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요즘 화제 되고 있는 홍대 치킨집의 '돈쭐' 에피소드를 보면 오늘날 소비자들은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착한' 기업에서 사고 싶은 마음을 가진 것 같아요. 최근 경제 뉴스에서 떠들썩하게 나오는 ESG에 대한 얘기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어요. 투자자가 기업의 수익성뿐 아니라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여'까지 보고 '착한'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거니까요. 이 흐름 탓에 ESG 기준 마련에 뛰어든 대기업들, 진심일까요? 함께 알아보러 가요.
왜 중요한가? 🔥
떴다 떴다 ESG
2005년 등장해 지금까지 각종 국제 기준의 형성을 주도해온 ESG 담론이 왜 갑자기 지난해부터 다시 뜨거워진 것일까?
코로나19의 충격: 일각에선 코로나 팬데믹의 충격 때문에 보다 진지하게 지속가능성을 추구할 필요가 있다는 데 큰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날 버리지 말아요: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세계적인 공급망에서 탄소중립이나 100% 친환경을 추구하고 있다. 자사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및 이해관계자도 친환경적일 것을 요구하는 ESG의 성격상,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면 ESG 기준을 마련하고 관행을 개선하는 수밖에 없다.
파도와 바람이 몰아친다
최근 ESG 기준 마련 세태를 주도하는 주체는 세계 주요 투자사들이다. 주식을 사지만 주주로서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목표가 없는 투자사들을 패시브 펀드라고 하는데, 이들 중 기후변화나 인권 문제 등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기업을 포트폴리오에서 빼버리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 역설적이게도 기업에 ESG가 돈줄과 생존의 문제가 된 셈이다.
'착한 기업'을 '돈쭐'내러 가자!: 투자가 바람이라면, 수면에서 같은 방향으로 흐름을 만드는 것은 소비자다. 코로나19를 겪은 소비자들이 '착한 소비'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 한편 MZ세대로 대표되는 젊은 세대가 자신만의 정체성 및 신중한 소비 선택을 추구한다는 점도 대세에 맞아떨어지고 있다.
큰 그림
청사진
처음 만나는 ESG
E S G... 먹는 건가?
ESG(Environmental, Social, and Governance) 기준에는 환경, 사회, 그리고 지배구조라는 세 요소가 있다.
E, 환경: 기업이 사용하는 자원과 에너지, 그리고 발생시키는 쓰레기나 폐기물 등을 통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한다.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온실가스와 탄소 배출보다 더 큰 개념이다.
- 예시: 기업 A는 전기를 얼마만큼 사용하고 탄소와 쓰레기를 얼마만큼 배출시키나? 재활용은 잘하고 있나?
S, 사회: 기업이 고용하거나 이어져 있는 사람과 집단, 기관 등에 미치는 영향을 포괄한다. 노동자에 대한 대우, 다양성, 사회 약자의 인권 등과 특히 연관이 깊다.
- 예시: 기업 A는 같은 가치를 지닌 기업들과 협업하고 있는가? 지역사회에 수익을 환원하거나 봉사활동을 하고 있나? 노동자들의 안전과 건강에 대한 기준은 지켜지고 있는가?
G, 지배구조: 기업 운영을 가능하게 하는 실천, 통제, 절차 등으로 이뤄진 시스템을 말한다. 의사결정 과정, 인사정책, 기업 구조와 정책 등이 포함된다.
- 예시: 기업 A의 이사회에 이해관계 충돌은 없는가? 의사결정 과정은 민주적이고 책임성을 띠고 있는가?
세계적 흐름
투자는 몰리고: 세계적으로 ESG에 몰리는 투자 자산은 최근 몇 년 가파르게 상승했고, 2030년까지 130조달러(14경6575조원)가 몰릴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미 글로벌 투자기관의 상당수가 ESG 기준을 활용하고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은 ESG 종목을 지금의 2배로 늘리고, 화석연료 매출이 25%를 넘어가는 기업에 투자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치고 나가는 EU: EU는 기업들이 전 공급망에 걸쳐 환경, 인권 문제 등에 해를 가하는 활동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당장 3월부터 역내 모든 금융회사를 대상으로 ESG 공시가 의무화된다.
ESG 대륙을 평정하라!: 문제는 ESG 평가에 대한 통일된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ESG 규제 및 정책은 200개가 넘고, 관련 평가 및 데이터 공급업체는 600개가 넘는다. 광대한 글로벌 대륙의 '도량형'을 통일할 수 있는 기준으로는 국제기구 GRI(Global Reporting Initiative)나 세계 최대 투자사 블랙록의 SASB, TCFD 등이 있다. 이 셋을 포함한 5개의 주요 기관이 합작으로 통일된 기준 마련에 나섰다.
한국 대기업, 앞다퉈 ESG 전환 나서나
정부 曰, 2025년부터 숙제 검사할게요: 한국 정부는 국내 기업의 정보 공개가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상황을 고려해 2025년까지는 공개를 자율 공시에 부칠 예정이다. 2025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는 환경 및 사회적 활동을 담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공시해야 한다. 5년 뒤인 2030년에는 모든 코스피 상장사로 확대 적용된다. 또 2026년부터 모든 코스피 상장사에 '기업지배구조 보고서'가 공시 의무화된다.
체질 개선에 나선 재계: 4대 그룹을 포함한 재계의 주요 그룹은 사내 전담 조직을 만들거나 계열사와 연계하는 등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 SK그룹: SK 최태원 회장은 직접 깊은 관심을 보이며 행동에 옮기고 있다. 지난해 SK 그룹의 6개사가 국내 기업 최초로 기업 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데 성공했다. SK 그룹은 또 계열사 16곳에 ESG 전담부서를 신설했다.
-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경우, 기존 부서를 격상해 CEO 직속 지속가능경영 추진센터를 설치했다. 반도체 사업장 평가 기준에도 ESG 성과를 산출해 평가할 예정이다.
- 유통업계: 소비자에 좀 더 밀접한 유통업계의 경우 롯데마트가 작년 매장 내 플라스틱과 비닐 사용량을 반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고, 신세계백화점이 백화점 최초로 세제를 리필할 수 있는 스테이션을 선보였다.
이슈와 임팩트
ESG, 미래일까
기업득실
잃는 것: ESG 전담 부서를 설치하고 통계 자료를 뽑는 데만 비용이 1억원 이상이 든다고 한다. 전문가로 이뤄진 전문 부서를 꾸려 보통 100장이 넘는 연간 보고서를 발간해야 하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는 상당히 부담되지 않을 수 없다.
얻는 것: 글로벌 투자사들이 ESG 기준으로 종목을 결정하는 세태가 지속된다면 기업 입장에서 ESG 기준 마련 및 준수는 수익만큼이나 생존의 문제가 된다. 친환경적이고 사회적으로 책임 있는 기업의 상품을 소비하기 원하는 소비자들의 성향도 역시 작용한다. 즉 부서 설치, 시설 개선, 관행 혁신 등의 숙제를 잘 해내면 투자 유치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의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
ESG '대세론'의 부상
경제계 전문가들은 앞으로도 ESG가 글로벌 경제 흐름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접근성 개선, 추세의 일관성, 소비자 특성, 그리고 수익성이 언급된다.
스탯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파도 타는 군중의 마음
해외 대기업: 우리가 이 흐름을 주도해야 하고, 정말 진지하게 혁신해서 브랜드의 이미지와 가치를 높여야 한다. 소비자는 우리를 알아줄 것이다.
국내 대기업: 글로벌 네트워크에서 흐름을 주도하고 해외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으려면 지금 바로 박차고 나가야 한다. 이 부장, 빨리 빅테크 사례 연구하고 부서 신설해서 보도자료 내!
개미투자자: 임팩트 투자, 가치 투자, 사회적 책임투자... 뭐가 이렇게 많아? 아무튼 지구 살리는 게 좋다니까 내 돈도 여기에 투자해주세요. 공매도 논의에선 외국 기관 투자자들 나쁜 사람들인 줄 알았더니 ESG도 열심히 하고 있구먼!
진실의 방: 팩트 체크
CSR... ESG... 다 같은 '착한 기업' 아냐?
사실 넓은 의미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한 담론은 새로운 얘기가 아니다. 국내에도 유한양행이나 '갓뚜기'로 불리는 오뚜기, 그리고 사회적 기업 등 특정 기업이나 영역을 중심으로 한 논의와 노력은 있었다. ESG의 전신으로도 볼 수 있는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적 책무)은 환경이나 지배구조보다도 고용, 노동자에 대한 대우, 사회 복지 기여라는 사회적 책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업의 수익 모델에 '지속가능성'을 주요 요소로 도입하기보다는 기존의 관행을 이어가면서 별도의 재단을 설립해 사회에 환원하는 구조 탓에 비판을 받았다. 아동 노동을 이용하거나 환경을 파괴하면서 낸 수익을 사회에 환원하며 '이미지 세탁'을 한다는 측면에서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ESG의 역사
국내 언론에서는 최근 특히 언론에서 더 자주 등장하지만, ESG 기준이란 말은 10년도 더 전에 만들어졌다.
2005년. "배려하는 자가 승리한다(Who Cares Wins)"는 연구에서 ESG가 처음 사용됐다. 환경, 사회, 그리고 지배구조와 연관된 요소들이 기업의 경영과 재무에 직접적으로 반영돼야 한다는 인식에 기인했다. 당시 국제연합(UN)의 사무총장 코피 아난이 세계 유수 기업을 모아 논의를 주도한 결과였다.
2008년 금융위기. 월스트리트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 사례로도 반추되는 2008년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ESG 담론이 탄력을 받는 데 일조했다. 투자사도 사회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기후 악당에서 '청정 중국몽'?
글로벌 공급망에서 노동집약적인 생산단계와 가장 관련이 깊은 중국은 탄소배출, 인권 문제, 투명성 부재, 부패 등으로 오랫동안 비판을 받아왔다. 하지만 시진핑 주석이 지난달 2060년까지 탄소 중립을 실현하겠다고 밝히는 등, ESG 기준이라는 꼬리표가 붙은 글로벌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전문가들은 ESG를 둘러싼 미중 관계가 협력보다는 경쟁과 대립이 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즉 미국은 인권 등의 문제를 들어 중국 기업의 ESG 기준에 대한 압박을 넣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 반면 중국은 일당체제와 국유기업으로 대표되는 경제 시스템을 활용해 하향식 '물갈이'로 맹추격에 나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