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노트
왜 중요한가? 🔥
대학 학령인구 감소는 대학의 생존뿐 아니라 입시, 지역경제, 교육 커리큘럼 등 다양한 사회 문제와 연결돼 있다. 과거 정부는 대학 설립을 자유롭게 허용했는데 이 과정서 역량이 부족한 대학이 생겨나는 등 부작용이 있었다.
입학생을 모으지 못해 여러 대학이 위기에 처했지만 교직원에 대한 보상이나 상권 보호 등 구체적인 구제책은 모호하다. 문제가 계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현재 상황을 정확히 바라봐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 수 있다.
큰 그림
청사진
학령인구 감소+데드크로스에 대학 직격탄
학생이 모자라면 재원이 부족해진 만큼 교육의 질도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학생 수와 정원이 맞아떨어져야 시설 확충이나 교수 충원 등 교육 인프라가 좋아진다. 학령인구와 대학 정원이 안 맞는 건 그래서 문제가 된다.
20년 뒤 대입인구 지금의 절반: 대학 입학나이인 만 18세 학령인구는 2020년 51만2000명→2021년 47만6000명 선으로 줄었다. 감소세는 계속돼 2030년에는 46만명, 그보다 10년 뒤인 2040년에는 28만명 수준까지 떨어진다.
- 대학 '입학가능' 자원으로 보면 수는 더 적다. 입학가능자원은 학령인구(만18세) 중에 대학진학률과 재수생 등을 적용해 추산한 수치다. 교육부가 추계한 입학가능자원은 2020년 47만9376명에서 2030년에는 39만9478명으로 감소한다.
학생이 대학 책상보다 더 많아: 2021학년도 4년제 대학 정원은 34만7447명, 전문대학은 20만8327명이다. 합치면 55만5774명이다. 입학가능자원은 물론 학령인구 전체를 대입해봐도 이보다 적다.
데드크로스로 가속화: 사망자 수가 출생자보다 많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지난해 처음 나타났다. 27만5815명이 태어났고, 30만7764명이 사망했다. 사망자가 더 많아 인구가 자연감소하기 시작했다. 출생률도 계속 줄고 있어 학령인구 감소는 지속될 전망이다.
대규모 미달 사태: 올해는 전국 4년제 대학 162곳에서 총 2만6129명의 신입생을 추가모집했다. 수시와 정시모집에서 정원을 못 채워 또 추가로 모집했다는 뜻이다. 추가모집 인원은 전년(9830명)보다 3배 가까이 늘었다. 특히 91.4%(2만3889명)가 경기나 인천, 서울을 제외한 지방 대학이다. 전문대도 전체 129곳 가운데 정원이 다 채워진 곳은 20.2%인 26곳뿐이었다.
정부, 자율적 정원 감축 유도
역량 평가해 정원 줄이도록: 교육부는 올해 '대학 기본역량 진단'을 진행한다. 대학 여건을 평가해 정원을 줄이도록 유도하거나 재정지원을 끊어 제대로 된 대학만 남기겠다는 의도다.
학생 충원율 등 교육 여건 평가: 역량진단은 장학금이나 교수 확보율, 신입생·재학생 충원율, 취업률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특히 학령인구와 연결되는 학생 충원율의 배점이 상대적으로 높다. 결과에 따라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대학은 재정지원을 제한한다. 국가장학금이나 학자금 대출도 막아 자연스럽게 퇴출시키는 구조다.
폐교대학 출구 고민: 교육부는 폐교대학 재산을 청산하고 교직원 고용을 보전하는 등의 퇴로 관련 정책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비용 지원이나 시설 활용 방안, 대학 간 통폐합 지원 방안 등이 연구에 담길 예정이다. 내년에는 '폐교대학 기록물 관리센터'를 열어 발급해야 하는 증명서나 소장해야 하는 기록물을 관리해 관련 정보가 필요한 이들에 도움을 주기로 했다.
대학들 어떻게?
공영형 사립대: 정부가 사립대에 일정 액수의 재정을 지원하는 대신 운영에 개입해 공적 역할을 강화하는 모델이다. 지방대를 중심으로 전담팀(TF)을 꾸려 논의되는 등 어려움을 해소하는 열쇠로 꼽힌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에 들어가 있음에도 충분한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브레이크가 걸린 상황이다.
학생 모집에 아이폰 걸었다: 교육부 역량진단에서는 학생 충원율이 재정지원을 받는데 핵심이라 신입생 확보에 사활을 걸었다. 일부 지방대는 아이폰을 경품(?)으로 내걸기도 했다. 광주 지역의 한 대학은 최초 합격 후 등록하면 아이폰, 충원으로 합격해 등록하면 에어팟을 준다고 홍보했다. 하지만 이 학교는 경쟁률이 1점대에 미치지 않아 결국 미달사태를 겪었다.
이슈와 임팩트
지역 슬럼화, 입시 바늘구멍은 숨통
붕괴되는 대학 사회
대학교육 붕괴: 입학생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면 결국 고사하게 된다. 대학 운영비의 대부분은 등록금으로 채워진다. 학생이 모자라면 등록금도 부족해지고 결국 교수 임용이나 시설 개선, 교직원 충원 등 대학 운영 전반이 어려워진다. 그 결과 과목 수가 줄어들거나 낙후된 시설에서 공부해야 할 상황이 온다.
밥줄 끊긴 사람들: 취업률이 낮은 계열을 중심으로 폐과 행렬이 이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고용이 불안정한 시간강사와 비정규직부터 해고에 내몰린다. 시간강사들은 연구와 수업 경력이 단절되고, 젊은 비정규직 교직원들도 2년마다 메뚜기 신세가 된다. 현재 대학 교직원 채용공고를 찾아보면 2년짜리 계약직이 대부분이다.
상권 마비: 학생이 필요한 건 대학뿐만이 아니다. 학교 앞 식당이나 술집, 마을버스 같은 운수업체, 자취방을 세놓는 임대업자, 문구점과 서점 등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상권이 모두 마비된다. 지역 슬럼화 현상이 가속화된다.
입시 나비효과
바늘구멍 넓어져: 반대로 수험생들은 좋아할 수도 있다. 정원이 머릿수보다 많으니 상대적으로 대학에 들어가기 수월해진다. 고득점자층이 얇아져 최상위권 일부를 제외하고 전체적으로 경쟁률이 낮아질 수 있다.
지방대 문은 더 넓다: 한 대입 커뮤니티에는 수능에서 6등급을 받고도 지방거점국립대 수학과에 붙었다는 소식이 올라왔다. 그만큼 지원자가 적었다는 뜻이다. 올해 추가모집 인원의 90% 이상이 지방 대학이었던 만큼 서울 밖 학교에 가는 학생들은 문이 더 넓다.
재외국민 모집 활발: 대학들은 재외국민 특례 전형을 돌파구로 삼는다. 일정 기간 이상 외국에 살거나 외국 국적 학생을 뽑는 전형이다. 우리나라 학생이 모자란 만큼 외국인 유학생으로 채우는 전략이다.
- 이 경우 국내 학생이 학점을 따기는 전보다 수월할 수 있다. 외국인 유학생들은 언어의 한계로 보통 한국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문화적 차이나 의사소통 문제로 학업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 있는 점은 걱정이다.
합치거나 버티거나
옆 대학 눈치: 어려움 속에서도 버티기에 들어가는 대학이 있을 수 있다. 정부는 대학이 폐교하면 인근 대학으로 특별편입을 지원한다. 옆 대학이 사라지면 반대로 버틴 대학은 학생을 채울 수 있는 구조다.
한 지붕 두 가족: 대학을 합치는 것도 방법이 되는데 실제로 경북 지역의 경주대는 인근의 서라벌대와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 두 캠퍼스를 합치고 한 쪽의 캠퍼스를 파는 방법으로 재정난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이다.
스탯
2030년까지 입학가능자원 전망
걱정거리
이해관계자 분석
웃는 학생과 우는 대학, 어쩔 줄 모르는 정부
대학: 시한부 선고를 받은 환자 같다. 대학 같지 않은 대학은 정리되는 게 맞지만 만들라고 할 때는 언제고 정부가 발을 빼는 것 같아 야속하다. 특히 지방 대학은 매년 입시철에 경품 경쟁을 하게 생겼다. 정부 재정지원이 희망인데 그조차 학생이 없으면 받기 힘들어서다.
학생: 화색이 돈다. 전체 정원보다는 머릿수가 적으니 대학에 들어가는 것 자체는 전보다 쉽다. 다만 서울지역 대학은 여전히 바늘구멍이라 상위권 학생들은 여전히 입시 계산기를 돌려야 한다. 강의를 못 알아듣는 외국인 유학생이 갑자기 많아진 것 같다.
교육부: '벚꽃 피는 순서로 폐교된다'는 말이 현실이 된 만큼 대책 마련을 고심한다. 대학이 문을 닫을 때 설립자에게 어떻게 재산을 되돌려줘야 할지, 교직원 고용은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를 싸매고 있다.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 학생도 줄어드니 교대나 사범대학 정원도 줄여야 할지 고민이다.
진실의 방: 팩트 체크
대학 사람들 어디로 가나
사실 대학도 일반 기업과 마찬가지다. 문을 닫으면 직원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학사 업무를 지원하는 직원들은 물론이거니와 교수들도 학교를 떠난다. 사립대 교직원들은 고용보험 대상이 아니라서 실업급여도 받지 못한다. 특히 시간강사들의 사정은 더 어렵다. 학과 통폐합이나 시수 조정과정에서 가장 먼저 타겟이 되는 건 지위가 불안정한 시간강사들이다.
말말말
일기예보
타임머신: 과거 사례
맘대로 학교 열 수 있다...'대학설립 준칙주의'
25년 전인 1996년 '대학설립 준칙주의'가 도입됐다. 일정 수준의 땅(교지)과 건물(교사), 교원, 수익용 재산 등 최소한의 기준만 넘으면 대학 설립을 인가해줬다. 정치인들은 자신의 지역구에 대학을 유치하길 원했고, 지역 주민들은 '대학 안 가면 큰일'이라는 생각에 대학 만들기를 부추겼다. 일부 재산가들은 '학교'를 가진다는 명예에 취해 설립에 뛰어들기도 했다.
하지만 학령인구가 감소한 지금은 독이 돼 돌아왔다. 지금 제도에서는 사학 법인이 대학 문을 닫으면 잔여 재산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귀속된다. 설립자들은 투입한 돈을 회수하지 못해 이러지도 못하는 신세다. 대학설립 준칙주의는 현재 폐지된 상태다.
먼나라 이웃나라: 해외 사례
아이비리그도 학생 부족에 쩔쩔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미국 명문대들도 학생 감소로 어려움을 맞은 상황이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되지 않는 게 주요 원인이다. 아이비리그 대학들도 학생 감소로 재정난을 겪는다. 하버드는 2020년 1000만달러(한화 약 113억원)가 넘는 손실을 기록했고, 펜실베이니아대는 4700만달러(약 530억원)의 손실을 봤다. 코넬대는 향후 수년간 1억달러(약 1130억원)가 넘는 손실을 피할 수 없다는 전망이 나온다. 기부 입학 제도가 있어 등록금 의존도가 비교적 낮은데도 이 정도 어려움을 겪는 걸 비춰볼 때, 학령인구 직격탄을 맞은 우리 대학들의 재정난은 갈수록 가속화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