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을 둘러싼 논쟁

여성 억압인가 종교의 표현인가

배경

2004년, 프랑스는 학교에서 “과시적 종교적 상징”을 금지했으며, 2010년에는 공공 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옷을 입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제정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법안이 히잡이나 니캅 등을 착용하는 무슬림 시민을 저격하며 이슬라모포비아를 조장한다고 비판했지만, 여전히 얼굴을 가리는 옷을 입으면 벌금과 더불어 “시민권 수업”을 들어야 한다.

한편, 코로나 사태 대응책으로 프랑스는 학교와 대중 교통과 같은 공공 장소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했다. 전자는 국가 특유의 세속주의(라이시테, Laïcité)를 실천한 것이고, 후자는 공중 보건을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게 프랑스 정부의 입장이다. 그러나 니캅을 입은 여성이 지하철에 탈 때 얼굴 가리개를 벗고 마스크를 써야하는 다소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되는 모습을 보며, 무슬림과 더불어 프랑스 시민은 “프랑스인”, "공화국", "자유주의"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정의되는지 재논의 중이다.

결국, 히잡에 대한 토의는 머리나 얼굴을 가리는 옷을 착용하는 행위가 본질적으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현대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지에 대한 논쟁이다.

히잡, 부르카, 니캅?

니캅, 히잡, 부르카, 차도르

히잡(Hijab)은 아랍어로 '가리기', '커텐' 등을 뜻하는데, 일반적으로 머리 혹은 가슴 일부를 가리는 두건의 형태지만 그 명칭과 의미는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다. 또한 넓은 의미에서 무슬림 여성이 신체를 가리기 위해 착용하는 모든 형태의 베일 또는 의복을 지칭하기도 한다.

히잡은 긴 스카프를 머리와 어깨를 두르고 핀으로 고정하는 식으로 착용하는데, 어깨에 살짝 닿는 '샤일라(Shayla)'와 어깨까지 모두 내려오는 '알 아미라(Al-Amira)', 둥근 천을 씌워 어깨와 가슴까지 가리고 얼굴만 보이게 하는 '키미르(Khimar)' 등이 있다.

더 나아가 얼굴과 몸을 가리는 의복도 있다. 특히 '부르카(Burqa)'는 눈을 포함한 몸 전체를 가리며, 눈은 망으로 가려 앞을 볼 수 있도록 한다. 차도르(Chador)는 얼굴을 제외한 온몸을 감싸는 검은 옷이다. 니캅(Niqab)은 눈을 제외한 얼굴 전체를 덮는다. 부르카는 주로 아프가니스탄과 이집트에서, 니캅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차도르는 이란과 이라크에서 주로 입지만, 지역에 따라 세부적인 형태와 입는 사람의 비율도 천차만별이다.

히잡의 역사

무슬림의 여성 의복과 관련한 논란은 프랑스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2018년, 덴마크에서 극단주의 이슬람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부르카를 금지했으며, 같은 해에 전 영국 외무장관이자 현 수상인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은 부르카를 입은 여성을 '편지함'과 '은행 강도'에 비유했다. 유럽을 비롯한 서방 세계에서 전면 베일을 쓴 무슬림 여성의 모습이 서양의 현대 민주주의 가치와 양립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면적 논쟁이 시작된 것이다.

같은 해에, 이집트의 인기 여배우 할라 시하(Hala Shiha)가 히잡을 벗고 12년만에 연기 활동을 재개하면서 다른 맥락에서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중동의 좌파 세력은 그의 행보를 칭찬했고, 다른 이들은 그의 선택이 신앙으로부터 멀어진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비판 일색이었다.

유럽과 중동에서 각각 벌어지는 히잡에 대한 논쟁은 이 주제가 얼마나 현대 정치 의제를 위한 수단이 되었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히잡에 대한 토의는 종종 무슬림에 대한 논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슬림 사이에서도 분열적인 문제다. 그리고 단순히 "이슬람 신앙의 표출"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히잡의 확산 에 있는 역사가 복잡하고 흥미롭다.

히잡이 원래 이슬람의 전통 의상이 아니라고?

1959년, 카이로 대학교. 여성은 서양식 의상을 주로 입었으며, 히잡은 보이지 않는다.

히잡은 종종 이슬람 문화의 전통적인 의복으로 취급되지만, 이슬람권에서 히잡의 광범위한 착용은 비교적 새로운 현상이다.

일례로 이집트의 경우를 살펴보자. 1956년, 범아랍주의와 사회적 평등, 반제국주의 노력과 근대화 정책으로 아랍 세계에서 상징적인 인물인 가말 압델 나세르(Gamal Abdel Nasser) 당시 이집트 대통령은 연설에서 히잡을 착용을 의무화하자는 무슬림 형제단(Muslim Brotherhood)의 주장을 비웃었다. 그 집단의 지도자의 딸 조차도 히잡을 입지 않는 점을 짚으면서, 이렇게 얘기했다:

“왜 그녀에게 히잡을 입히지 않았습니까? 딸에게도 옷을 입히게 할 수 없다면 천만 [여성]에게 어떻게 입도록 할까요?”

그리고 관객은 박장대소로 이 말을 환영했다.

당시만 해도 이집트는 중동 영화 산업의 중심이었으며, 영화관에서는 키스, 비키니, 술, 카지노에서의 도박 등의 장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중동에서 자라나는 자유주의의 모습을 상징하는 모습이었다.

이슬람 급진주의의 성장

그러나 중동 지역은 격변의 시기를 앞두고 있었다.

1967년, 이스라엘은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등을 포함한 아랍 군대를 물리쳤고, 이는 중동 지역의 세속적 탈식민지 정권의 실패를 상징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서방의 문화와 사상에 거부감을 가지며 이슬람을 대안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1979년에 연달아 일어난 이란 이슬람 혁명, 극단주의자들의 메카 공성전, 아프가니스탄의 지하드에서 이슬람 보수주의는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를 표방한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 경제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근본주의적 사상이 아랍 세계에 전파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1956년에 여성들에게 히잡을 입으라고 했다가 비웃음을 샀던 그 무슬림 형제단이 빈민층과 중산층을 상대로 교육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자선 단체의 역할을 하면서 큰 영향력을 가지기 시작했다. 1975년에 카이로 대학을 다니던 여성 학생은 인터뷰에서 "캠퍼스에서 히잡을 입는 학생을 보면 극단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했다"고 했지만, 10년도 채 안되서 본인도 히잡을 입기 시작했다. 중동 사회에서 일어났던 짧은 시간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다.

히잡을 입는 문화가 신앙적 동기로부터 비롯된 것만은 아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는 널리 보급된 텔레비전을 통해 패션 트렌드로 홍보되었다. 그리고 히잡을 경건함과 신앙심의 상징으로 내세워 남성 구혼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필수적인 의상이라고 설파하기도 했다.

히잡은 이슬람 문화권 현대사의 산물

무슬림 여성의 일부가 히잡을 착용하게 된 문화적 변동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종교적 원인보다 훨씬 더 다양한 사회적 요인에 의해 결정됐다. 그리고 애초부터 히잡을 쓰는 풍습 자체가 몇 십년밖에 안되기도 했다.

현대에 히잡을 강제적으로 입게 하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두 나라 뿐이다. 다른 무슬림 다수 국가에서는 히잡을 착용하는 것이 선택에 달려있지만, 지역과 문화에 따라 사실상 의무적인 곳도 있고, 대부분 착용하지 않는 곳도 있다.

히잡은 여성 억압의 상징인가

부르카를 입은 모습

부르카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과정에서,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었던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는 이렇게 얘기했다:

"부르카의 문제는 종교적인 문제가 아니라 자유와 여성의 존엄성의 문제입니다.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복종과 비하의 표시입니다 .... 부르카는 프랑스에서 환영받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회 생활에서 단절되고 정체성이 박탈된 스크린 뒤에 있는 여성 포로를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페미니즘과 세속주의 가치를 무기로 삼아 프랑스 정체성에서 무슬림을 배제한다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자유주의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 말에 공감하는 이들도 있었다.

특히, 히잡은 본래 이슬람 신앙 실천에 필수적인 덕목이 아니라는 것이 무슬림 세계에서 히잡을 비판하는 여성들의 입장이다. 위에서 언급되었듯이, 히잡은 애초부터 1980년대에서야 중동 문화권에서 널리 착용하기 시작한 의복이다. 그리고 이슬람 경전을 해석하는 다수의 신학자들에 의하면 무슬림 여성이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해야 한다는 내용은 없다.

더 나아가, 다수의 무슬림 여성에게 히잡은 남성이 여성의 머리카락에 유혹을 받아서는 안되기 때문에 여성이 스스로를 가려야한다는, 근본적으로 성차별적 발상에서 비롯된 의상이다. 히잡을 입든 입지 말든, 그것은 여성 스스로의 결정이어야만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는 히잡 착용을 넘어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을 비롯한 몇몇 중동 국가들의 심각한 여성 인권 탄압의 이슈와도 밀접한 문제다.

히잡을 의무적으로 착용하도록 하는 국가와 문화권이 있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전세계 대부분의 모스크에서는 무슬림 여성이 머리를 가리지 않고 입장하는 것을 금지한다. 1965년에 가톨릭 교회에서 여성이 머리를 가리고 입장해야 한다는 규칙을 없앤 것과 같이, 이슬람도 현대 사회에 발맞춰 진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히잡은 페미니즘의 상징인가

서방 민주주의에서 오히려 히잡을 착용하는 것에 대해 제한적인 조치를 취하는 국가가 늘기 시작하고, 무슬림 이민자를 향한 인식과 정책이 부정적이며, 이슬라모포비아가 점차 퍼지는 형국이다. 그래서 히잡을 스스로 착용하는 것이 오히려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며, 그릇된 종교 박해에 맞서는 행위라는 입장도 있다.

전면 베일을 착용하는 프랑스의 무슬림 여성은 600만 무슬림 인구 중 400명에서 2000명 정도라고 추산된다. 이 소수의 여성들은 부르카 논쟁에 포함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부르카를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대부분 남성) 정치인은 누구도 기꺼이 그러한 옷을 입는 것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며, 그 옷을 입은 사람은 의심할 여지없이 남성의 억압을 당한 경우라고 열정적으로 주장했다. 남성과 종교의 억압으로부터 여성을 '구제'하려고 노력한다면서 자신의 신체와 의상 선택에 대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거부하는 아이러니를 깨닫지 못한 이들은, 결국 프랑스에서 얼굴 가리개를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전세계의 무슬림 인구를 상대로 한 사상 최대의 설문조사에서, 히잡을 입는 여성의 대다수는 자발적으로 착용한다고 응답했다. 대부분 신앙의 실천으로 생각하지만, 문화적으로 익숙하거나, 몸을 가리는 것이 편한 사람도 있는 등, 그 이유는 복합적이다. 그런데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양 국가에서는 오히려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하면 안된다는 사회적 압박이 존재한다고 한다.

"'히잡은 여성을 억압한다' 또는 '무슬림 여성은 스스로를 억압한다'는 내러티브는 인종차별적 일뿐만 아니라 성차별적이기도하다. 히잡이 여성에게 강제된다고 가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자기주체성을 무시하는 생각이며, 서양의 가치관과 패션 스타일을 이상적으로 본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달리 모가헤드(Dalia Mogahed), 미국의 '사회 정책 및 관용 연구소' 책임자

시크교를 믿는 남성들은 신앙 실천의 일환으로 수염을 깎지 않고 머리에 터번을 쓴다. 그리고 무슬림 남성 또한 (주로 중동에서) 몸 전체를 덮는 가운과 머리 덮개를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또한 이슬람 경전에 표현된 '가리다'는 의미의 히잡을 착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남성들은 억압받는다고 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히잡이 여성을 억압한다고 말하는 것은, 남성과 달리 여성의 자기주체성과 가치의 근원이 마음과 지성이 아닌 몸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는 것이다.

정리

결국, 이 논쟁에서 핵심적인 사안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다. 일부 이슬람 국가에서 히잡을 강제적으로 쓰도록 하는 풍습은 여성을 억압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겠지만, 동시에 서방 국가에서 극단주의를 막고 자유주의와 세속주의를 표방한다는 구실로 여성에게 특정 의복을 입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억압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히잡을 쓰든, 얼굴을 가리든, 비키니를 입든, 여성의 삶에 대해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사회가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회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