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왜 중요한가? 🔥
KT '먹통'에 묶인 디지털 손발
- KT의 인터넷 통신망에 장애가 일어났다.
- 점심시간 먹통 사태가 일어나며 불편이 컸다.
네트워크로 연결된 우리나라
- IT 강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이면에는 통신 장애로 인한 리스크가 숨어 있다.
- 서비스는 복구됐지만, 후속 절차가 남아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큰 그림
청사진
단절의 습격
지난 25일 오전 11시쯤 KT 유·무선 인터넷 서비스에 장애가 발생했다. 2시간이 채 안 되게 발생한 장애지만 피해는 컸다. 모바일과 PC 네트워크는 물론, 인터넷과 TV가 끊겼다. 일부에서는 일반전화까지 안 됐다.
사회 곳곳 '먹통': 전국이 혼란에 빠졌다. 버스 정류장의 도착알람 전광판 표시가 끊기고, 교통카드 인식이 되지 않았다. KT망을 쓰는 지하철 물품 보관함도 못 열었다. 중간고사를 맞은 대학교는 줌이나 구글밋이 끊겨 과제를 못 낸 이도 있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QR인증도 원활하지 못했다.
인터넷 끊기니 계산까지: 인터넷이 안 되니 '지갑'까지 닫혔다. KT망을 이용하는 가맹점에서 포스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포스기가 안 돌아가니 카드 결제가 불가능했다. 현금 결제를 유도했지만, 이미 카드가 익숙한 시민들의 주머니에 현금은 찾기 어려웠다. 카드업계는 KT 인터넷 장애가 발생한 시간대에 평소보다 카드 승인이 35~40% 정도 감소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디도스 때문?
KT는 당초 '디도스'(DDos) 공격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디도스 공격이란 서버가 처리할 수 있는 용량보다 많은 정보를 보내는 공격이다. 서버 과부하를 유도해 다운시킨다. KT는 이날 장애 직후 "대규모 디도스 공격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된다"면서 "위기관리위원회를 즉시 가동하고 빠른 복구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번복된 원인
하지만 KT는 말을 바꿨다. 오후 2시쯤 '라우팅'(Routing) 오류를 장애 원인으로 파악했다고 정정했다. 라우팅은 네트워크 경로설정 절차를 말한다.
라우팅?: 데이터를 교환하는 게 통신의 기본이라고 하면, 어떤 경로가 가장 빠른지 선택해 전송하는 게 라우팅 과정이다. 이 과정이 꼬였으니 제대로 정보가 오고 가지 못했고 먹통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
이슈와 임팩트
IT 강국의 대혼란
잠깐 끊긴 인터넷이지만 피해는 엄청났다. 곳곳에서 타격을 입었다. 경제적 손실이 컸고, 네트워크 장애에 대한 경각심이 커졌다.
내 돈 어떡해: 인터넷으로 주식 거래를 하는 이들은 찰나에 사고팔기를 못해 손해를 봤다. 암호화폐의 경우 찰나를 다투는 경우가 많아 피해는 더 심각했다. 식당을 운영하는 사람은 점심 매출을 날렸고, 항의하는 손님과 해명하는 업주 간 충돌까지 일어났다.
비대면 네트워크도 '싹둑': 줌으로 회의를 하던 이들의 얼굴이 화면에서 사라졌다. 인터넷으로 시험을 보던 이들도 중간에 튕겨 나왔다. 인터넷을 토대로 하던 만남이 네트워크가 끊기자 함께 잘려 나갔다. 시험이 차질을 겪어 재시험을 보게 됐고, 학생들은 스케줄을 다시 짜야 한다.
"못 믿겠다 KT"
우리나라에는 KT를 비롯해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까지 3대 통신사업자가 있다. 불편함을 겪은 사람들은 KT에 대한 신뢰가 꺾였다. 3년 전인 2018년 11월에도 KT는 서버를 모아놓은 서울 아현동 통신구에 화재가 나며 먹통 사태를 겪은 바 있다.
나라 통신사 맞아?: 지금은 민영화됐지만 KT는 과거 한국통신으로 불리는 공기업이었다. 나라가 관리하는 통신사였단 뜻이다. 지금도 나라 전반의 네트워크를 관장하는 국가 기간통신사다. 하지만 재난에 가까운 장애 사태가 되풀이되며 신뢰가 무너졌다.
- 통신사 엑소더스: 한 번은 그렇다 쳐도 두 번은 믿음을 깬다. 우리나라 통신 시장에는 번호를 그대로 쓰면서 통신사만 옮기는 번호이동 제도가 있다. 약정이 끝난 사람들은 다른 통신사에 눈길을 줄 가능성이 커진다.
디도스? 경각심 ↑
실제 원인은 아니었지만, 디도스 공격이 일어났을 때의 위력을 실감했다. 1차 공지 때 원인으로 지목한 만큼 디도스가 '뇌관'이 될 수 있는 점이 확인됐다. 한 통신사의 피해가 이 정도면, 다른 곳까지 먹통이 될 경우 사회는 수십년 전 아날로그 시대로 돌아간다.
나머지도 끙끙: SK와 LG도 대책 마련에 고심하게 된다. KT가 안 되니 나머지 두 곳으로 트래픽이 몰려 일부 접속장애가 나타났다. 서로가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보안을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디도스와 라우팅 오류 잡기에 박차를 가하게 된다.
피해보상 절차 남아
어떻게요?: KT 이용약관에는 서비스 가입 고객이 본인의 책임 없이 연속 3시간 이상 서비스를 받지 못하면 회사가 손해를 배상하도록 했다. 정확한 규모와 현황이 밝혀지면 일부 사용자는 배상을 받을 수 있을 전망이다. 단 끊긴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아 약관 적용에는 다소 혼선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 KT 주가 하락: 이날 오후 KT의 주가가 떨어졌다. 피해보상으로 경제적 부담까지 질 경우 주가는 더 떨어질 수 있다. 이 경우 애먼 주주들이 피해를 입는다.
- 집단소송?: 이 같은 대규모 피해 사태가 나오면 보상을 위한 집단소송에 나서는 소비자들이 생긴다. 이번에도 소송에 나설 이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스탯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KT: 송구한 마음 감출 길이 없다. 창피한 하루였다. 새로운 AI 사업 전략 발표를 위한 간담회를 연 날 이런 일이 벌어졌다. 책임을 통감한다. 피해 현황을 수집한 다음 보상 방안을 조속하게 마련하겠다.
국민: 통신이 이렇게 깊고 넓게 연결돼있는지 몰랐다. 휴대폰은 그렇다 해도 편의점 카드 결제까지 안 되다니. 만약에 다른 통신사가 동시에 끊어지면 원시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닌가. 나이 드신 부모님과 전화가 끊겨 놀란 가슴은 어떡해야 하나.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나? 안 되겠지. 안 될 거야 아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심층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배상은 KT의 몫이지만 전반적인 사고 원인 파악에는 도움을 줘야 한다.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다면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는 건 우리 일이다. 완전히 복구됐는지, 재발의 불씨는 남아있는지 계속 관찰하고 있다.
진실의 방: 팩트 체크
KT는 왜 말을 바꿨을까
첫 번째로 지목됐던 원인은 디도스 공격이었다. 그런데 몇 시간 되지 않아 입장을 번복했다. 왜일까.
디도스는 '외부' 요인이고 라우팅 오류는 '내부' 요인이다. 역으로 해석하면 바깥 공격이 아니라 스스로 안에서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다. 사람이 만든 이른바 '휴먼에러'다.
디도스에 뚫렸다는 것은 보안에 구멍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디도스는 '공격'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한국인터넷진흥원이나 국가정보원 등 정부 기관의 모니터링에 잡힐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라우팅은 내부서 관리할 수 있는 문제였다. 안에서 바가지가 샜단 의미다. 불가항력적인 디도스 공격으로 화살을 돌리는 게 낫겠다는 판단이었을 수도 있다.
처음부터 원인을 제대로 파악 못했던 것도 문제다. 국가 기간통신사 성격의 KT가 이슈 확인을 제대로 못했다는 걸 공표한 셈이어서다. 이래 됐건 저래 됐건 KT는 얼굴을 구길 수밖에 없게 됐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불' 때문에 일어난 블랙아웃
2018년 11월24일 오전 11시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에 있는 KT 아현지사 통신구에 불이 났다. 모여있던 전화선과 광케이블이 불탔고, 서대문구, 마포구, 용산구, 중구, 은평구와 고양시 일대에 통신 장애가 일어났다. 지금처럼 통신 서비스가 모두 먹통이 됐다. 블랙아웃이었다. 피해는 지금보다 깊었다. 지역은 좁았지만 기간이 길었다. 통신이 완전히 복구될 때까지 1주일 가까이 걸렸다.
KT는 유무선 가입 고객에게 한 달 치 요금을 깎아주기로 했다. 이번 사태로 KT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고, 이날의 기억이 잊히지 않은 탓에 '국민 통신사'에 대한 신뢰는 크게 깎여나갔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플랫폼이 멈췄다
통신 '망' 장애는 아니지만 해외 기업 '플랫폼' 먹통도 우리에게는 답답함을 줬다. 지난달 초 인스타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접속이 원활하지 않았다. 인스타그램은 우리나라 10~30대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다. 페이스북도 한때 작동이 멈췄다. 이번 사태처럼 생활 전반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않지만, 불편이 상당했다.
페이스북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고개를 숙였지만, 보상 기준을 마련하지 않고 있는 게 밝혀져 체면을 구겼다. 페이스북이 제대로 안 돌아가는 탓에 사과도 경쟁 SNS인 트위터로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