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왜 중요한가? 🔥
조선 시대 유물 우수수... 가치는?
- 서울 사대문 안은 과거 조선의 중심부다. 여기서 나온 유물은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지표다.
- 가치가 높은 유물이 많이 나와 연구는 물론 시민들에게도 좋은 볼거리가 된다.
- 이번 문화재는 말 그대로 '역사적' 발견이라 조선 활자사(史)를 다시 쓸 일대 사건이다.
늦어지는 개발, 현재냐 과거냐
- 도심 공사 과정에서 유물이 나오면 발굴에 힘쓰느라 그만큼 기간은 늘어난다.
- 공사를 진행하는 입장에서는 보존과 개발 사이에서 진땀을 흘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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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진
인사동에서 조선 금속활자
서울 한복판에서 세종의 숨결이 담긴 유물이 무더기로 나왔다. 시작은 종로구 인사동 오피스 건물 공사 현장이다. 공사 중 나온 항아리에서 한글 금속활자 580여점, 한자 금속활자 1000여점이 발견됐다. 15~16세기 조선 전기의 유물이다.
과학유산인 천문시계 부품과 물시계 부속품의 일부로 추정되는 동제품도 나왔다.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를 마치고 국립고궁박물관에 보관된 상태다.
훈민정음 표기 담겼다: 가장 눈길을 끄는 건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표기가 반영된 한글 금속활자다. 15세기에 쓰였던 동국정운식 표기가 담긴 활자가 실제로 나왔다.
- 동국정운: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펴낸 우리나라 최초의 표준음에 관한 운서(韻書). 중국의 한자음을 표현하기 위해 쓰인 ㅭ, ㆆ, ㅸ 등이 기록됐다.
물시계 실물까지: 항아리에서는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부품들이 잘게 잘린 상태로 출토됐다. 부속품 '주전'(籌箭)의 일부로 추정되는 동제품이다. 또 항아리 옆에서는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부품도 나왔다. 화약과 총알을 장전해 손으로 불을 붙여 쏘는 '총통'은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 등 총 8점이 발견됐다.
- 어라 땅에 왜 이게...: 유물을 캐내자고 땅을 파헤친 게 아니라 땅을 파려다 보니 유물이 나왔다. 오피스 건물 공사 부지인 인사동 79번지에서 발굴조사를 한 결과다. 일정 규모의 건설공사를 할 때는 땅 속에 문화재가 묻혔는지 지표조사를 해야 한다. 여기서 문화재가 있다고 판단되면 발굴조사를 통해 문화재의 가치와 공사 강행 여부 등을 체크하게 된다.
광화문에서는 건물터
앞서 광화문에서도 조선 시대의 흔적이 발견됐다. 현재 광화문 광장은 구조를 바꾸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3월부터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도자기와 기왓장은 물론, 조선 시대 핵심도로인 육조거리(현 세종대로) 흔적들이 나왔다.
- 광화문 육조거리 터는 지난 5월 일반인에게 공개됐다. 향후 보존 방향은 공개에 참여했던 시민들의 의견을 반영해 결정된다.
학계는 '열광'
학계는 흥분을 금치 못한다. 인쇄사를 다시 쓸 역사적 발굴이라서다. 임진왜란 이전에 만들어진 조선 시대 금속활자는 '을해자'(1455년) 30점가량만 있었다. 이번에는 이보다 20년 이른 세종 때의 한자 활자 '갑인자'(1434년)로 보이는 실물 금속활자가 쏟아져 나왔다.
이슈와 임팩트
금속활자 연구 박차
출토된 유물들은 이제까지 나온 조선 금속활자 중 가장 완성도가 높다. 훈민정음의 표기법을 따른 터라 한글 연구에 중요한 사료가 된다. 한글 창제의 영향과 당시 인쇄 활동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세계에서 처음으로 금속활자를 만든 나라의 확고한 지위도 덤이다. 최초 금속활자의 유래는 1377년에 찍은 인쇄본 '직지심체요절'로 알려져 있다. 독일 구텐베르크(1450년경)의 금속활자 인쇄본보다 먼저지만, 직지심체요절은 인쇄본만 있을 뿐 활자 실물은 없었다.
- 구텐베르크보다 먼저: 이번에 나온 한자 금속활자 중 적어도 6점은 갑인자로 추정된다. 1434년 제작된 게 최종적으로 확인되면 세종이 임금으로 있던 기간(1418∼1450년)에 만든 금속활자의 최초 실물이자, 구텐베르크 금속활자보다 20년가량 앞선 것이 된다.
600년 전 과학기술 복원
활자뿐 아니라 과학유산도 나왔다. 물시계와 천문시계 부품이 출토됐다. 그야말로 '과학박물관'이 차려진 모습이다. 실물을 통해 당시 과학기술을 복원해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
- 눈으로 확인한 물시계: 구슬을 저장했다가 방출해 시보 장치를 움직이는 '주전'은 물시계의 실존을 증명한다. 기록으로만 전해졌던 물시계의 실물이 처음 나왔다. 이를 통해 조선 시대 과학기술 발달상을 가늠해볼 수 있다.
늦어지는 공사
학계는 흥분했지만 개발 측면에서 유물 출토가 달갑지만은 않다. 공사 기간이 예정보다 늦어질 수 있다. 일단 제대로 파내는 데 시간이 걸리고 행정절차도 밟아야 한다. 현장 보존도 해야 해 기존 계획을 바꿔야 한다. 발굴 비용을 공사 시행사가 부담해야 하고, 문화재도 국가에 귀속되는 터라 기쁘지만은 않다.
- 매장문화재 보호법에 따르면 건설공사 도중 매장된 문화재를 발견하면 이를 국가에 신고해야 한다. 이를 어기면 징역 또는 벌금형에 처해진다.
스탯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학계: 신문 1면에 실릴 만큼 대단한 발견이다.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추정되는 실물을 찾았다. 애타게 기다리던 유물이다. 이번을 계기로 한글에 대한 관심도 다시 피어오르기를 빈다. 지금은 검증 과정에 힘 쏟아야 할 때다.
문화재청: 시민들에게 빨리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지만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조선 전기의 귀한 유물들이지만 전문가들의 검증이 아직 끝난 건 아니다. 지금 정부가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을 건립하고 있다. 검증이 끝난 뒤 전시 요청이 오면 적극 협조하겠다.
시민: 빨리 나도 실제로 보고 싶다. 박물관에서는 언제 만나볼 수 있을까. 혹시 내 발밑에도 유물이 묻혀있는 것 아닐까? 기분 좋은 상상이다.
진실의 방: 팩트 체크
왜 그곳에 묻혀있었을까
유물이 나온 지역은 탑골공원 맞은편. 피맛골을 비롯해 조선 시대 중심가가 있던 곳이다. 민가 창고로 추정되는 터에서 유물이 나왔다. 근데 나온 유물의 가치가 민가 수준을 넘었다. 이렇게 진귀한 것들이 여기서 왜 어떻게 나왔을까.
이는 당시 건물을 올리는 방식과 관계가 있다. 지금이야 건물을 지을 때 기존 것을 허물고 짓지만, 이때는 허물어진 잔해 위에 켜켜이 쌓아 올리는 게 일반적이었다. 한 번 묻은 뒤에는 다시 꺼낼 일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걸 왜 민가에 사는 사람이 가지고 있었냐는 의문은 남는다.
생각해볼 수 있는 가설은 크게 세 가지다.
1️⃣ 문화재가 나온 위치는 소중한 유물을 관리하던 부속 시설이 있던 곳이다.
2️⃣ 임진왜란 등 외세 침략을 피하기 위해 누군가 급하게 숨겨 놓았다.
3️⃣ 동은 당시 무척 귀한 금속이라 추후 재활용하기 위해 모아뒀을 것이다.
문화재 당국은 향후 추가 연구를 거쳐 진실을 밝혀낸다는 계획이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일본에 뺏긴 우리 유물 '오구라 컬렉션'
지금이야 우리 땅에서 나온 우리 유물에 환호할 수 있지만 '뺏기는' 역사도 있었다. 특히 식민지배를 받았던 우리나라는 일제 시절 이 같은 상황을 겪었다. 부동산 투기로 부를 축적한 사업가 오구라 다케노스케는 문화재를 도굴해 수집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하자 그는 이를 싣고 일본으로 밀항했다.
오구라가 소장한 1000여점의 문화재는 일명 '오구라 컬렉션'으로 불리며 1981년 도쿄 국립박물관에 기증됐다. 오구라 컬렉션 절반 이상은 경상도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마음 놓고 보여줄 수 없는 아프간
이번에 나온 유물들은 추가 연구를 거친 뒤 시민들에게 공개될 전망이다. 하지만 마음 놓고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나라도 있다. 수십년간 전쟁과 내전으로 혼란을 겪는 아프가니스탄은 박물관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는 상황. 그래서 고안한 게 해외 순회전시다. 외국 박물관을 통해 유물을 소개하고 상태 점검까지 받는 것. 훼손 위기에 처한 유물을 지키는 고육지책이자 전쟁이 낳은 슬픈 현실이다. 한국에서는 지난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객들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