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찾던 진돗개를 아시나요?

색다른 마케팅으로 성공 신화, 무리한 확장에 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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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의 노트

요즘은 어디서 어떻게 컴퓨터를 살까. 아 모바일로도 충분하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래도 한 번 1990년대로 시계를 돌려보자.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벽돌만 한 휴대폰도 생소하던 시절. PC(이름도 그럴싸한 퍼스널 컴퓨터다)는 세상을 이어주는 신문물이자 부유의 상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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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참 괜찮았지

1990년대 초 우리나라의 PC 시장은 혼돈 그 자체였다. 대표적인 전자상가인 용산에서는 정보 비대칭으로 불친절과 바가지가 성행했다. 신문물에 대한 동경과 부족한 기술력은 비싼 가격으로 귀결됐다. 화려한 광고에 이끌려 백화점에서 대기업 브랜드 컴퓨터를 사기에는 부모님의 몇 달 치 월급이 그대로 날아갔다.

지금 10대 청소년들, 아니 20대에게도 생소할 ‘세진컴퓨터랜드’는 이 점에 집중했다. 1991년 부산의 한 지하상가 매장으로 시작해 불과 몇 년 만에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인기 비결은 의외로 심플했다. 고객의 페인 포인트를 짚었다. 저렴한 가격과 평생 무상 AS를 내세웠다. 무료 컴퓨터 교실도 인기였다. 생소한 컴퓨터 사용법을 익힌 사람이 구매까지 결정하는 순환 모델이 구축됐다.

여기서 등장한 게 바로 진돗개다. 개 한 마리가 한 기업을 먹여 살렸다면 믿을 수 있을까. 1993년 대전으로 팔려 간 진돗개가 300㎞를 걸어 진도의 옛 주인에게 돌아왔던 일화. ‘하얀 마음 백구’ 애니메이션까지 낳은 이야기를 마케팅 소재로 썼다. ‘한 번 주인(구매자)는 평생 주인’이라는 예쁜 마음은 평생 AS와 무료 교육이라는 전략과 맞물렸다.

“문맹 탈출은 세종대왕, 컴맹 탈출은 세진컴퓨터랜드”라는 주제의 광고와 함께 출시됐던 고급형 PC ‘세종대왕’과 더불어 보급형 PC 라인업 ‘진돗개’는 세진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자체 조립한 PC와 대우통신 제품을 함께 파는 종합유통 형태의 매장은 승승장구했다. 신문과 방송 광고에 70억원을 태울 정도로 자신감이 넘쳤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폭발적 성장 뒤의 그림자를... 아니 만들어진 어둠을 말이다.

지금은...

승승장구 이면에는 무리한 투자와 권위적인 리더십이 있었다. 매출에 비해 과했던 광고비가 독으로 돌아왔다. 초기에는 기업을 알리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지만, 궤도에 오른 상황에서 상황에서 필요 이상으로 비용을 집행했다. 고객층은 한정됐는데 계속 광고만 틀었단 뜻. 효율이 떨어졌다.

매장에서는 친절함을 뽐내던 직원들이 회사 안에서는 군대식 강압 문화에 노출됐다. 새벽 집합이나 갑작스러운 해고, 심지어는 대표의 직원 폭행까지 일어났다. 연봉 인상 발표 뒤 하루 만의 번복은 애교로 보일 정도였다.

내홍을 겪으니 배가 산으로 갔다. 소식이 언론을 통해 전해지자 소비자들은 서서히 등을 돌렸다. 무리한 확장에 필요한 임대료 부담 등 몇 년 안 된 전성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영진은 1995년 11월 대우통신에 지분 51%를 매각했다. 확장에 쓸 실탄 마련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약속한 목표매출은 공수표가 됐고, 창업자인 회장은 자리에서 내려왔다.

세진컴퓨터랜드는 IMF 외환위기 이후 대우그룹 해체 등 악재를 견디지 못하고, 2000년 7월 1차 부도를 냈다. 두 달 뒤에는 파산 선고를 받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당시 초등학생 정도였던 198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세진컴퓨터랜드가 낯설다.

체크 포인트

무리한 투자가 1차적 이유, 이후의 국내 경제 상황이 몰락을 부채질했다.

세진컴퓨터랜드의 성공 이후, 용산의 조립PC 시장은 생각보다 세밀하게 대응했다. 1996년 상반기 중고 시장의 문을 열었고, 번들 패키지 제공 등 적극적인 판매 확대 방안을 내놨다. 언론에서 안 좋은 소식을 접한 소비자들은 다시 용산을 찾기 시작했다. 비용 절감을 위해 대우통신이 슬쩍 없앤 무료 AS 정책도 패착이 됐다.

PC 보급의 주춧돌을 놓았지만, 주춧돌을 다른 브랜드가 밟고 올라섰다. 삼성을 비롯해 삼보컴퓨터가 시장을 채웠고, 외산 브랜드도 약진했다. 진돗개와 세종대왕의 성공 이후 광고에만 힘을 줄 뿐, 후속타가 없었던 게 화제의 기업에서 안정된 플레이어로의 진화를 막았다.

여기에 IMF는 카운터 펀치를 날렸다. 부모님이 실직의 늪에 빠지는 데 PC는 사치였다. 돌아오는 어음은 세진컴퓨터랜드에 납품하는 업체와 협력사들이 얽히고설켜 도산하는 원인이 됐다.

추억은 방울방울

그래도 세진컴퓨터랜드는 체계가 없었던 우리나라 PC 판매 시장에 새바람을 불어 넣었다. 새로운 유통 구조를 뿌리내린 공을 무시하지 못한다. 진돗개를 내세운 감성 마케팅의 성공 사례로도 아직까지 회자된다.

실패 과정도 들여다볼 가치가 있다. 무리한 확장과 제왕적 리더십은 지금도 기업들이 반면교사할 부분이다. 정찰제를 뿌리내리고 평생 AS로 고객풀을 확보하는 것은 좋았지만, 잠깐의 성공으로 변화에 대응하지 못한 점은 지금도 아쉬움으로 꼽힌다.

다음은 모바일 시대 초반, 우리를 웃고 울렸던 비둘기를 살펴보러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