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미국의 애틀랜타 총격 사건 소식을 접하며 에디터는 생각했어요.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되 범죄자보다 희생자, 그리고 범죄를 가능케 한 사회적 맥락에 집중해야 한다고요. 이 사건이 증오범죄인지에 대한 논쟁은 왜 일어나고 있을까요? 또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혐오에 맞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을까요?
왜 중요한가? 🔥
경찰은 총격 사건이 증오범죄였는지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가운데 범죄 동기가 성중독인지 인종에 기반한 증오나 편향인지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논쟁의 배경에는 코로나19 대유행과 지난해부터 급증한 인종차별 및 증오범죄 보고 사례가 놓여있다.
트럼프 대통령, 인종주의적 발언 쏟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은 코로나19 대유행 초기부터 바이러스를 '중국 바이러스'(China virus)로 부르며 중국의 책임을 물었다. 중국의 무술 쿵푸(Kung fu)와 독감(flu)을 섞어 만든 단어 '쿵플루'(Kung flu)를 사용하기도 했다. 이런 인종 차별적 발언이 보도되며 아시아계 대상 혐오 사례도 늘었다.
아시아계 대상 혐오 사례 봇물: '아시아·태평양계 혐오를 멈춰라'(Stop AAPI Hate)의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약 1년간 보고된 혐오표현 사례는 약 3800건에 달한다. 언어, 폭력, 시민권 위반, 온라인 괴롭힘 등이 포함된 수치다.
- 2020년 미국 16개 대도시에서 아시아인 대상 증오범죄 보고는 2019년에 비해 145% 늘었다. 증오범죄 보고 전체는 6% 감소했다.
큰 그림
청사진
증오범죄 적용을 둘러싼 논란
애틀란타 총격 사건의 전말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애틀랜타 교외 체로키 카운티의 마사지숍 1곳과 애틀랜타 시내 스파 2곳, 용의자는 21세의 백인 남성이었다. 총격 사건 직후 용의자를 체포한 경찰 당국은 17일 8건의 살인과 가중폭행 혐의를 적용했고, 사건 동기가 성중독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성중독 언급과 경찰이 용의자의 하루가 "나쁜 날"이라고 첨언한 점이 문제가 돼 사건을 축소하려 한다는 거센 비판이 있었다. 현재까지 적용된 혐의는 악의적 살인과 가중폭행이다.
- 커뮤니티에 충격: 사건이 일어난 마사지숍은 많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일하는 곳이다. 또, 희생자 중 6명이 아시아 여성이었다는 점이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에 큰 충격을 안겼다.
똑똑! 총격 사건의 한인 피해자들이 누구였는지는 여기서 볼 수 있어요.
증오범죄를 둘러싼 논란
연방수사국(FBI)도 수사에 참여했지만 증오범죄 여부는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다. 미국의 여론과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는 '희생자 8명 중 6명이 아시아 여성'이라며 사건을 명백한 증오범죄로 보고 있다.
동기 입증은 어렵다: 보통 형법상 검찰은 용의자가 법을 어긴 여부만 입증하면 되지만 증오범죄를 입증하기 위해선 '왜' 그 범죄를 저질렀는지 규명해야 한다. 범죄자의 심리적 동기에 대한 증명 자료, 즉 물리적 증거뿐만 아니라 심리 상태를 말해주는 발언이나 기록 자료가 필요한 것이다.
- 높은 수준의 연방 기준: 연방법에 따르면 증오범죄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희생자가 인종·성별·종교·국적·성적 지향과 같은 특정 요소 때문에 표적이 됐다는 규명이 필요하다. 이 기준을 '벗 포'(But For)라 하는데, 증오 동기가 아니었다면 용의자가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리라는 점이 확실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 아시아인 혐오 상징의 부재: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가 혐의를 더욱 증명하기 어렵다는 설명도 있다. 독일 나치의 상징인 스와스티카나 백인우월주의의 상징인 KKK 등 다른 소수자 집단에 대한 혐오와 편향에는 수사 당국이 증명에 사용할 수 있는 '혐오의 언어'가 있다. 그러나 아시아계 대상 편견에는 그만큼 뚜렷한 상징이 없기 때문에 증오범죄 규명이 어렵다는 것이다.
'증오범죄가 맞다'는 반론: 중국계 주디 추 민주당 하원의원(캘리포니아주)은 방송 인터뷰에서 이번 사건이 "반아시아계 증오범죄"라고 평가했다.
21세 백인 남성이 '영스 아시안 마사지'를 첫 제물로 택했다. 그러고는 27마일(43km)을 달려 또 다른 2곳의 아시아 스파를 공격했다. ... 그의 유일한 문제가 '성 중독'이라면 27마일 거리의 어디든 선택할 수 있었을 테지만 아니었다. ... 그는 특별히 아시안 스파에 갔고, 세 곳 모두 많은 아시아 여성이 있었다. — 주디 추 민주당 의원
이슈와 임팩트
혐오의 칼에 확성기로 대응하는 아시아계 커뮤니티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의 목소리
마이크를 움켜쥔 한국계 셀럽들
- 한국계 미국인 가수이자 방송인 에릭 남(Eric Nam)은 미국 타임(Time)지에 기고한 글에서 자신의 개인적인 혐오와 차별 경험을 언급하며 "아시아인들은 항상 미국인들의 도움을 요청해왔다. ... 당신들은 듣지 않았다. 당신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지금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침묵하는 것은 공모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 배우 샌드라 오(Sandra Oh)는 피츠버그의 '아시아계 혐오를 멈춰라' 시위에서 "나는 아시아인이라서 자랑스럽다" "나는 이곳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 배우 대니얼 대 김(Daniel Dae Kim)은 미국 내의 모든 소수집단은 차별과 혐오를 경험했다면서 아시아계 커뮤니티가 흑인 및 백인 앨라이(소수집단을 지지하는 이)들과 연대할 것을 강조했다.
'당사자 저널리즘': 한편 아시아계 미국인 언론인 협회(AAJA)는 사건 보도에 있어 아시아인에 대한 편견을 조심하고 맥락을 설명하며 아시아계 미국인 커뮤니티의 목소리를 대표하라는 내용의 애틀랜타 총격사건 보도 가이드를 17일 출간했다.
- 이 가이드는 특히 아시아 여성에 대한 보도에서 지나치게 성적인 측면을 부각시키는 '성애화'(sexualization)를 조심해야 하고, 총격 사건이 있었던 장소도 성매매가 일어나는 장소가 아닌 '스파'(spa)로 부를 것을 장려하고 있다.
스탯
미국 인구의 인종 비율은?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바이든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남기고 간 유산 중에 앞으로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소가 인종차별이다. 중국과의 전면적인 갈등 속에서 아시아 인종에 대한 차별이 늘어나는 추세가 걱정된다.
아시아·태평양계 미국인: 오랫동안 지속된 편향, 혐오, 차별에 계속 반발해왔지만 많은 이들이 듣지 않았다. 이제는 우리를 위해 우리가 일어설 때다.
한국인: 얼마 전에 <미나리>를 보고 '이민자의 삶은 그렇게도 힘든가' 싶었는데 요즘 뉴스를 보면 정말 차별과 혐오가 현실이 아닌가 싶다. 나부터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아닌지 언어 사용을 뒤돌아보고 반성해야겠다.
진실의 방: 팩트 체크
혐오표현과 증오범죄의 관계
혐오표현이 직접적으로 증오범죄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유리창이 깨진 곳에서는 범죄율도 높다는 '부서진 유리창'(Broken windows) 이론처럼 혐오표현이 만연한 곳은 범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미국 내 아시아계 인종차별 역사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최근 급증한 증오범죄와 인종차별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현상은, 미국에서 오랫동안 경험해온 인종차별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 경기가 나쁘고 일자리를 구하기 힘들었던 1882년에는 중국인의 이민을 막고 이미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에게 시민권을 주지 않는 내용의 중국인 배제법(Chinese Exclusion Act)이 제정됐다.
- 일본과 세계 2차대전을 치르던 1941년, 진주만 폭격 이후 미국은 태평양 연안에 거주하던 일본계 미국인 12만명을 중서부지역의 10개 수용소에 가뒀다.
- 20세기 말로 오면 "서양 여성들보다 복종적이며 조심스럽고 여성스럽다고 여겨지는 동아시아 여성들에 대한" 페티시를 일컫는 '옐로 피버'(Yellow Fever) 현상이 있다. 성과 인종에 대한 고정관념에 기반해 아시아 여성을 대상화하는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코로나19 대유행 후 서구에서 아시아인 인종차별 늘었나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는 아시아인 모두가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겪고 있습니다. — 영국의 아시안 네트워크 단체 운영자 마이-안 피터슨
코로나19 대유행이 발생한 지난해를 거치며 영국과 호주에서 아시아인 대상 인종차별 사례가 늘었다. 영국 런던의 경우 지난해 6월~9월간 동아시아인 대상 증오범죄는 전년 대비 95% 늘었다. 호주의 경우, 중국계 호주인 1000여명 대상 설문에서 37%의 응답자가 최근 1년 사이 인종차별을 경험했다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