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를 둘러싼 논쟁이 뜨겁습니다. 포인트는 능력주의가 사회적으로 공정하며 정의로운지입니다. 언뜻 왜 논쟁이 되는지 아리송합니다. 능력 또는 능력에 따른 보상의 추구는 당연하고 마땅해 보이니까요. 똑똑 리포트 '능력주의와 공정성' 첫 화는 능력주의에 대해 살펴봅니다.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며, 당연하고 마땅히 여겨진다면 어떤 사회적 측면 때문인지 짚어봅니다. 더불어 능력주의 담론에 '공정성'이 소환되는 이유와 정의와의 관계를 드러냅니다.
능력주의란 개인의 능력(실력) 또는 업적에 따른 사회적 재화의 배분을 긍정하는 이념입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능력주의'(Meritocracy)를 정확히 표현하는 우리말은 없습니다. '능력'(Merit)의 해석에 따라 능력주의는 업적주의, 실력주의 등으로 번역되곤 합니다.
능력주의의 원어에 해당하는 'Meritocracy'는 영국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1958년 낸 저서 <능력주의의 부상(The Rise of the Meritocracy)>에서 처음 사용한 신조어입니다. 가치, 공헌 등을 가리키는 라틴어 'Meritum'에서 유래한 'Merit'에 체제, 이념 등을 가리키는 접미사 '-cracy'를 붙여 만든 말이죠. 이 책이 일본에 출판될 때 능력주의(能力主義)로 번역됐고, 이후 국내에 그대로 사용됐습니다.
옳은 번역이냐에 관해서는 다소 이견이 있습니다. 원어 'Merit'의 뜻에 비춰볼 때 사회적 공헌의 대가로 보상을 받는다는 의미에서 업적주의 또는 공적주의가 더 나은 번역이라는 거죠. 또한 사전적으로 능력(能力)은 어떤 일을 감당해 내는 잠재적 가능성을 가리키니, 실제로 갖추고 있는 힘을 뜻하는 실력(實力)이 성과나 업적을 드러내기에 알맞은 표현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능력은 단지 잠재적 가능성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능력 있다'는 말은 어떤 자리나 대접에 걸맞은 실적과 능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는 의미로 쓰이죠. 오늘날 능력주의에 따라 사회적 재화를 배분하는 양상에서도 마찬가집니다. 이미 거둔 실적뿐 아니라 역량이나 재능 역시 사회적인 기회 배분에 준거가 됩니다. 결국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능력주의는 실적과 능력을 두루 긍정하고 추구하는 이념입니다. 능력주의의 산실인 취업경쟁이나 입시가 실적만 검증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왜 능력에 따른 사회적 재화의 배분을 긍정할까요? 왜 다른 무엇이 아닌 개인의 능력이 최우선으로 고려되길 바랄까요? 그것이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합당한 능력 없이 사회적 지위나 재화를 차지하는 일이 빈번한 사회를 두고 우리는 말합니다. 정의롭지 못하다고요.
능력주의는 사회의 정의를 위해 필요합니다. 그럼 '정의'란 무엇일까요.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정의의 수호자로서 용납할 수 없다!"와 같이 클리셰적인 대사를 줄줄 읊을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한 정의. 이들은 무슨 이름으로 뭘 수호하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현일까요.
정의에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전통적으로 유학 사상이 뿌리내린 동양에서 정의는 의로움, 즉 옳음(義)으로 이해합니다. 서양에서는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필두로 '각자에게 각자의 몫이 돌아가는 것'을 정의로 여겼습니다. 즉 정의가 수호하고자 하는 가치는 두 가지입니다. 올바름과 공정성이죠.
사회에 올바름과 공정성이라는 정의가 요청되는 이유도 크게 두 가지입니다. 올바름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과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해 필요합니다.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려는 그 과정에서 공정이 요청될지언정 공정성을 위해 수행되는 가치는 아닙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의롭고 옳은 일이기에 정의롭죠.
공정성은 공동체를 구성하고 잘 이끌어가기 위해 필요합니다. 사회적 재화의 배분과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죠. 오늘날 사회 정의에 있어 더욱 중요하게 여겨집니다. 사회가 커지고 고도화될수록 필요가 커지기 때문인데요. 혼자 살면 질서도 분배도 필요 없으니 공정을 따질 이유도 없습니다. 그러나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분배가 필요한 가치도 다양해짐에 따라 공정에 대한 요구는 커집니다.
만약 범죄나 편법 등으로 사회적 가치가 공정하게 주어지지 않는다면 구성원 누구도 정당한 노동과 노력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려 들지 않을 겁니다. 개인이 서로 신뢰하고 협력하며 사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건 공동체가 보장하는 공정성을 담보로 한 행위입니다. 사회에 있어 정의는 필요조건이죠.
사회의 공정성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요? 정의의 한 축이 사회적 재화의 공정한 배분을 요구하듯, 이들의 분배 양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 재화는 개인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요소이자 자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 명예, 권력의 양태는 사회의 정의 수준을 나타내는 바로미터입니다. 이들이 공정하게 분배된다면 적어도 공정성에 있어 정의로운 사회로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진짜 해결이 필요한 물음은 여기서부터 발생합니다. 능력주의가 발동하는 지점도 여기입니다. '어떤 분배가 공정한가? 능력에 따른 분배는 공정한가?'
능력주의를 둘러싼 논쟁은 결국 능력주의가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는 이념이자 틀로써 적합하냐는 물음입니다. 능력주의에 대한 긍정은 더욱 정교한 능력주의가 사회적 불평등과 기회 불균등, 폐쇄된 계층 사다리를 타파하는 공정한 틀이자 도구가 되리라는 인식입니다. 반대로 능력주의에 대한 우려는 상기한 사회적 문제의 지분을 능력주의가 안고 있으며, 이를 해결할 공정성도 담보하지 않는다는 주장입니다.
사회적 맥락을 함께 돌이킬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자유 자본주의 국가입니다. 자유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정한 분배=평등한 분배'가 아닙니다. 오히려 차등 분배를 긍정하고 사회적·경제적 불평등도 허용합니다. 기회의 균등과 절차의 공정성 아래 자유로이 능력이 발휘된 결과라면요.
국가 전체 소득과 직업 자체가 늘어나던 고성장 시대는 옛날옛적에 지나왔습니다. 취업문은 사상 최악으로 좁아졌고 부동산 문제로 인한 주거불안도 심합니다. 그러나 현재 MZ세대로 대표되는 공정성 요구의 핵심은 사회 불평등을 뒤집자는 게 아닙니다. 이미 신자유주의적 가치관을 깊숙이 체화한 상태이기에 불평등 자체는 인정합니다. 불가피한 불평등이라면 공정하기라도 바라는 겁니다. 물음은 그 공정한 방법이 능력주의냐는 겁니다.
사회적 재화는 구성원 모두가 필요로 하지만 모두에게 돌아갈 만큼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구성원 간 갈등을 방지하고 신뢰와 협력을 위해 분배에 공정성이 요구됩니다. 바로 분배적 정의입니다. 분배적 정의를 실현하는 대표 기준은 업적, 능력, 필요입니다. 어느 하나의 기준만 적용하기보다 사회적 합의와 상황에 따라 적합한 기준을 만드는 일이 요청되는데요. 이 중 능력주의와 맞닿아 있는 업적, 능력에 따른 분배를 살펴봅니다.
도서
고등학교 통합사회 교과서
<능력주의>, 마이클 영 지음, 유강은 옮김, 이매진, 2020.
<능력주의와 불평등>, 박권일 외 9명 지음, 교육공동체벗,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