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끈한 탕에 몸 녹던 동네 목욕탕의 추억

몸과 마음 씻던 마을 커뮤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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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노트

매일 흙먼지를 뒤집어써도 즐겁던 초등학생 시절, 조금만 더 자고 싶던 주말 아침 “깨끗이 씻고 오라”는 부모님 성화를 못 이겨 찾았던 동네 목욕탕이 생각납니다. 학교 친구를 알몸으로 만나는가 하면, 온탕과 냉탕을 물개처럼 오가다 주인 아저씨에게 혼이 나기도 했죠. 어머니는 목욕탕에 다녀오신 날 유독 표정이 밝으셨어요. 집에서 못 다한 수다를 다른 아주머니들과 신나게 나눴기 때문이겠죠. 그 시절 참 그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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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참 괜찮았지

온몸을 휘감은 찝찝함. 뜨끈한 물의 온도가 주는 안정감. 밀기 전까지는 몰랐던 몸 구석구석의 때. 쿰쿰한 물 냄새...

몸을 씻는 일은 사람의 본능이다. 청결한 몸이 머리까지 맑게 만든다. 어린 시절에는 집에서 했던 샤워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온탕에 몸을 푹 담그는 맛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동네 목욕탕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었다. 간판에 쓰인 정확한 단어는 ‘대중목욕탕’. 목 좋은 곳에 자리한 목욕탕은 높게 뻗은 굴뚝을 뽐내며 명절이면 꼭 들려야 하는 곳, 아니면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찾게 되는 신기한 곳이었다. 온탕과 냉탕을 기본으로 나무 향이 나는 사우나실, 탈의실 한복판에 자리해 손톱깎이가 놓여있는 평상, 미닫이문이 달린 냉장고, 목소리 큰 세신사 선생님이 있는 목욕탕은 딱히 좋은 건 없으면서도 막상 찾으면 마음이 참 편안했다.

친구네 집이 목욕탕을 한다고 하면 선망의 눈길로 바라봤다 대형 건물에 통째로 물을 데우는 설비와 탕을 들여놓고 직원 인건비까지 지불해 냈으니 무리는 아니었다. 발 디딜틈 없이 부대끼던 설 명절과 추석 명절, 주말에도 TV 리모콘 쟁탈전이 벌어질 만큼의 사람은 꼭 들어찼으니 겸양 섞인 주인장의 넋두리는 배부른 소리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세신사 선생님들도 명물이었다. 어떻게 손만 스쳐도 그리 깨끗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지... 조금 아픈 것 같다는 생각은 잠시, 도자기 같아진 내 피부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몇몇은 때를 벗기는 실력뿐 아니라 세상만사를 그 어떤 코미디언보다 재미있게 알려주던 만담가이기도 했다.

특히 과거의 목욕탕은 지금의 대형 찜질방과 달리 그 동네 가족들이 행차하는 일종의 커뮤니티였다. 뜨거운 온탕에 발가락 하나를 조심스레 담글 때쯤, 같은 반 친구가 날 밀어 넣던 기억이나 옆집 아저씨와 바둑을 두는 아버지들, 다녀만 오면 뽀얀 얼굴을 뽐내던 누나와 엄마의 얼굴이 동네 목욕탕의 ‘기능’을 증명했다.

지금은...

대형 찜질방의 부상으로 동네 목욕탕은 하나 둘 씩 사라져갔다. 시설은 좋아졌지만, 마을버스 정도는 타야 갈 수 있는 거리가 됐고 아는 사람을 만나는 반가움보다 모르는 동네까지 왔다는 낯선 마음이 앞섰다. 목 좋은 곳에 자리했던 목욕탕은 오피스텔이나 상가, 프랜차이즈 점포에 자리를 내줬다.

원망스러운 코로나19는 숨 막히는 탕의 열기를 흉내 내듯 산업의 숨통을 조였다. 동네는 물론이거니와 대형 찜질방까지 무너뜨렸다. 같은 물속에 몸을 담그는 목욕이 집단 감염의 매개체로 지목됐다. 조금 답답하더라도 혼자 샤워를 하는 게 일상이 됐다.

점차 줄어드는 손님에 유지가 힘든 목욕탕 사장님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버티거나 쓰러지거나. 버티더라도 이따금 찾아오는 단골손님이 잠깐 표정을 밝게 할 뿐, 끊임없이 돌아가는 보일러가 폐업 생각을 부추긴다.

행정안전부의 지방행정 인허가 자료를 보면, 현재 영업하는 전국 목욕탕은 6239곳이다. 찜질방과 사우나까지 포함한 숫자다. 서울은 757곳이 있는데 마지막 영업 허가를 낸 곳은 2021년 12월 한 호텔의 사우나였다. 2020년 서울 지역 목욕탕의 연간 물 사용량은 1516만5000톤으로 전년보다 504만4000톤 감소했다. 비율로는 4분의1을 덜 쓴 셈이다. 목욕탕이 사양산업인 건 부인 못 할 사실이 됐다.

체크 포인트

목욕탕 시설은 대형물탱크와 보일러, 샤워기 같은 각종 시설물이 뒤엉킨 복잡한 공간이다. 마이너스를 내는 상황에서는 이를 뜯어내고 폐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울며 겨자 먹기로 버티기 싸움에 돌입했다. 사장님들은 수도세, 보일러를 돌리는 가스비, 공간 임대료까지 무거운 비용을 감당하며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19 종식을 기다린다.

바뀐 문화도 동네 목욕탕을 역사의 뒤안길로 보낸다. 요즘 지은 아파트나 주택의 경우 온수 시설이 잘 갖춰졌을뿐더러, 굳이 내 몸을 다른 이와 함께 담그기보다 씻는 시간을 혼자만의 여가로 삼는 일이 많아졌다.

여기까지만 보면 바뀐 세태가 만든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잊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있다. 야외에서 일을 하거나 집에 뜨거운 물이 잘 나오지 않는 취약계층이 그들이다. 아직도 곳곳에는 연탄을 때고, 냄비에 물을 데워 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이 물 걱정, 가스 걱정 안 하고 맘편히 씻을 곳은 역시 동네 목욕탕이다. 단순히 ‘그땐 그랬지’라고 흘려보내기엔 여전히 할 일이 많다.

추억은 방울방울

타일을 치고 울리던 목소리들처럼 왁자지껄한 모임이 그리운 요즘. 집집이 잘 마련된 샤워 시설이 채우지 못하는 뜨거움이 그곳에 있었다.

요즘에는 옛 목욕탕 자리를 고쳐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시 만들거나 카페,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있단다. 목적은 바뀌더라도 그 공간에서 느꼈던 정겨운 따뜻함이 계속되길 바라면 욕심일까.

다음은 끄트머리로 개성을 뽐냈던 숫자들을 따라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