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으로 독특한 형태의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대한민국은 이제 총선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선거법 개정안에 따라 의석수는 현행 체제와 마찬가지로 ‘지역구 253석+비례대표 47석’으로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비례대표 47석 가운데 30석에 연동률 50%를 적용, 정당 지지율뿐 아니라 각 정당에 소속된 지역구 당선자 수에 따라서 정당이 최종적으로 획득하는 비례대표 의석수가 바뀝니다.
결국 그렇게 난리를 피며 싸웠던 선거법의 기본 형태는 기존 총선의 의석수를 유지하고 전체 300석 중 10%에게만 연동률을 50% 적용한 반쪽짜리 법안이 탄생한 겁니다.이번 파트에는 선거법 논의 과정 중 대중에게 알려진 다양한 개정안이 어떻게 지금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또한, 지금까지 대한민국 선거제도를 소선거구제로 중심으로 채택하고 있는 이유와 비례대표제의 확대 및 연동형 비례제의 장점 및 단점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선거제도 개혁의 취지는 간단했습니다. 파트 1에서 언급했던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한 논의로 시작된 것입니다. 다시 간략히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거대 정당(민주당·한국당)의 의석수 감소와 지역구 의원들의 희생은 불가피했으나 처음부터 한국당에서 반대만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2018년 12월에는 여야 5당 원내대표가 모여 합의문을 발표하면서 대화가 긍정적으로 시작되었음을 알렸고 합의문 전문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한국당의 입장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대통령제(직선제) 국가에서 작동이 어렵기 때문에 곧바로 개헌 논의를 통해 권력구조를 바꾸기를 희망했습니다. 당시 나경원 원내대표는 “일부 정치권에서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기정사실로 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며 이에 대해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내각제 원포인트 개헌 없이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세웠습니다.
이어 나경원 원내대표는 “현행 대통령제라면 오히려 의원정수를 10% 감축하는 것이 한국당의 입장”이라며 “내 손으로 뽑을 수 없는 비례 국회의원을 폐지하고, 내 손으로 뽑을 수 있는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조정해서 의원정수를 10% 줄인 270석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라고 밝히자 합의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지나치게 대립되는 입장을 표하자 여야 4당은 한국당을 제외한 합의안 논의를 시작했으며 이후 제1야당의 지속적인 불참으로 결국 동물 국회의 모습을 다시 한번 전국민에게 보여주는 사태까지 이어졌습니다. 이후의 정치적인 스토리는 생략하겠습니다.
정치적인 드라마보다는 제안된 개정안을 중심으로 어떻게 선거법 개정안이 변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겨레 신문은 이를 ‘호랑이 그리려다 고양이 된 선거법’으로 묘사를 했는데 처음의 취지와 결과가 어떻게 차이가 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①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2015년 ‘연동형 비례대표제 –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위한 국회 권고안
② 2019년 1월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가 제시한 연동형 비례대표제 권고안
③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4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한 선거법 개정안
④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이 통과시킨 선거법 개정안
마지막에 채택된 안은 결국 1. 비례대표의 수를 늘려주는 의도에 부합하지 않으며, 2. 승자 독식의 선거 방식을 개선하지 않았으며 3. 지역주의 완화를 위한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현행 제도와 유일한 차이점은 30석에만 연동률이 50% 적용되는 점이 소수 정당의 정치 참여에 미약하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계산입니다.
이 제도는 거대 정당 입장에서는 지역구 의원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결국 비례대표제로 인해 소수 정당에 뺏기는 의석도 줄였기 때문에 기존 선거제도와 큰 차이점이 없고 소수정당은 결국 처음 논의에서 몇 발짝 물러난 합의에 만족해야 하는 상황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선거에서 우리는 지역구와 비례대표 방식으로 투표합니다. 파트1에서 언급한 백두산 의원과 한라산 의원의 예시를 확인하시면 어떠한 방식으로 기존 선거 방식을 채택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A: 연동률 100%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도입되면 ‘정당 득표율’을 토대로 총 의석수를 나눠 가지는 선거제도입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제도는 아닙니다. 예를 들어 특정 정당이 총선에서 정당 득표율을 10% 받았다고 가정하면 이 정당은 300석에서 10%에 해당하는 30석의 의석을 확보하게 됩니다. 만약 지역구 투표를 유지해서 15명의 후보를 당선시키면 나머지 15명에 해당하는 의석을 비례대표로 얻을 수 있습니다.
시나리오B: 연동률 50%의 의미
위에 언급한 시나리오에서 300석의 10%인 정당이 30석을 받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연동률을 50%로 제한한다면 확보하는 의석은 30에서 지역구 당선인을 제외한 숫자에서 다시 한번 50%를 반영해 총 7.5석을 확보합니다. 15명의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이 된다면 남은 30-15 = 15석에서 다시 50%를 반영해 7.5를 반올림한 8명의 비례대표를 확보하는 제도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15명의 지역구 후보와 함께 비례대표의석 8개로 총 23석을 얻게 됩니다.
시나리오C: 지역구의원 > 비례대표의석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적용해 특정 정당이 정당 득표율보다 많은 수의 의원을 지역구에서 당선시키면 어떻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예를 들어 거대정당이 33%의 정당 득표율을 얻었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그렇다면 이 정당은 300석의 33%인 100석을 가져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거대 정당이 지역구에서 120석을 얻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비례대표의석을 감안해 의석수를 줄이기 보다는 그대로 120석을 유지하게 됩니다. 대신 전체 국회의원의 숫자는 300명에서 320명으로 늘어나게 됩니다. 대신 거대정당은 비례 의석을 추가로 배정받지 못합니다.
누구에게 유리한 선거제도?
이런 이유로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거대 정당에 유리한 선거제도는 아닙니다. 자유한국당이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소수정당이 제시하는 현 선거제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정당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이유로 지역구 투표에서는 거대 정당 후보에 번번히 밀리는 것이 소수정당의 상황입니다. 지난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비례대표를 뽑는 정당 지지율이 26%가 넘었습니다. 그러나 지역구 선거(소선거구제)에서 민주당 및 한국당에 크게 밀려 25석을 확보하는데 그쳤습니다. 같은 선거에서 민주당은 25%의 정당 지지율을 얻었지만 지역구 선거에서 110석을 확보하며 국민의당보다 3배 이상의 의석수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승자 독식의 선거 제도(소선거구제)는 안 좋은 선거 방식인가요?
대한민국은 대통령 선거에 있어 직선제 기반 승자독식의 방식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의 승자는 가장 많은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자로 결정이 되며 2위와의 격차가 아무리 작아도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권한이 생깁니다.
학창시절 학생회장 선거를 떠올려 봅시다. 한 학교의 학생이 300명인데 그 중 후보가 3명이 나와 1위가 150표, 2위가 140표, 그리고 3위가 10표를 받았다고 가정하면 2위와 3위는 기회를 잃어버립니다. 학교는 소선거구제의 원칙에 따라 학생회장이 당선됨과 동시에 당선인이 학생회 운영을 위한 구성원을 꾸릴 권한을 주게 됩니다. 대통령제에서 내각을 구성하는 일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런 형태의 선거제도는 우리에게 조금 더 익숙한 방식입니다.
국민 대부분은 대통령 선거에도 유사 방식을 떠올립니다. 1987년 기성세대가 힘들게 쟁취한 직선제로 자기 손으로 대통령을 뽑고, 자기 손으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 방식이 대한민국 투표 방식으로 채택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지난 대선의 결과를 한번 봅시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체 투표수 3,280만 7,900표 중 1,342만 3,800표를 얻었습니다. 전체 득표율의 41% 수준을 확보한 결과이지만 반대로 보면 1,938만 4,100표의 사표가 발생했습니다. 이를 두고 사회가 분열이 되거나 대표성 및 비례성을 외치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익숙하고 합의된 대통령제의 선거 룰입니다. 이를 기반으로 입법기관의 지역대표인 국회의원을 뽑는 과정에도 승자 독식의 선거 제도를 적용한 것입니다.
최근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둘러싼 정치계의 입장이 엄청난 대립을 이루고 있는데 이 제도가 우리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되는지에 대한 토론보다는 향후 얼마나 더 많은 의석을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정당들의 계산법이 언론에 보도되고 있습니다.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많은 의석을 여기에 배분한다고 무조건 선진화된 민주주의를 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동안 총선을 앞두고 비례대표제에 대한 많은 비판과 문제점도 지적이 되었습니다. 정당 지지율을 기반으로 비례대표에 오를 인물을 선정하고 배치하는 기준이 정당의 대표부에서 결정되기 때문에 오히려 국민이 뽑은 인물이 아닌 정당이 임의로 뽑은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비례 대표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례대표제의 취지는 군소정당의 국회 진출을 높이고 지역주의를 완화하려는 것이지만 따라오는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도 절실합니다. 최근 각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청년 후보의 숫자를 늘리고 이를 홍보하는 이유도 위와 같은 비판을 어느 정도 무마하기 위한 선택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독일과 뉴질랜드는 혼합형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성공적인 사례의 국가로 평가됩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통과된 개정안은 여전히 비례대표의 비율을 너무 적게 배정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지역구대표의 숫자를 줄이거나, 전체 의원수를 늘려 이를 비례대표의석에 배정하는 방안이 있습니다.
거대 정당은 지역구 대표를 축소하는 방향은 그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반대하고, 전체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눈치를 보며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알아야 할 것은, 국민은 국회의원 수를 늘리는데 근본적으로 반대한다기 보다는 국회의원이 가지고 있는 특권 및 혜택을 줄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기득권 세력은 국민의 반대 여론을 핑계로 의석수 증가에 대한 논의를 거부하는데, 이에 대한 해결 방안은 다양합니다.
1억 5천만 원에 달하는 국회의원의 연봉을 삭감하고 보좌진의 숫자를 9명에서 6~7명으로 줄인다면 이를 통해 확보한 세금을 국회의원 수 확대에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전직 국회의원에게 주는 연금 제도를 폐지한다면 연간 50억이 넘는 예산을 줄일 수 있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에는 같은 돈으로 더 많은 국회의원을 뽑고 추가 당선자는 지역 및 국가를 위해 일을 한다면 국민에게 훨씬 득이 되는게 사실인데 이를 외면하고 있는게 대한민국 국회의 실상입니다. 실제 동아일보에서 2019년 11월 18일 보도된 기사를 보면 국회의원 월급을 30% 삭감하고 최저임금의 5배 이내로 책정하는 법안을 제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자유한국당·바른미래당 소속 국회의원은 단 1명도 동참하지 않았다고 꼬집었습니다. 현재 국회의원은 최저임금 대비 7.25배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20대 국회가 보여준 입법기관의 대표자가 받아야 할 마땅한 수준의 연봉이라고 국민 누구가 이야기 하겠습니까? 결국 이 법안은 전체 300명의 국회의원 중 10명이 서명할 정도로 묻혀 버리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오늘은 최근 통과된 선거법 개정을 이해하기 위한 파트2 섹션을 공개했습니다.
선거제도란 유권자의 투표를 의석으로 전환하는 규칙입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주권자(국민)가 대표(국회의원)를 뽑아 자신의 권한을 넘겨주는 것입니다. 선거제도 개혁 요구는 단순히 국회의원 선출 방식을 바꾸는 것을 넘어 주권자와 힘을 위임 받은 대리인의 거리를 좁히려는 것으로,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열망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부록에는 다른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선거제도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오늘도 똑똑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