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고향이 그리웠는지, 삶이 고단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북한에서 귀순했던 남성이 다시 휴전선을 넘었습니다. 한국에 산 지는 1년 남짓. 무엇이 그를 다시 뾰족한 철조망을 넘게 만들었을까요. 혹시 간첩이었을까요. 국가 안보를 책임져야 할 군은 또 왜 놓쳤을까요.
왜 중요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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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와 임팩트
지난해 북에서 내려온 남성이 휴전선 철책을 넘어 북한으로 돌아갔다. 새해 첫날 일어난 일이다. 경보가 울렸지만 군은 허술한 경계로 이를 막지 못했다. 휴전선은 누군가 오가는 일이 일어나선 안 되는 곳. 안보에 뚫린 구멍에 걱정이 커진다.
2022년 1월1일 밤 30대 탈북민 남성 A씨가 강원도 동부전선 GOP(일반전초) 철책을 넘어 북한으로 향했다. 2020년 11월 같은 방법으로 귀순했던 사람이다. 구역을 관할한 육군 22사단은 당시 14시간 후에야 A씨의 신병을 확보했다.
분명 막을 기회가 있었다. CCTV에 여러 차례 모습이 잡혔고 철조망 센서(광망)가 작동했다. 경보를 들은 초동조치 인원이 현장에 나갔지만 ‘이상 없음’으로 보고했다. 그 사이 A씨의 행방은 묘연해졌다.
상황은 포착했지만: 군의 CCTV는 A씨가 남측 철책을 넘어가는 장면과 북측 철책을 넘어 사라지는 모습까지 모두 잡아냈다. 하지만 군은 다른 시간대의 영상을 돌려본 뒤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저장 서버에 입력된 시간과 실제 촬영된 시간의 차이가 나면서 치명적 오판을 냈다.
- 광망: 철조망에 가해진 압력이나 형태 변화를 감지하는 장치다. 구멍이 나거나 구부러지면 광섬유 소재의 그물이 이를 파악해 경보를 울린다.
- GOP와 GP: GOP(General Outpost)는 주력 부대의 전방에서 아군을 보호하는 부대다. 휴전선을 감시하는 초소는 GP(Guard Post)라고 한다.
제집처럼 왔다 갔다
A씨는 기계체조 경험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 우리나라에 왔을 당시 정보당국도 파악했던 정보다. 철책을 쉽게 뛰어넘을 기술이 있었다. 사실상 같은 길을 두 번 뚫어냈다. 이번에는 이중으로 된 철책을 뛰어넘는 데 4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해 3월부터 서울 노원구에 혼자 살며 청소용역으로 생계를 꾸렸다. 기초생활급여와 기초주거급여를 받았다. 생활고가 다시 휴전선으로 이끌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편에는 우리나라 상황을 보기 위한 ‘위장 탈북’ 간첩 의혹이 있다. 진짜라면 이는 월북보다는 작전을 마치고 다시 돌아간 것에 가깝다. 북이 남파한 간첩이 지령을 따르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뜻이다.
- 귀순과 월북: 귀순은 적대적이었던 이가 스스로 돌아서는 것을 뜻한다. 북한 주민이 우리에게 왔을 때 이 표현을 쓴다. 우리나라 사람이 자발적으로 북한에 넘어간 건 월북이다. 외국에서 들어가면 입북, 억지로 끌려가면 납북이라고 한다.
- 휴전선과 군사분계선: 휴전선보다는 군사분계선이 정확한 표현이다. Military Demarcation Line을 줄여 MDL이라고도 한다.
사과와 질책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점에 대해 군은 특별한 경각심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 문재인 대통령
문 대통령은 군을 질책했지만,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경계 작전 실패는 있어서는 안 될 중대한 문제”라고 했다. 한 번, 양보해서 두 번까지는 실수지만 그다음에는 실력이다. 대통령은 군 통수권자다. 질책이 아니라 자책이 필요할 일일지도 모른다. 이번 정권에서 경계에 실패한 건 7번째다. 야당은 현 정권의 “안이한 안보 의식이 부른 고질병”이라고 비판했다.
안보 경각심을 일깨웠다고 하기에는 상황이 크다. 좋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이런 경계 태세라면 북에서 남으로 오는 경우를 막을 수 있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군 당국은 허점에 대해 사과했다.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은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보완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한국 적응 힘들었을까: 10년간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민은 최소 31명. 공식적으로 확인되지 않은 이를 합치면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체제 부적응, 차별, 향수병 등 꼽히는 재입북 이유는 많지만 특히 경제적 불안이 핵심일지 모른다. 헌법상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이고, 탈북민은 더 보호해야 할 대상. 이번 사태가 어려운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하게 됐다.
스탯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군: 거센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군도 상황의 무거움을 알고 바로 사과했다. 군의 가장 큰 역할은 북한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올 때도 갈 때도 같은 부대가 뚫렸다. 간부들 징계가 불가피하다. 휴전선 철책은 강풍이나 산짐승 등으로 오경보가 잦다. 경보가 울려도 ‘멧돼지가 그랬나’ 같은 생각이 은연중 떠오른다고. 문책은 문책이고 경보 시스템 점검에도 팔을 걷어붙여야 한다.
탈북민: 간첩이 아니라 생활고나 외로움이 이유였다면 이해되기도 한다. 통일부 조사를 보면 어려움을 겪는 탈북민의 절반이 정서적·심리적 요인을 이유로 꼽았다. 친구도 없는데 생활도 어려운 탈북민. 자유를 찾아온 그들. 이번 사태가 지원 강화로 이어지길 원한다.
국민: 북한과 평화 무드가 있다고 해도 안보는 반드시 지켜야 할 가치다. 반대로 우리한테 넘어오는 걸 파악 못 했다고 생각해보니 아찔하다. 사건 지역 주민들은 더 불안하다. 군도 못 찾은 북한사람이 주변에 있다고 상상해보자. 말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