시 발달
- 십자군 전쟁으로 원거리 무역(지중해 무역) 활발하게 이루어짐
- 교통 요충지라 할 수 있는 지중해 연안 도시(베네치아, 제노바) 성장
- 북유럽 도시들의 ‘한자 동맹’을 통한 북유럽 무역 장악
2. 도시의 성장
- 초기의 도시는 영주의 지배를 받았으나 영주와 타협해 자치권 인정받음
- 길드의 등장 : 도시의 상인과 수공업자의 동업 조합인 길드 형성 → 시민 계층 성장 → 자치권 획득(봉건 영주로부터 무력 또는 돈으로 특허장 획득)
- 길드의 역할 : 상업 독점권 확보, 상업 및 생산 활동 규제, 자취권 취득에 앞장섬
- 시민들은 신분상 자유를 누리고 법을 제정하며 도시 행정을 자치적으로 운영
3. 장원의 붕괴
- 상업 발달과 화폐 사용 : 영주가 농노에게 부역과 현물 대신 화폐 요구, 화폐로 농노가 영주로부터 해방되기도 함
- 흑사병 유행(14세기 중엽) : 인구 감소 → 노동력 부족 → 영주들이 농민 처우 개선하거나 농민 더욱 압박 → 농민 반란(자크리의 난, 와트 타일러의 난) → 장원 붕괴
중앙 집권 국가의 출현과 교황권 쇠퇴
1. 국왕권 강화
- 영주, 기사, 교황의 약화 : 십자군 전쟁의 실패, 장원의 붕괴, 화약과 대포의 등장으로 기사의 위상 추락
- 상공 시민층의 국왕 지원 : 시민의 경제적인 지원 --> 국왕은 관료제와 상비군 운영, 시민의 자유로운 상공업 활동 지원
2. 백년전쟁(1337~1453)
- 배경 : 프랑스 왕위 계승권, 프랑스 내 영국 영토에 대한 지배권, 모직물 공업의 중심지 플랑드르 지방을 둘러싸고 프랑스와 영국 대립
- 전개 : 프랑스는 영국군에게 수도 파리까지 점령당함 → 잔다르크의 활약으로 프랑스 승리 →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
3. 장미전쟁(1455~1485)
- 배경 : 왕위 계승 문제로 영국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의 충돌(두 가문의 문장이 각각 붉은 장미와 흰 장미)
- 결과 : 봉건 귀족 몰락,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
4. 에스파냐와 포르투갈
-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중앙 집권 국가로 성장
5️. 교황권의 쇠퇴
- 14세기 초 교회 및 성직자 과세 문제로 프랑스 필리프 4세와 교황 보나파키우스 8세 대립 → 교황 굴복 → 14세기 초 로마 교황청 아비뇽으로 이전, 약 70년 간 프랑스 통제 (아비뇽 유수)
- 교회의 대분열 시대 : 로마 교황과 아비뇽 교황의 정통성 대립 → 교회의 권위 실추
- 성서 기반 신앙 강조 : 교회의 세속화와 성직자 타락에 대한 비판 (영국의 위클리프, 보헤미아의 후스)
- 콘스탄츠 공의회(1414~1418) 소집 : 위클리프와 후스를 이단으로 몰아 처형 / 로마와 아비뇽의 교황 폐위, 단일 교황 선출
- 교회 개혁에 대한 대중의 요구는 끊이지 않아 이후 16세기 종교개혁의 발판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