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주의를 두고 제기되는 이야기에는 꼭 공정성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 능력주의가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분야는 교육과 직업인데요. 그중 교육은 대학 입시와 맞물려 인생에 있어 처음 맞닥뜨리면서도 이후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능력주의적 무대입니다. '기회의 평등'이라고 할 수 있을 교육적 환경이 개인 가정마다 다르기에 능력 검증에 있어 공정성 시비가 있음은 지난 화에서 살펴보았는데요. 교육의 가치는 꼭 인재 선별과 가치 배분에 있는 걸까요?
대학은 현대사회에서 사회적 기회의 배분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좋은 대학은 곧 좋은 직장과 더 많은 기회를 의미할 때가 많죠. 이와 같은 흐름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세계적으로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이 고등교육을 대폭 확대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입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단순 노동자만으로 굴러가지 않습니다. 산업이 발달하고 경제가 팽창하자 관료나 전문직 등 중간 관리자 및 엘리트도 필요해진 겁니다.
이에 따라 고등 학습은 물론 선발과 배치를 위한 평가 체제도 발달합니다. 개인의 능력을 측정하고 차등 배치하는 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교육은 시험이나 평가와 함께 자리 잡죠. 기회의 평등과 사회적 계층 이동을 내세우는 능력주의의 평등하고 공정한 수단으로 추앙받습니다. 그 결과 교육을 통해 거둔 성적과 시험 결과는 개인의 능력이 되고, 이를 이용해 획득한 학력과 직업 선택의 기회는 능력에 대한 보상이 되죠.
자본주의 교육에서 시험문화가 활성화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먼저 국가가 교육을 통제하고 관리하기 쉽습니다. 미국의 경우 공식적인 제도로써 시험은 19세기 중반 교육 개혁의 일환으로 진행됐습니다. 이전까지는 일선 교사들의 교육과 평가에 맡겼으나 주관적이며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표준화 시험을 도입합니다. 실질적인 이유는 효율성이었습니다. 일괄적인 시험 및 평가는 많은 인원을 상대로도 값싼 비용과 짧은 시간을 자랑하니까요.
두 번째는 노동력을 서열화하기 위함입니다. 이 역시 효율성과 맞닿아 있는데요. 학생을 이후 노동시장에 적재적소에 배치하기 위해선 능력에 따른 지표의 비교가 필요합니다. 이를 비교 가능한 형태로 구현한 것이 바로 시험 점수인 셈이죠. 점점 많은 사람이 교육을 받게 되고 직업도 다양해지자 교육 체제 및 시험은 인간의 능력을 측정하는 과학적 도구로서 발전합니다.
시험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계층이동 수단이라는 믿음은 학습의 결과기도 합니다. 오늘날 치열해진 경쟁이나 복잡해진 공정성을 떠나, 예전 한국 경제의 급성장기에 목격한 '개천용' 신화의 향수가 있는 거죠. 그러나 여기에는 사실 1970~80년대 굉장히 호조를 보였던 경제 상황이 배경으로 존재합니다. 당시에는 실제로 노동계급이나 농촌 집안에서 교육을 통해 성공한 이들이 중간계급이나 화이트칼라 노동자로 진출하기도 했죠.
오늘날 시험문화는 평가주의(Testocracy)로 불릴 만큼 결과와 평가에 치중돼 있습니다. 하루의 시험으로 인생에 큰 영향을 주는 대입 시험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죠. 시험 성적이 곧 나은 미래로의 '티켓'으로 여겨집니다. 그렇기에 교육적 목적이나 학습의 과정보다 더 나은 시험 성적을 받는 일이 교육 활동 전반을 지배합니다. 시험을 통한 교육 평가 결과는 자본주의 사회질서에 편입하는 수단이 되고, 능력(성적)의 부족을 이유로 차별받는 근거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녀의 수험은 가족 프로젝트로 확대되기도 하죠.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지면서도 그 결과 학벌이라는 무시 못 할 사회적 자원을 가져다주는 분배 도구로 기능해 사회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입니다. 교육과 시험은 곧 사회적 계층 이동성과 사회적 재화를 얻기 위한 기회의 평등으로 인식되죠. 배경과 자원을 동원해 자녀의 교육을 뒷바라지하는 게 '부모 노릇'과 같고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제어하는 '헬리콥터맘'이 등장하는 이유입니다. 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개인의 능력이 발현되는 능력주의를 저해합니다. 나아가 다른 가족, 집단에 배타적인 가족 이기주의를 낳기도 하죠.
요약하자면 단기간에 근대화를 이룩하는 과정에서 국가는 집중적 투자 전략과 엘리트 교육을 선택했고, 그 과정에서 계층 이동 수단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입시 경쟁에 너도나도 뛰어들고 있는 것이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우리나라 교육 및 시험 문화의 단상입니다. 봉건사회의 신분제가 해체된 자리는 시험을 통한 능력주의적 평등이 대체하며 그 직접적 수단인 시험문화는 강력해졌습니다.
요즘도 "대학 가면 놀아라, 대학 가서 연애해라" 이런 소리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과거 농담 반, 진담 반 부모님 세대가 자녀에게 했던 이 표현이 환기하는 것은 그만큼 대한민국 사회에서 학벌과 학력이 중요하며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오히려 대학 가는 일 자체는 쉬워졌습니다. 그러나 경쟁과 갈등은 더 치열해졌는데요.
대학 진학률이 오른 건 앞서 이야기한 고등교육의 확대와 이로 인한 계층이동 요구로 교육열이 오르고 실제 대학도 늘었기 때문입니다. 1996년 최소 요건만 갖추면 대학 설립을 인가해 주는 '대학설립 준칙주의' 제도로 일반대학의 수는 1996년 134개교에서 2014년 189개교로 55곳이나 늘었습니다. 지금은 학령인구 감소로 폐지된 제도지만 대학의 숫자는 여전히 많은 상태죠. 2021년 대학 진학률은 79.4%에 이릅니다. 과거와 같은 '대졸 프리미엄'은 옛말이죠.
대학은 웬만해선 가다 보니 중요해지는 건 '간판'입니다. 상위권 대학에 대한 열망이 커지고 대학의 서열화 및 학력, 학벌 문제는 심해집니다. 게다가 성장은 둔화되고 경기는 좋지 않으며 취업난은 최악이니 경쟁은 심해지고 교육 비용은 늘어납니다. 스펙업을 위한 비용은 물론이고 학자금 대출금과 같이 취업 후에도 발목 잡히는 경우가 많죠.
모두가 대학에 입학에 학력을 얻을 것이 권장되지만 정작 대학에 들어가더라도 경쟁은 심화되며 더욱 촘촘한 학벌 서열과 차별을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날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대한 요구에서도 '학력 취득을 위한 노력에 대한 보상'이 자주 소환되는 이유기도 합니다. 그만큼 어렵고 치열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능력주의에 따라 단지 사회적 기회를 취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력이 강요된다면 이에 대한 보상 역시 공허한 요구입니다. 결국 교육과 시험의 평가 기능을 강화하고 학벌을 더욱 촘촘하게 서열화하는 방향으로 흐르기 때문입니다. 지난 화에서 학벌 취득에 오늘날 가정의 부가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 역시 짚은 바 있죠. 이는 곧 사회적·경제적 지위의 대물림과 다름없기에 능력주의로서도 공정하지 못합니다.
가정의 소득이 학벌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학벌은 다시 소득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연구에 따르면 생애주기에서 대학서열에 따른 임금격차는 최고 46.5%까지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4년제 대학을 서열에 따라 분류하고 약 20년 동안의 임금을 비교·분석한 것인데요. 최상위권인 5분위 대학 졸업자들의 평균 연봉과 최하위권인 1분위 대학 졸업자들의 연봉 격차는 시간이 흐를수록 벌어집니다. '대학' 프리미엄은 없지만 '학벌' 프리미엄은 있는 셈이죠.
"4시간 자면 합격하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4당5락'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쓰이는 우리나라 교육계에서 능력주의 신화의 힘은 막강합니다. 그러나 사회적 기회 배분과 공정성 담론에 지나치게 쏠리는 점이 경계됩니다. 무엇을 위한 교육과 시험이냐는 거죠.
시대는 바야흐로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 팬데믹과 기후위기를 이야기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교육은 시험공부와 점수 경쟁에 매달려 막대한 시간과 자원을 쏟아부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아실현 역시 '욜로' '워라밸' '부캐'와 같은 표현으로 개인 층위에 맡겨질 뿐 사회적 실천과 연결되기 힘듭니다.
시험을 통해 좋은 학벌을 얻는 것이 능력이기 때문에 이에 맞는 자격과 보상에 대한 요구가 공정성과 정의에 대한 외침이 됐습니다. 좋은 학벌을 얻는 것이 과연 교육을 통해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능력인지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역시 부모의 사회·경제적 배경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학력과 학벌은 사회적 재화를 배분받는 데 중요한 기준이 되고 교육은 이를 취득하는 수단으로 왜곡됩니다.
이는 그동안 긴 시야의 교육 정책이 부족했다는 점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발전에 따라 인적 자원을 양성하고 엘리트를 길러내 성장에는 기여했으나, 그 외 어떤 교육적 목표를 설정해 수행했는지는 아쉬움으로 꼽힙니다. 반공투사, 산업역군, 자본가, 엘리트를 양성하는 일 외에 어떤 인간적·연대적 가치를 교육했는가 하는 목소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리더나 판·검사, 의사, 정치인과 같은 엘리트들 일부가 대중의 신뢰와 공감을 잃고 능력에 따른 이기주의적 모습도 보인다는 거죠. 교육이 기회 배분과 계층 이동, 공정성 문제에 얽매여 새로운 가치 습득 및 사회 발전, 공동체적 연대를 놓치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도서
<능력주의와 불평등>, 박권일 외 9명 지음, 교육공동체벗, 2020.
뉴스
단비뉴스
세계일보
‘부모 능력’ 각축장 된 대입… ‘유전합격·무전낙오’ 대물림 [연중기획-끊어진 계층이동 사다리]
보고서
한국노동연구원
웹
마르크스21
[서평] 《능력주의와 불평등》 자본주의에서 능력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
여시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