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나 봅니다. LG에서 만든 스마트폰을 앞으로 볼 수 없게 됐습니다. LG라는 기업의 무게감만큼이나 사업적으로도 굉장한 결단인데요. 왜 이런 결정을 내렸을까요? 앞으로 스마트폰 시장에는 어떤 격변의 바람이 불어올까요?
왜 중요한가? 🔥
LG전자가 지난 5일 이사회를 열어 휴대폰 사업을 담당하는 모바일 커뮤니케이션 사업본부 철수를 결정했다. 1995년 휴대폰 시장에 뛰어든 이래 26년 만이다. 이로써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사실상 애플과 삼성전자 양분 체제가 됐다. 독과점에 단말기 가격이 오르는 등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우려도 나온다. 세 끼 먹는 밥 다음가는 생필품 스마트폰, LG 빠진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큰 그림
청사진
LG 스마트폰 자리 털고 일어나다
적자인 사업 접어
- 아파도 너무 아파: LG전자에게 스마트폰 사업은 일명 '아픈 손가락'으로 불렸다. 2015년 2분기부터 2020년 4분기까지 2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냈기 때문. 해당 기간 누적 영업적자는 5조원에 달한다. LG전자 측은 지난 1월부터 사업을 전면 재검토해왔다.
- LG전자 曰 in 이사회: "최근 프리미엄 휴대폰 시장에서는 양강체제가 굳어지고 주요 경쟁사들이 보급형 휴대폰 시장을 집중 공략하며 가격 경쟁은 더욱 심화되는 가운데 LG전자는 대응 미흡으로 성과를 내지 못해왔다."
- 해석 좀: 삼성전자, 애플이 양분한 프리미엄 시장에도 못 끼고 중화권 기업이 치고 올라오는 중저가 시장도 위태해졌다는 얘기다.
악전고투했으나
비용 절감: 2019년 평택 스마트폰 생산라인을 베트남으로 이전하고 2020년 제조자개발생산(ODM) 비중을 전체 물량의 70%까지 확대하며 적자 폭을 줄이기도 했다.
이미지 개선: 지난해 새로운 폼팩터(form factor)를 추구하는 스마트폰 라인 '익스플로러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스마트폰의 기술에 초점을 두고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포부였다.
있었는데... 없애게 됐습니다: 그러나 사업 철수에 따라 기존 상반기 출시를 목표로 했던 '레인보우' '롤러블' 폰도 결국 빛을 보지 못하게 됐다. 특히 돌돌 말리는 LG롤러블 폰은 지난 1월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 시연 당시 주목받았으며 상용화 또한 코앞이었다.
늦거나 너무 앞서가거나, LG폰 망한 이유
취해서 그랬어: LG전자는 과거 피처폰 시절 글로벌 시장 점유율 3위까지 올랐던 '휴대폰 명가'였다. 그러나 과거의 영광에 취해 스마트폰 시장 진입이 늦었다는 지적이다. 위세 높던 피처폰 사업부서의 입김이 작용했으리라는 평도 있다.
뵈는 게 없더라고(한숨): 애플의 아이폰이 혁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했을 때 LG전자는 '찻잔 속 태풍'으로 치부해 시장 진입에 뒤처진다. '카피캣'이라는 오명을 써가면서도 시장에 적응한 삼성전자와 대비된다. 이후에도 구글과의 경쟁을 지나치게 의식해 초기 운영체제를 마이크로소프트로 택하는 잘못을 범한다.
사공이 많아: 이병태 카이스트 경영대학 교수는 "다른 회사 같으면 조 단위 적자를 내는 사업을 일찌감치 구조조정 했겠지만, 모바일 기술이 가전 등과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점, LG디스플레이, LG유플러스 등 계열사와의 이해관계 등 때문에 의사결정이 많이 늦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LG의 고민을 분석하기도 했다.
생각도 많아: 2013년 출시한 G시리즈는 좋은 실적을 내기도 했다. 본격적인 쇠퇴의 길로 들어선 것은 모듈형 스마트폰 G5를 출시한 2016년이다. G5는 아랫부분이 분리되는 모듈(독립적인 소프트웨어 또는 하드웨어) 구조로 되어 있어 새로운 기능을 추가할 수 있었다. 기술 도입은 혁신적이었지만 모듈이 덜렁거리거나 뺐다 끼웠다 하며 내구성 문제가 생기는 등 소비자 인상에 깊은 마이너스를 남긴다.
이슈와 임팩트
LG 떠난 국내 스마트폰 시장 변화
LG 빈 자리는 내 꺼야
어차피 선택지는 삼성: LG전자가 차지하던 점유율은 삼성전자로 옮겨갈 가능성이 높다. 양사의 스마트폰 OS가 안드로이드로 동일해 유저경험이 친숙하기 때문이다. 만약 삼성전자가 기존 LG전자 고객을 흡수하면 국내 스마트폰 시장에서 8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지니게 된다.
LG폰 고객님 환승역은 여기입니다: 주요 휴대폰 제조사들이 LG의 빈 자리를 노리고 공세 중이다.
- 삼성에서 LG폰 바꿔줍니다: 삼성전자는 지난 1일부터 LG전자의 V50을 반납하고 갤럭시S 시리즈로 갈아타면 7만원의 보상금을 주고 있다. 기존 중고폰 보상 대상에는 자사 제품과 애플 아이폰만 있었다.
- 애플이 더 잘할게: 지난 2월 여의도에 애플스토어 2호점을 개장했다. 2018년 가로수길 1호점 이후 3년 만이다. 앞으로 1년 동안 아이폰 수리비와 보험료를 10% 깎아주기도 한다.
- 이제 '갓성비'는 중국 폰이야: 샤오미에서 지난달 출시한 중저가 스마트폰 홍미노트10의 판매가 순항 중이다. 낮은 가격과 높은 지원금으로 가성비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OS가 안드로이드라는 점도 강점이다.
LG폰 싸게 팝니다
눈물의 폐업 창고정리 파격 세일: 이동통신사들은 LG폰 '재고 처리'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원금을 상향해 다수 모델이 '공짜폰'으로 팔리고 있으며, 구매 시 웃돈을 주기도 한다.
삼성 무대 될 국내 스마트폰 시장, 우려 정리
- LG전자의 이탈로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전자, 애플이 양분하게 됐다. 그러나 점유율로 볼 때 사실상 삼성전자 독무대다.
- 국내와 해외 판매전략에 차이가 있지만,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라인업은 중저가부터 프리미엄까지 다양하다. 애플과 경쟁하는 프리미엄을 제외한 100만원 이하 스마트폰에서는 삼성전자의 가격 결정권이 막대해진다.
-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양정숙 의원(무소속)의 입장문에 따르면 2019년 판매된 삼성전자 스마트폰 단말기의 약 70%가 80만원대 이상이다. LG전자는 그동안 중저가 단말기 위주로 판매해왔다. 삼성전자도 국내 판매에 다양한 중저가폰 라인업을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 소비자 선택권이 줄어든 만큼 단말기 가격 인상에 제동을 걸 요소도 적어졌다. 부실 AS가 발생할 우려도 있다.
- 제조사와 협상해 보조금을 책정하는 이통사의 교섭력도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 스마트폰 유통구조를 투명화해 단말기 가격 인하를 유도하는 분리공시제 도입도 LG전자의 사업 철수로 사실상 의미를 잃었다.
- 스마트폰 시장의 가격 경쟁을 촉진하려면 중국 업체를 끌어들이는 것이 방법이지만, 미중 기술 갈등이 있는 상황에서 조심스럽다는 지적이 있다. 국내 소비자 인식에 중국 스마트폰이 긍정적이지 못한 점도 어려움이다.
스탯
스마트폰 소비 트렌드는 '실속'
'알뜰폰'의 반격: 지난 8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무선통신서비스 가입자 통계에 따르면 올해 2월 말 기준 국내 알뜰폰(MVNO) 가입자는 927만명이다. 지난해 동기간 761만명에서 무려 166만명이 늘었다. 이통사를 거치지 않고 스마트폰을 구매하는 '자급제' 채널이 활성화되며 요금제에 실속을 추구하는 흐름이다.
'2020 스마트폰 어워드' 5개 중 3개 중저가폰: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은 중저가 시리즈 갤럭시 A31이다. 유일하게 밀리언셀러를 기록했다. 4, 5위 역시 중저가 LTE 모델이다. 경기불황 속에서 값이 비싼 5G 요금제를 피하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떠나는 LG폰 바라보는 시선
LG: 2018년 취임한 구광모 회장이 실용주의 관점에서 핵심사업과 비핵심사업을 구분하고 있다. 액정표시장치, 전자결제 등 스마트폰 외에도 과감히 적자 사업을 정리해왔다. 자동차 전장, 인공지능 등 미래 신사업에 집중할 계획이다. 선택과 집중이다. 아직까진 전망도 밝다.
삼성: 가장 쾌재를 불렀다. 이전에도 확고했던 시장 내 입지는 독보적이게 됐다. 그러나 그만큼 어깨도 무거워졌다. 글로벌 시장에서 무섭게 치고 오는 오포 등 중국 업체는 경계해야 한다.
애플: 수리비, 보험료 인하 등 대응은 보였지만 반사이익을 볼 확률은 낮다. OS도 다르고 출시하는 단말기도 주로 프리미엄 제품이기 때문이다.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중국 업체들에게도 기회다. 이미 글로벌 중저가 시장에서는 유의미한 존재감을 보이고 있다. 그간 국내 시장 진입 성적표는 좋지 않았지만, 기회인 건 확실하다.
소비자: 얼떨떨하다. 꽤 많은 팬이 아쉬움을 표하고 있다. 한편 스마트폰 시장에서 삼성의 대항마가 사라진다는 점에서 앞으로 단말기 가격이 걱정이다.
진실의 방: 팩트 체크
분리공시제 의미 잃는 이유
분리공시제는 단말기 공시지원금에서 이통사가 지급하는 지원금과 제조사가 지급하는 지원금을 분리해 알리는 제도다. 만약 30만원이 공시지원금으로 지급된다면 10만원은 이통사, 20만원은 제조사가 지급했음을 알리는 식이다. 현재는 둘을 포함해 하나로 공시하고 있다.
도입되면 제조사에서 지원금을 얼마나 부담했는지 알 수 있어 출고가를 인하할 여력이 있는지 소비자가 가늠할 수 있다. 이는 단말기 출고가 인하로 이어질 수 있다. 실효성에 비해 영업비밀 공개로 기업이 입는 손실은 상대적으로 명확해 그간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LG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에서 철수했으므로 분리공시제가 도입된들 삼성전자 입장에서 경쟁적으로 단말깃값을 낮춰야 할 유인은 없다. 애플은 제조사 지원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애초 분리공시제 대상이 아니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맥킨지 말만 안 들었어도...' LG폰 리즈 시절
피처폰 시절 LG전자는 잇달아 히트 상품을 내며 성공가도를 달렸다. 초콜릿폰, 프라다폰이 대표적이다. 특히 2005년 초콜릿폰은 1000만대 판매를 돌파하며 '텐밀리언셀러'가 되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LG전자는 미국 이동통신교환(CDMA)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르고 2010년 3분기에는 노키아, 삼성전자에 이어 글로벌 시장 점유율 3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등장한다. 애플은 2008년 '아이폰3G'를 히트시키며 스마트폰 시대를 열었다. LG전자는 1000억원을 들여 맥킨지앤드컴퍼니에 향후 시장 컨설팅을 의뢰했다. 보고서는 스마트폰을 ‘찻잔 속 태풍’에 비유하며 ‘기술보다 마케팅으로 투자하라’고 조언했다. LG전자는 이를 받아들여 스마트폰 시장 진입이 늦었다. 통한의 실책이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LG는 노키아의 길을 걷는다?
과거 1998년부터 13년간 세계 휴대폰 시장 점유율 1위였던 노키아. 스마트폰 사업 전환에 실패해 2013년 휴대폰 사업부를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했다. 그러나 이때 기술 관련 특허는 팔지 않았다. 이를 바탕으로 무선 네트워크 사업으로 전환했고, 현재 세계 통신장비 시장에서 화웨이, 에릭슨과 함께 3대 강자다. 스마트폰 사업 철수에 앞서 LG전자가 미국 구글, 베트남 빈그룹, 독일 폭스바겐 등과 매각을 논의했으나 그들이 시설보다 기술을 원하자 협상을 철회한 이유와도 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