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9일, 대한민국은 북한으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받는다. 미국이 운영하는 국제방송 VOA Korea에 따르면, 북한 대외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는 ‘북남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을 완전히 차단해 버리는 조치를 취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보도’를 통해, 9일 정오부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통신 연락선과 군 동해·서해 통신 연락선, 남북통신시험 연락선, 노동당 중앙위원회 본부청사와 청와대 사이의 직통 통신 연락선을 완전 차단, 폐기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2018년 4월 20일 개설된 남북 정산 간 핫라인을 포함해 군 등 모든 당국 간 연락 수단이 단절되었습니다.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은 지난 4일 발표한 담화에서 탈북자들의 ‘반공화국 전단’ 살포를 강력히 비난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남한 정부에서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자 북한에서 시작한 도발이다.
‘삐라’는 영어 ‘Bill(광고지)’의 일본식 발음 ‘비라(ビラ)’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전단’이 한국식 표현이며 ‘삐라’는 북한말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90년대 이후 대한민국 정부는 효과성 미비, 북한은 비용 문제로 살포를 중단했다. 현재는 탈북민 단체 등, 민간단체가 삐라를 북으로 보내고 있다.
시대와 주체가 변화하면서 삐라의 목적과 내용도 바뀌었다. 80년대 '삐라'에 담긴 주요 내용은 북한 지도층에 대한 비방보다는 여성 모델이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진과 같은 남한 체제의 우위를 홍보하는 이미지 및 문구 등을 사용했다. 이는 북한 주민의 이탈을 회유하는 목적이 강했다. 하지만 최근 국내 탈북 단체가 살포하는 대북 전단은 김정은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뤄 일각에선 북한 주민을 위한 메시지가 아니라 보수 단체의 홍보 수단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2018년 4.27 판문점 선언에 따라 남북 간 상시 소통을 위해 개성공단 건물에 설치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뜻한다. 판문점 선언에 따르면 남북공동연락사무소의 목적은 남북간 소통을 원활히 하고 민간 교류를 촉진시키기 위한 것으로, 일종의 ‘대표부’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외국에서는 이를 핫라인(Hotline)이라고 표현한다. 대한민국과 북한 간의 핫라인은 휴전 이후부터 설립되었고, 남북간의 관계가 악화 될 때 마다 수시로 끊겨 왔기에 큰 문제로 여겨지지 않지만, 핫라인은 남북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기여한다.
팀 하포드는 그의 저서 경제학 콘서트에서 미국과 모스크바 사이의 개설된 핫라인이 근대의 가장 대표적인 예시라고 서술했다. 당시 백악관에서 근무한 유명한 경제학자 토마스 셸링 교수는 모스크바와 워싱턴 간의 불필요한 분쟁과 핵전쟁의 위험을 막기 위해 핫라인의 개설을 제안했고, 합의 끝에 설립되었다.
셸링 교수는 전쟁이 일어나면 두 나라 모두 피해를 볼 수 있고, 전쟁을 하지 않아야 상호 간의 이익을 챙긴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정부 간 정보의 부재는 상대방 행동에 대한 의구심을 커지게 만들어 위협을 높인다는 주장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대치 관계 속에서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핫라인의 개설은 평화에 필수적이다. 대한민국과 북한 간의 핫라인도 마찬가지다. 물론 통신기술과 인공위성을 활용한 첩보 기술의 발달로 핫라인 자체의 중요성은 사라졌지만, 평화 유지를 위해 서로의 의도를 묻고 답할 수 있는 매개체의 존재는 여전히 중요하다.
대한민국의 입장은 강경하다. 통일부는 6월 11일 북한에 전단을 보내온 시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와 쌀과 성경책 등을 페트병에 담아 강으로 북한에 보낸 시민단체 큰샘의 박정오 대표를 경찰에 고발 했다고 한다. 또한, 이날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측에 법인 설립 허가취소를 위한 청문 계획을 통보했다. 남북교류협력법의 반출 승인 규정을 위반했고, 남북 정상 간 합의를 정면으로 위반함으로써 남북 간 긴장을 조성하고 접경 지역 주민들의 생명, 안전에 위험을 초래하는 등 공익을 침해 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정부의 입장이 6일 만에 바뀐 것은 문제다. 북한이 처음 문제를 제기 했던 4일 통일부는 현행법으로는 삐라와 페트병을 보내는 것에 대한 처벌이 어려워 법을 제정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북한이 강경 대응을 하자, 정부는 입장을 바꿔 처벌이 가능하다고 한 것이다. 언론 및 야당은 이런 행동을 비판하며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보고 있다고 비판했다.
법의 소급 적용은 민감한 문제다. 새로 제정된 법을 소급 적용한다면, 사회의 안정성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 시민은 존재하고 있는 법을 기준으로 행동한다. 현재, 법이 허용하고 있는 행위를 미래에 새로운 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면, 사람들의 행동은 제약이 될 수밖에 없다.
통일부가 적법한 절차를 통하여, 새로운 법을 제정하게 된다면 이후에 일어나는 행위는 처벌이 가능하지만, 갑자기 법의 해석을 바꾸고 이전 행위를 고소 했기에 논란이 일어 날 수 밖에 없다.
삐라를 옹호하는 사람은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다. 표현의 자유는 대한민국 헌법에 보장된 권리이기 때문에 정부에서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표현의 자유는 남에게 해를 끼치면 제한될 수 있고 4.27 판문점 선언에 어긋나기 때문에 제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기본권은 사회 질서 및 공동체의 이익에 해를 끼칠 경우 국가는 개입할 수 있다. '삐라'를 날리고 돌아가면, 접경 지역 주민은 북한의 보복 공격에 위협을 느낄수 있으며 국가 안보의 영향을 준다.
북한이 보복 공격을 한다면 접경 지역 주민은 생명권과 재산권에 막대한 손해를 입는다. 생명은 모든 권리에 있어 가장 기본이다. 생명이 없다면 다른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 따라서 접경 지역 주민의 생명권은 삐라를 날리고자 하는 시민의 표현의 자유보다 중요하다.
둘째, 남북관계는 정부 차원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평화롭게 추진하는 관계이다. 이는 헌법에도 명시된 국가의 역할이다. 시민단체의 활동을 존중하지만 이런 행동이 정부 간의 평화적인 관계 구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제한할 명분이 생긴다.
'삐라'로 발생하는 효과는 직접적인 피해를 끼치지 않아 정부가 개입하면 안된다고 주장한다. 특정 표현이 직접 피해를 주거나 기본권을 제한 하게 되면 정부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하지만 '삐라' 살포 행위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한다.
표현의 자유는 권력자를 견제하기 헌법이 수호하는 핵심 가치 중 하나이다. 만약, 간접 피해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된다면 권력자는 다양한 이유를 내세워 제한할 명분이 생긴다.
그 이유는 '삐라' 살포로 북한 도발을 유발 했는지 설명이 불가능하다. 대한민국과 북한은 휴전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언제든지 대한민국에 대한 도발이 가능하다. 연평도 해전 및 DMZ 목함 지뢰 사건도 있었다. 시민단체가 '삐라'를 보내고 북한이 도발을 했다고 규정하는 것은 너무 단편적인 분석이다.
또한 '삐라'가 도발의 원인이라고 해도 시민단체의 표현의 자유를 박탈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무죄 추정의 원칙을 갖는다. 특정한 행동이 직접적 피해를 일으키기 전에는 무죄라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 따라서, 예방 차원에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할 수 없다. 사법부에서 이런 행위가 잘못되었다고 판단이 내려지기 전까지 금지 행위는 민주 절차에 어긋난다.
마지막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대한민국의 민주적 가치를 수호해야 할 의무도 있다. 표현의 자유는 대표적 민주적 가치다. 북한 지도부는 본인의 안위를 위하여, 대한민국 시민의 민주적 가치를 훼손하려고 하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누구의 편에 서야 할지를 명확히 보여 준다.
대한민국의 특성상 '삐라' 살포 문제는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도 중요한 권리이고, 생명과 재산권 보호도 중요한 권리이다. 따라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삐라'를 금지할 것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