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왜 중요한가? 🔥
고위공직자를 수사하는 독립 기구의 필요성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힘 있는 사람들의 비위가 제대로 단죄되지 않는 건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칼이 검찰에게만 있는 까닭이 컸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 했던가. 권력자들의 비리를 검찰 권력이 감싸며 면죄부를 주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검찰은 '아는 사람'이나 '높은 사람'이라는 이유에서 봐주거나, '미운털'이 박힌 이에게 더 예리한 칼날을 들이댄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공수처의 목적은 고위공직자의 비리 의혹을 중립적으로 수사하고 기소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검찰이 독점해 부작용을 낳았던 수사권·기소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제대로만 작동한다면 과잉수사나 제 식구 감싸기 등 검찰 체제의 부작용을 해소할 방안으로 꼽힌다.
출범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겹게 첫발을 내디딘 공수처가 성공을 거두면 우리나라 권력형 비리 척결 역사의 이정표가 된다. 그런데 정말 성역 없이 단죄할 수 있을까. 출범 배경처럼 실제로 중립적이고 독립적일까. 모두가 공감하는 취지 너머의 디테일을 보면 답이 나온다. 출범까지의 과정과 앞으로의 계획, 각자의 입장을 살펴보고 성공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
큰 그림
청사진
검찰이 독점했던 수사권·기소권 부여, 본격 수사는 4월 시작될 듯
공수처는 검찰이 독점했던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할 수 있는 독립 기구다. 검찰이 독점했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받아 입법·사법·행정부의 3급 이상 고위공직자와 그 가족의 비리를 파헤칠 수 있다. 같은 사안이라도 입장이 다른 정부와 검찰 간 힘겨루기, 특정인을 향한 프레임 수사, 승진을 의식하는 경직된 검찰 조직문화 등 각종 외압에서 벗어나 공정히 수사하겠다는 게 공수처의 취지다. 그러나 본격적 활동을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인력 구성을 마친 뒤 수사대상 선정과 착수 등 첫 성과를 제대로 확인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공수처장으로는 판사 출신인 김진욱 헌법재판소 선임헌법연구관이 임명됐다.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철저히 지키고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는 게 그의 취임 일성이었다.
베이스캠프는 과천, 재판은 서초동, 대상은 3급 이상 고위공직자
- 1차 베이스캠프는 법무부에: 공수처 사무실은 경기 과천 정부종합청사에 자리한다. 허나 법무부의 고위직 공무원도 수사 대상으로 포함돼 법무부 건물을 쓰는 게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수처가 기소한 사건은 서초동 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한다. 재판 장소와의 물리적 거리를 무시할 수 없다. 이에 서초동으로의 이전 이야기가 피어나온다.
- 칼날은 '3급' 이상 공직자 비리 겨냥: 수사 대상은 대통령과 국회의장, 국회의원,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검찰총장을 비롯한 판·검사, 장성급 장교 이상 군인, 국가정보원·감사원·국세청·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소속 3급 이상 공무원 등 고위공무원을 망라한다. 본인과 그 직계가족을 수사할 수 있고, 대통령의 경우 4촌 가족까지 포함된다. 7100여명이 공수처의 수사 대상이 될 것으로 추산되고 이중 판·검사는 5600명에 이른다.
- 기소권은 법조계와 경찰에 적용: 단 재판으로 넘기는 기소권 행사 범위는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비롯해 검찰총장, 판·검사, 경무관 이상 경찰공무원의 범죄다. 기소하지 않는 방식의 제식구 감싸기를 막기 위해 검찰에 대한 기소권을 공수처에도 줬다. 나머지 사건의 기소권은 검찰이 갖는다.
영향력 큰 '넘버 2' 도 대통령이 임명, 검사는 공개모집
공수처는 처장을 비롯해 차장, 23명의 검사와 40명의 수사관, 20명의 직원까지 총 85명으로 구성된다. 현재는 초반 행정지원을 위해 검찰 수사관 10명만 파견 나와 있다. 인사와 앞으로의 수사 방향에 영향을 미칠 차장 인사는 판사 출신이 제청됐다.
- 차장 인선과 인사위원회 구성 먼저: 가장 큰 관심사는 '넘버2'인 차장이다. 항해에 비유하면 선장(공수처장)을 돕는 일등 항해사에 가깝다. 인사위원회에 참여해 검사를 추천하는 역할도 맡는다. 차장은 처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김 처장은 판사 출신의 여운국 변호사를 차장 후보로 제청했고, 문 대통령은 이를 재가했다. 다음은 인사위원회 구성이다. 김 처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위원회 구성에 2~3주가 소요될 것으로 내다봤다.
- 일꾼은 '공개모집'으로: 실무를 맡을 검사는 공개모집한다. 수사·공소부 부장검사 4명과 평검사 19명 등 총 23명을 공모로 뽑는다. 다음 달 초 서류전형을 실시한다. 공수처법에는 검사 출신이 전체 검사 정원(처장과 차장 포함 25명)의 의 2분의 1을 넘지 못한다는 조항이 있어 전직 검사는 최대 12명으로 제한된다. 서류와 면접평가로 후보군이 추려지면, 인사위원회 재적 위원의 과반 찬성으로 최종 선발된다.
- '합헌' 결정으로 구성에 박차": 야당은 공수처가 입법부·행정부·사법부 어디에도 속하지 않아 삼권분립 원칙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었다. 위헌(헌법에 위배됨) 결정이 나오면 공수처는 존폐를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독립된 형태의 행정기관을 설치하는 것이 헌법상 금지된다고 할 수 없다"며 합헌 결정을 내리며 공수처 구성은 탄력을 받게 됐다.
인사위원회 구성에 3주가 걸리고 검사 후보 추천과 최종 결정까지 끝나려면 최소 2달은 기다려야 한다. 1호 사건의 윤곽과 방향은 벚꽃이 피는 4월쯤에야 드러날 전망이다.
이슈와 임팩트
제식구 감싸기 없앤다지만...처장 집중 권력은 우려
뭐니뭐니해도 가장 큰 효과는 검찰 개혁이다. 현재 검찰은 수사권과 기소권이라는 칼날로 사실상 정치권과 기업, 정부 등 모든 분야를 찌를 수 있다. 반대로 검찰 비리는 혐의가 있어도 검사의 수사와 기소가 없으면 진실이 묻히는 게 현재까지의 구조였다.
공수처가 취지대로만 제대로 작동하면 검찰 권력 분산과 개혁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 1호 사건의 대상이 될 인물은 수사만으로도 여론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을 전망이다.
- 제 식구 감싸기 NO: 이제까지 권력형 비리 수사는 역설적으로 권력이 봐주는 측면이 있었다. 검찰만 수사와 기소권을 가진 상태에서는 비리를 저질렀어도 기소를 하지 않는 식으로 감싸주거나, 반대로 특정인의 범죄 혐의를 털어 '찍어내리는' 표적 수사가 가능했다.
독립 기구로 구성된 공수처는 이 같은 부작용을 일부 해소할 수 있다. 문 대통령은 "검찰이 민주적 통제를 받게 된다면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직 검사를 절반 이하로 제한한 것도 '제 식구 감싸기'를 막기 위한 장치다.
- 공수처장에 집중된 권력: 일각에서는 공수처장에 권력이 집중돼 권력형 비리 수사를 좌지우지할 거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공수처장 판단에 따라 사건을 다른 곳으로 돌리거나 가져올 수 있어서다. 공수처장이 사건 이첩(사건을 가져오는 것)을 요구하면 해당 수사기관은 이에 응해야 한다. 법에는 진행 정도나 공정성 논란 판단을 따르도록 했지만 그 구체적 기준이 모호하다. 역으로 보면 다른 기관이 수사하는 건을 뺏어와 기소하지 않는 것도 가능하다.
반대로 공수처가 맡았던 사건을 다른 수사기관으로 넘길 수도 있다. 또한 경찰이나 검찰은 고위공직자의 범죄가 인지되면 곧바로 공수처에 알려야 한다. 수사 주체를 결정하는 권한이 공수처로 집중되는 셈이다.
- 1호가 될 순 없어: 공수처의 1호 수사대상에 이목이 쏠린다. 공수처가 확인한다는 건 그만큼 사안이 중하다는 뜻이 된다. 새로 발걸음을 내디딘 공수처도 성과를 내야 하는 입장이다. 대상 선정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검찰 개혁의 일환으로 공수처 설치가 이뤄진 만큼 검찰을 가장 먼저 수사하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권력형 비리 척결 취지에 맞춰 청와대를 겨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현재 언론에서는 윤석열 검찰총장이나 직권남용 의혹을 받는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이름이 1호 사건 후보로 오르내린다.
스탯
1+1+23+40+20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정부여당은 '맑음' 야당과 검찰은 '울상'
- 정부: 문 대통령은 김 처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정치로부터의 중립, 기존 사정기구로부터의 독립이 중요하다"며 “정말 기대가 크다”고 했다. 모든 언행에 의미가 담긴다는 대통령의 입에서 ‘정말 기대가 크다’는 언급이 나온 건 공수처에 얼마나 사활을 걸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공수처가 성공적인 평가를 받으면 현 정부의 치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 여당: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 출범을 검찰개혁의 시작으로 보고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공수처 출범으로 검찰권력 분산과 검찰개혁을 바라는 국민들의 염원에 한 발 더 다가갔다. 멈추지 않고 검찰의 지속가능한 개혁을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단 여당도 공수처장 통제에 헛점이 있다는 점은 우려하고 있다.
- 야당: 앙금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독립성과 중립성을 증명할 차장을 대통령이 선택하도록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공수처장이 제청한 후보를 대통령이 선택하게 하는 건 독립성이라는 공수처의 아이덴티티를 흔들 수 있다는 이야기다 또한 공수처법이 합헌 결정을 받은 데 대해 유상범 의원은 "정치적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 검찰: 기분이 좋을 리 없다. 독점하던 기소권이 다른 기구에도 생겼으니 영향력 약화는 기정사실이다. 무엇보다 검찰 자신들의 비위를 다른 기구가 들여다볼 수 있다는 데 거부감이 있다. 기소권은 검찰의 ‘자존심’이라고 불려도 과언이 아닌 기소권을 나눠가는 데 대한 불쾌감도 크다.
진실의 방: 팩트 체크
정말 '독립적'이고 '중립적'일까
공수처의 목적은 고위공직자 비리에 대한 투명하고 공정한 수사다. 수사는 결국 사람이 한다. 공수처 검사 인선을 위한 인사위원회의 결정부터가 공정성을 위한 첫발이다.
- 정부여당 입김 팍팍?: 수사 검사를 대통령에 추천하는 인사위원회 구성을 보면 정부여당 쿼터가 더 크다. 총 7명 가운데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는 인사는 최소 3명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공수처장, 처장이 제청해 대통령이 임명하는 차장, 처장이 위촉하는 1인이 그들이다. 여기에 여당 교섭단체가 추천하는 2인을 더하면 7명 중 5명이 정부여당 영향권에 든다. 야당 교섭단체(국민의 힘)가 추천 가능한 위원은 나머지 2명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될 수 있다. 이들의 추천으로 임명된 검사들이 친정부 인사나 여당 측 정치인들에 대한 봐주기 수사를 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 공수처가 쏘아 올린 공, 검찰이 뭉개면 땡?: 공수처의 설치 근거와 운영을 규율하는 공수처법은 막판 여야 논의 과정에서 ‘재정신청권’ 조항이 삭제됐다. 재정신청권은 검찰이 기소하지 않은 사건의 경우, 법원을 통해 다시 한번 기소 여부를 판단 받는 절차다. 검찰을 실질적으로 견제하기 위한 장치였다. 최종 법안에는 이 조항이 지워졌다. 반대로 보면 공수처의 기소 범위가 아닌 대법원장이나 판검사를 수사해 넘겼더라도 검찰이 기소하지 않으면 사건이 흐지부지되는 한계가 생긴다.
- 여전한 먼지털이 수사 가능성: 공수처가 폭주할 경우엔 어떻게 될까. 검찰이 비판받았던 것처럼 무리한 기소 우려가 여전하다. 법원의 유무죄 판결이라는 최후의 보루가 있지만, 기소까지는 막을 수 없다. 자칫 잘못 작동하면 제왕적 기구로 군림할 수 있다. 김 처장은 인사청문회서 내부 견제장치를 마련한다고 밝힌 바 있다. 공수처는 대학교수,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공수처 ‘사건평가위원회’를 설치를 추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수처장을 포함한 공수처 인사 개개인은 외부 전문가가 포함된 징계위원회에서 징계가 가능하다. 하지만 견책을 제외한 해임이나 정직 등의 징계 집행은 대통령이 하게 돼 있어 다소 미흡하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노무현 정부 숙원...문 대통령이 풀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2년 공수처 설치를 대선공약으로 내건 지 19년 만에 국민과의 약속을 지켜냈습니다. 어려움 끝에 지켜낸 국민의 기대가 '법은 누구에게나 공정하고 평등하다'는 기본 이치를 국민께 증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 허영 민주당 대변인
현 정부의 실질적인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노무현 정부에서도 공수처 설치를 추진했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공약으로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를 내걸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 ‘공직부패수사처’ 설치 법안이 국무회의에서 의결됐지만 "검찰을 배제하고 야당 탄압용 새 사정기구를 만들려 한다"는 야당의 반발로 출범이 무산됐다.
이후 당시 야당(현 국민의힘)도 2004년 총선에서 고위공직자 비리조사처 설치를 주장하는 등 공수처 필요성 자체에는 여야가 오랜 시간 공감해왔다. 참여정부의 민정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19년 만에 자신이 모셨던 이의 숙원을 푼 셈이 됐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한국은 이제서야 첫발을 내디딘 반면, 해외에서는 이미 공수처 성격의 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우리나라 공수처와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홍콩 염정공서: 염정공서(簾政公署)는 1974년 설치된 공직자 부패 수사 기구다. 영국 식민지 시절 홍콩은 고급 관료와 하급 관리에 이르기까지 부패 문제가 심각했다. 이에 독립적인 위원회인 염정공서가 설치됐고, 80년대 들어 비리 행위는 대폭 줄어들었다. 그러나 수사권만 있을 뿐 기소 여부는 검찰을 관장하는 율정사(우리나라로 치면 법무부)가 결정한다. 필요할 때는 경찰력 동원이 가능한 것도 우리나라 공수처와 다른 요소다.
싱가포르 탐오조사국: 탐오조사국(貪汚調査局)은 공직자와 기업의 부패와 횡령, 주가조작, 문서 위조 등을 수사한다. 이름에 나타난 것처럼 탐관오리를 잡는 기구라고 보면 쉽다. 기업도 수사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 고위공직자로 대상을 한정한 공수처와 다르게 민간인과 관료에 구분을 두지 않는다.
덴마크 고발기자: 대표적인 청렴 국가로 꼽히는 덴마크는 고발기자라는 특수한 형태의 기자를 양성해 사회 전반을 감시한다. 이들이 고위층의 부패행위를 찾아내 고발하면, 사법당국은 수사를 진행하고 다시 언론으로 결과를 알린다. 우리나라도 언론이 문제를 찾아내 공론화하지만 수사와 기소 결정은 여전히 기관이 자체적으로 결정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