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AI 시대다. 현재 인간 삶 속 곳곳에는 AI가 부품처럼 맞물려 있다. 그러나 AI는 앞으로 더욱 발전한다. 앞으로 더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어쩌면 미래의 노동에선 인간이 부품처럼 더 작은 역할을 차지할지 모른다. 공존하는 현재이자 성큼성큼 다가오는 미래, AI. 그리고 이와 공존하는 차세대 인간상, 포스트휴먼. 이 둘은 인류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인공지능'이란 말은 왠지 어렵게 느껴진다. 단어만으로 아득히 먼 미래가 그려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미 우리 삶은 로봇 청소기, 인공지능 스피커, 자동추천 알고리즘, 번역 프로그램, 자동차 내비게이션, 사물인터넷 등 여러 인공지능과 함께하고 있다.
AI(Artificial intelligence, 인공지능)란 말 그대로 사람의 힘으로 만든 지능이다. '지능'은 문제를 스스로 인지하고 합리적으로 사고해 해결하는 능력이다. 어떤 일을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인공 존재라면 수준과 종류, 형태를 막론하고 인공지능이다. 뜻으로는 어려울 게 없는데도 왜 우리는 '인공지능'에 거리감을 느낄까?
먼저 '지능'을 인간 고유의 영역이자 능력으로 여기기 때문에 느끼는 생경함이 있다. 르네상스 이후 인간 사회 사고의 근간으로 자리 잡은 휴머니즘은 인간을 인간 아닌 존재와 구분 짓는 결정적 기준으로 이성을 지목한다. 주체적 사고와 행동이 핵심이라는 점에서 지능과 다르지 않다. 때문에 이는 인간이 인간 아닌 존재를 지배하고 도구로 활용하는 기준이자 논리가 됐다. 그런데 인간 아닌 존재가 지능을 발휘한다고? 어쩌면 전통적 인간관으로서 타당한 의구심은 '인공지능'을 이해하기 어렵거나 먼 미래의 일로 느끼게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인공지능이 고정불변의 기술 또는 대상이 아닌 것처럼, 인간의 기댓값 역시 변화한다는 점에 있다. 1956년 '인공지능'이란 용어를 창안한 인공지능 연구의 거장 존 매카시는 생전 평소 이런 툴툴거림을 남겼다. "어떤 것이 인공지능으로 구현되기만 하면 사람들은 더이상 그것을 인공지능이라 부르지 않는다." 삶에 익숙해진 기술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해당 분야의 대표성을 잃고, 아직 구현되지 않은 첨단 기술이 화제에 오른다.
오늘날 '인공지능'으로 '자동차 내비게이션'부터 떠올리는 드물 것이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 누구나 자동차 백시트에 지도 한 부 꽂아두던 시절이었다면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테다. 뭐? 기계가 알아서 길을 알려준다고? 왜, 아예 운전도 대신해 준다 그러지! 이젠 아예 운전도 대신해 줄 날이 머지 않았지만, 어쨌든 자율주행 자동차 쪽이 내비게이션보다 훨씬 '인공지능스럽게' 느껴진다. 인간이 인간처럼 사고하고 움직일 존재를 그리며 가장 먼저 기대하는 것은 언제나 현재 어떤 과업에 대한 해방이다.
그러자 황금으로 만든 하녀들이 주인을 부축해주었다. 이들은 살아 있는 소녀들과 똑같아 보였는데 가슴 속에 이해력과 음성과 힘도 가졌으며 불사신들에게 수공예도 배워 알고 있었다. — 도서 <일리아스>, 호메로스, 515~516쪽.
인간의 욕망이 과거라고 달랐으랴.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조차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인간 아닌 존재가 등장한다. 우리말로 '자동기계' 정도로 번역되는 '오토마타'(automata)다. 오토마타는 그리스어로 '스스로'를 가리키는 auto와 '존재'를 가리키는 mata의 합성어다.
약 3000년 전 지어진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서 구체적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대장장이이자 불의 신인 헤파이스토스는 자신을 도울 인공 존재를 만든다. 이해력과 음성, 힘을 가졌으며 수공예도 부릴 줄 아는 '소녀들'의 모습은 아직도 영화에서나 구경 가능한 고도의 인공지능 모습과 닮았다.
지능을 발휘하는 인공 존재에 대한 인간의 오랜 갈망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는 오늘날 인간이 인공지능에 가진 기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과거 농경의 정착으로 강도가 높아진 노동은 자연스레 이를 대체해 줄 존재에 대한 갈망과 상상의 그물을 드리우게 했다. 예로 든 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노동은 '노예만 하는 힘든 일'이었으며 그밖에 예술, 정치, 철학 등을 사람이 해야 할 귀한 일로 봤다. 그렇기에 노동은 노예가 아니라면 오토마타에 의해서나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인지 모른다.
재밌는 것은 신화나 서사시 속 오토마타가 지능적 존재로 그려지진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을 대체할 우수한 기계일 뿐이지 지능은 공고히 인간의 전유물로 여긴 당대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지능적 존재는 인간으로 한정한 한편 '지능'에 대한 관심과 탐구는 인공 존재에 대한 상상만큼이나 오래됐다. 오늘날 AI 연구는 컴퓨터 공학의 몫이라고 생각하는 게 일반적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공지능 연구와 검증에 매우 적합한 도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AI의 개념은 넓은 의미에서 지능행위에 대한 연구를 포괄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탐구한 학문의 역사는 깊고 다양하다.
AI 연구는 오랜 옛날부터 철학, 수학, 심리학, 언어학, 신경과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문에서 유기적으로 발전해왔다. 예를 들어 기원전 4세기쯤 생긴 모든 학문의 토대이자 탐구와 질문의 학문인 철학이 처음 던진 질문이 다음과 같다. 물리적인 뇌로부터 어떻게 마음이 발생하는가. 표현에 차이가 있을 뿐 마음이든 이성이든 지능이든 모두 인간이 주체적으로 사고해 행동하는 능력 또는 특성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대동소이하다. 연구하는 것이 마음이든 이성이든 지능이든 결국 관심 갖는 것은 사고가 행동으로 이어지는 원리다.
'테스형'과 플라톤의 뒤를 이은 3대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최초로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을 법칙으로 파악했다. 그 유명한 '삼단논법'(Syllogism)이다. 그는 두 개의 의심할 여지 없는 전제는 하나의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증명했다. 알고리즘의 조상님뻘 되겠다.
철학에서 나온 논리 구조는 수학으로 와 논리, 계산, 확률 세 개의 영역으로 구분해 검증할 수 있는 본격적 알고리즘 모델이 됐다. 신경과학은 뇌의 정보처리 방식과 각 부분의 기능을 연구해 어떻게 사고가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분석했다. 언어학에서는 사고가 언어와 어떤 관련을 맺는지 연구해 인공지능을 움직이는 데 쓰는 전산 언어학을 만들어 냈다.
'AI'란 용어는 앞서 언급한 존 매카시 교수를 통해 1956년 공식화되며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그는 1956년 10명의 과학자가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기계'를 제작하기 위해 모인 학술 워크숍 다트머스 회의에서 '지식을 갖고 스스로 학습하고 행동하는 기계'로 AI를 정의했다. 최초의 AI 연구 협회 공동설립자이기도 했던 그는 1958년 대표적인 AI 프로그램 언어 LISP(List Processing)를 만드는 업적을 남긴다. 이는 초기 프로그래밍 언어로서 이후 인공지능 분야에 길잡이 역할을 한다.
수학 이론과 과학실험을 통해 널리 연구된 AI는 1980년대부터 상업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한다. 사람이 일일이 알고리즘을 제어하는 단순 제어 프로그램 형태다. 이때 등장한 대표적 초기 AI가 세탁기다. 하지만 단순한 문제 풀이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고, 방대한 정보수집 및 관리에 대한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한동안 정체기를 맞는다. 본격적으로 AI 중흥기가 도래한 것은 21세기부터다. 이는 같은 시기 발달한 인터넷의 영향이 크다. 검색 엔진 등을 통해 막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게 됐고, 빅데이터를 저장할 장치는 물론 이를 처리할 컴퓨터의 연산 성능도 함께 향상됐기 때문이다. 이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이 바로 오늘날 AI 열풍을 불러온 머신러닝(Machine Learning)과 딥러닝(Deep Learning)이다.
머신러닝과 딥러닝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앞서 보다 근본적으로 AI의 원리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개념이 있다. 바로 '인공신경망'이다. 앞서 지능에 대한 관심으로 신경과학에서 뇌의 정보처리 방식을 연구한 일 역시 인공지능의 발달에 유기적으로 기여했음을 주지한 바 있다. AI 역시 인간의 지능 활동을 구현하는 것이 핵심목표다 보니 자연스레 인간의 두뇌 활동의 원리에 관심을 가졌다. 지능 활동 구현에 가장 가깝고도 직접적인 모델인 두뇌의 구조와 활동을 분석해 정보 처리 알고리즘을 구축하려 한 시도가 바로 인공신경망이다.
인간의 뇌 구조와 유사한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1943년 신경과학자 워렌 맥컬록과 월터 피츠에 의해서다. 그들은 뉴런을 분석해 신경 활동이 '전부 아니면 전무'(All-or-Nothing)의 과정 속에 움직인다는 점 등 신경망의 행동 원리를 밝혀 처음으로 인공신경망 모델을 내세웠다. 'All or Nothing'이라는 신경 활동의 명제는 'Yes or No'라는 알고리즘 작동 명제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공신경망 연구는 이후 1958년 심리학을 전공한 신경생물학자 프랭크 로젠블랫에 의해 심화된다. 그가 눈여겨 본 것은 뉴런 사이의 연결이었다. 그는 개개의 뉴런이 자신의 윗층에 연결된 뉴런에게서 받은 신호를 아래층에 연결된 뉴런들에게 넘겨주는 구조를 파악했다. 연결망의 신호 흐름을 꿰뚫어본 것이다. 로젠블랫은 이러한 뉴런 연결망의 최소 단위를 퍼셉트론(Perceptron)으로 정의하고 이들의 연결로 인지 및 사고과정을 이해하는 데 기여했다.
기본적인 AI의 일 처리 방식은 인간이 알고리즘을 통해 짜 주는 지침을 따른다. 데이터를 넣어주면(input) 지정된 알고리즘을 거쳐 결과가 나오는(output) 식이다. 일일이 하라는 대로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머신러닝은 AI에게 구체적인 지침을 짜주지 않는다. 데이터들을 넣어주면 AI가 스스로 학습해 일을 수행한다. 대신 AI가 학습을 통해 분별하길 원하는 정보의 특성을 색인을 붙여(indexing) 제공한다. 예를 들어 AI에게 강아지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고 싶다면, 인간이 할 일은 '이런 게 강아지야' 하고 강아지 사진들을 데이터로 집어넣으면 된다. 그러면 AI는 '강아지'로 색인된 정보들을 학습해 이후 스스로 강아지를 판별할 지능을 갖추게 된다.
머신러닝이 대상의 특성을 색인으로 지정한 데이터를 제공해 가르치는 방식이었다면, 딥러닝은 그야말로 '자습'이다. 인간은 데이터를 집어넣는 일밖에 할 게 없다. 이게 뭐고 저게 뭐라고 색인을 붙일 필요도 없다. 그냥 때려부으면 된다. 그러면 AI는 정보들을 분석하고 해석해 스스로 분류해낸다.
중요한 것은 정말 많이 '때려부어야' 하고, AI에게 이를 학습하고 분류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AI 스스로 어떤 대상을 분류해내려면 보통 머신러닝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막대한 양의 데이터가 필요하며, 이를 연산해낼 기술적 하드웨어가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이다. 앞서 21세기를 맞아 AI의 중흥기가 도래했다고 지적한 이유를 기억하는가? 현대에 들어 비로소 딥러닝이 요구하는 빅데이터와 기술적 스펙이 충족됐기 때문이다.
딥러닝은 복잡한 비선형 관계에서 특징을 뽑아 모델링화하는 데 탁월하다. 딥러닝이 아니라면 방대한 데이터를 일일이 분석해야만 얻을 수 있는 정보 간의 복잡한 구조 및 관계 파악을 AI에게 맡길 수 있다. 기존 머신러닝에 비해 편의성과 적용 분야에서 비교불가한 잠재력이다. 그동안에는 AI가 딥러닝을 하기 위한 빅데이터 수집이라든지 이를 연산할 컴퓨팅 기술의 부족으로 구현이 어려웠지만, 오늘날에는 각종 포털은 물론 SNS 등에서도 텍스트, 이미지, 동영상에 이르기까지 축적과 분석이 가능해졌다. 데이터라는 양분과 연산 능력이라는 스펙 향상에 힘입어 AI는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AI를 생각하면 로봇 형태로 구현된 것을 떠올리지만 꼭 'AI=로봇'은 아니다. 인공지능 자체는 데이터를 처리하는 소프트웨어라고 할 수 있다. 형태는 해당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신체'에 가깝다. 어떤 과업을 스스로 수행하는 이상 AI의 범주에 든다. AI는 능력의 적용 분야, 효율, 깊이 등을 기준으로 약인공지능, 강인공지능, 초인공지능으로 나뉜다. 약→강→초 순으로 수준과 깊이가 심화하며, 현재 우리 삶에 친숙한 AI들은 모두 약인공지능이다. 강인공지능 이상은 아직 영화로밖에 만나볼 수 없다.
어떤 특정 분야나 과정에 특화된 AI다. 용도에 맞게 자율성을 띠는 모든 기계에는 약인공지능이 탑재돼 있다. 2016년 이세돌 9단과 바둑을 둬 4:1로 승리한 구글의 알파고 역시 바둑만 둘 줄 아는 약인공지능이다.
인간 수준의 AI다. 인간이 수행하는 거의 모든 활동을 할 수 있다. 바탕이 되는 핵심 능력은 경험 속에서 스스로 성장하는 학습능력, 딥러닝이다.
강인공지능을 만들기는 약인공지능을 만들기보다 훨씬 어렵다. 심리, 사고 능력, 계획 능력, 문제 해결력이 요구되며 예술이나 이론 같은 고등 이해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전문가들이 내다보는 강인공지능 출현 시기는 2040~2050년 안팎이다.
인간을 초월하는 수준의 학습을 이룬 AI다. 미래학자이자 AI 사상가인 닉 보스트롬은 초인공지능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과학과 기술의 창조, 일반 지식, 사회적 능력 등을 포함한 거의 모든 영역에서 인류를 능가하는 지능.
미래의 초지능은 우월한 연산 및 통신 속도, 메모리, 신뢰성과 수명, 복제성, 목표 조정 능력, 정보 공유, 새로운 모듈 탑재를 통한 향상성 등을 통해 기존에 인간이 축적했던 지식을 빠르게 익히고, 이를 조합해 새로운 지식 역시 빠른 속도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포스트휴먼은 AI와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맞이할 미래의 인간을 가리킨다. 기술과의 필연적 결합으로 인간의 모습과 삶은 이전과 확실한 구분을 맞을 뿐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인간 존재를 정의해야 할 필요성에서 나온 표현이다. 보통 첨단 기술을 통해 성능이 향상된 인간을 가리킨다.
포스트휴먼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상상하는 것은 대체로 두 가지다. 인간이 기술과 결합해 기존 인간이 지닌 질병이나 수명, 신체 취약성 등을 극복한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는 것. 그리고 인간이 창조한 존재가 마찬가지로 기술적으로 고도로 발전해 인간과 구별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는 것이다. <로보캅> <아이언맨>과 같은 영화가 전자를 표상하는 이미지라면, <엑스 마키나> <her>와 같은 영화는 후자의 상황을 그린 영화다.
과거 인간과 기계는 서로 이질적 존재로 경계가 명확했다. 그러나 앞으로 인간과 기계의 경계는 약해진다. 유전자 조작, 줄기세포나 인공장기 같은 생명 기술, 로봇 팔다리나 외골격(엑스스켈레톤)과 같은 인공보철(프로스테시스), 두뇌-컴퓨터 인터페이스(BCI, Brain-Computer Interface)를 통한 인간 신경계와 기계 연결 등의 기술로 인간은 점점 기계와 결합한 사이보그적 존재가 돼간다.
반면 머신러닝을 무기로 AI는 점점 인간화된다. AI는 현재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도구지만, 점차 세계를 구성하는 실존적 존재자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AI는 아직 인간과 같은 자율성과 의식을 갖추고 있지 못한 상태다. 하지만 의식 없이 지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의식 없는 지능’을 통해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여긴 일들을 대신하면서 자율적 행동이 가능한 주체가 됐다. 마찬가지로 인간 고유의 것으로 여겼던 감정을 불완전하게나마 표현하는 휴머노이드 로봇도 등장했다. 아직 극히 이례적인 일이지만 섹스로봇과 결혼한다거나 인공지능 로봇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는 사례는 AI가 비인격체임에도 주체의 지위를 획득해가고 있는 단면이다.
포스트휴먼의 시대란 기계를 통해 인간의 외연이 확장된 시대가 아니라 인간과 기계, 동물과 식물이 하나의 평면에서 만나고 섞이며 서로를 통해 변형되는 거대한 '종합의 시대'라 해야 할 것이다. — 도서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머니즘> 강미정 외 다수, 201쪽.
앞으로의 인간을 이전 인간과 동일하게 생각할 수 없으므로 포스트휴먼이란 말이 나온 것처럼, 이러한 포스트휴먼이 살아갈 세상의 사상은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으로 그려볼 수 있다. 포스트휴머니즘이란 'post-'라는 말마따나 근대의 인간 중심적 사상인 휴머니즘(Humanism)을 비판하고 역전하는 표현이다. 굳이 미래의 인간상과 직접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주목해야 할 것은 앞으로 포스트휴먼이 살아갈 세상과 기존 휴머니즘의 괴리다. 인간의 고유한 능력으로 여겼던 지능 행위는 불완전하게나마 이미 인공지능이라는 '기계'에서도 수행되고 있다. 앞으로 그 수준이 심화할 것은 많은 학자들의 전망은 물론 현재 우리 삶을 채우고 있는 인공지능의 변화를 봐도 자명하다.
기계와 이를 이루는 생태계를 단지 도구 취급했던 기존 휴머니즘의 근거는 그러므로 이미 심각한 위협에 놓였다. 인류세로 대변되는 생태계와의 유기적 공생, 과학기술에 의존해 건강수명을 보전해야 하는 포스트휴먼의 삶으로 칠해질 미래에 '인간중심주의 '인간순혈주의' 따위는 아예 뜬금없는 소리가 될 공산이 높다.
앞으로 인간은 비인간과의 대비가 아니라 오히려 기계와 같은 비인간 요소를 포함하며 삶과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는 혼종적 존재가 된다. 또한 더이상 인간만이 세상에서 단일하고 유일무이한 주체라는 고집은 오만이자 아집일지 모른다. 인간이 기계화되고, 기계가 인간화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미 인간과 생명과 기계의 본질을 다시 보게 하고 그 경계를 해체하는 데 이르렀다. 포스트휴먼의 사회는 인간과 생태계, 기술적 존재들이 서로 얽혀 함께 살아가고 함께 진화하는 기술·생태적 공간이다.
💡 다음은 AI로 인한 인간 살림의 변화를 그린 'AI가 경제를 만나면'으로 이어집니다.
세상에 처음으로 인공지능의 존재를 알린 것은 영국의 천재 수학자 앨런 튜링이다. 그는 오늘날 CPU(중앙처리장치)의 원조격인 '튜링머신'을 만들어냈다. '봄베'라는 기계로 독일 애니그마 암호의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를 해독해 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승리에 주역이 됐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연구자들은 튜링의 업적이 전쟁의 종식을 2년 앞당겼으며 약 200만명의 목숨을 구한 것과 다름없다고 추산한다.
튜링은 당시 영국에서 불법이었던 동성애 혐의로 화학적 거세를 당하는 등 불운했던 삶을 자살로 마감하지만, 이후 죄를 사면받고 훈장을 받는다. 지금은 영국 50파운드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의 주검 옆에 놓여 있던 한 입 베어 문 사과는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나는 누구입니까? 기계입니까? 인간입니까? 전쟁영웅입니까? 범죄자입니까? —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 속 앨런 튜링(배네딕트 컴배배치 분)
인공지능과 관련해 튜링의 업적으로 가장 자주 거론되는 것은 튜링 테스트다. 그는 기계에게 사고 능력이 가능한지 검증하기 위해 1950년 튜링 테스트를 만들어냈고, 이는 오늘날 기계나 컴퓨터 프로그램이 인공지능을 갖추었는지 판별하는 일종의 자격 테스트로 쓰인다. 간략한 내용은 이렇다. 컴퓨터와 인간이 각각 분리된 공간에 있고, 심판관은 5분 정도 이들과 문답을 나눈다. 심판관이 절반 이상의 문답에서 분간에 실패하면 해당 컴퓨터는 인공지능을 갖췄다고 본다.
하지만 본래 튜링 테스트 속에는 남성 혹은 여성 특정 성별이 답하기 쉬운 젠더 분별성 문항도 담겨 있었다고 한다. 이를 두고 학자들은 튜링이 지능을 둘러싼 인간과 기계의 차이뿐 아니라 젠더 구분의 의미까지 연구하고 싶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기술적으로도 튜링 테스트는 이후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인공지능 프로그램 개발에 있어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로 남았을 정도로 수준이 높다.
똑똑! 📕 추천해요
도서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홍성욱 지음, 휴머니스트, 2019.
지금 이 시대에 어떻게 해서 기계와 인공지능, 인간이 필연적으로 관계 맺는 포스트휴먼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쉽고 통찰 있는 언어로 풀어냈다. 단지 개념이나 앞으로의 제언을 내놓기 앞서 인공지능이 언제부터 어떻게 논의·연구됐는지 연대기적 흐름을 좇을 수 있다. 포스트휴먼 연구자일 뿐 아니라 과학사에 조예가 있는 저자답게 크고작은 사건들 속 다양한 의미도 흥미롭게 읽어낼 수 있다.
도서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홍성욱 지음, 휴머니스트, 2019.
<인공지능과 포스트휴머니즘>, 강미정 외 다수 지음, 이학사, 2020.
<신경망 이론과 응용> 김대수 지음, 하이테크정보, 1992.
논문
"인공지능의 역사", 박소영 지음
보고서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포스트휴먼(Post-Human)시대 기술과 인간의 상호작용에 대한 인문사회 학제간 연구
한국소비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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