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에선 민주주의가 정치 체제로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봤습니다. 왕을 인정하지 않고 국민 다수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되는 체제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오늘날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점검하기 위해선 그 안에 담긴 이제까지 역사적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 화까지 2화에 걸쳐 역사 속 민주주의에 담긴 의미와 사유를 들여다볼 텐데요. 먼저 민주주의의 싹이 움튼 것으로 유명한 고대 그리스로 돌아가 현인들(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얘기를 들어봅니다. 뭐라고요? 민주주의는 좋지 못한 정치 체제라고요?
시곗바늘을 돌리기 앞서 다소 막연하게 느껴질 수 있는 민주주의의 장점과 단점을 먼저 정리해봅니다.
개인과 사회의 측면으로 나눠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시민(권리와 의무를 지닌 사회 구성원) 개인이 직접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이를 정책에 반영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자신이 살아갈 사회의 모습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죠. 삶의 자유는 물론 미래에 대한 자기결정권까지 지닌다는 걸 의미합니다.
물론 오늘날 민주주의는 정치인이나 정당을 통해 간접적으로 의사를 반영하는 대의 민주주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정치적 의사는 지난 화 ‘생각해보기’에서 공화당과 민주당의 가치로 짚었던 보수 또는 진보라는 큰 틀 안에서 갈무리할 수 있습니다. 투표로써 내가 원하는 방향에 대해 위임 권한을 주는 형태지만, 바라는 정치적 의사는 대부분 표현됩니다.
사회 측면에서 민주주의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공동체로서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종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개인적 삶을 허용하면서 구성원을 하나로 결속시키는 힘으로도 작용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측면이든 사회의 측면이든 정치 체제의 가치는 당위는 물론 성과도 논해야 합니다. 이제껏 정리한 것은 마땅히 수호해야 할 당위에 가깝죠. 즉, 성과에 대한 물음은 이것입니다. 모든 시민의 정치적 의사가 반영되고 공동체로서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종합하면 더 나은 삶을 가져오는가?
민주주의의 정치적 이점이나 독재, 엘리트주의의 한계에 관해선 추후 더 조명할 예정입니다. 여기선 단점으로 넘어가 보죠. 위 물음에 대한 회의론이 바로 민주주의의 단점으로 거론되는 지적의 핵심입니다. 모든 구성원의 의견을 반영하는 체제가 나은 삶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원인으로 지적되는 건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대중을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죠.
민주주의의 단점은 대중에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문제’ 역시 두 가지 경우로 세분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타고난 재능 때문이든 놓인 환경 때문이든 능력이 떨어지는 경우입니다. 존중되는 건 좋은데 그 존중된 의견이나 생각이 모두 올바르거나 가장 생산적인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어리석은 생각이 다수라는 이유로 정치적 의사를 잠식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대중이 믿는 신념에 문제가 있는 경우입니다. 대중이 믿는 신념은 당대 사회의 지배적 정서를 따라가기 쉽습니다. 문제는 사회의 지배적 정서가 항상 올바르진 않다는 점입니다. 예컨대 경쟁 과열의 사회에서 대중의 합리적 선택은 자신의 이권 보호입니다. 전시 상황에서 우선되는 것은 자국의 안전입니다. 화합이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세금 좀 먹는 소리죠. 군중심리나 선동가에 의한 포퓰리즘에 정치적 여론이 호도되기도 쉽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민주주의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재를 부를 수 있습니다. 지적한 두 ‘문제’의 경우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전자는 잘못된 다수 의견의 독재를 초래하며, 후자는 잘못된 지도자를 선출함으로써 독재를 부릅니다. 과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히틀러의 집권이 예죠. 잘못된 다수 의견을 견제하기 위해 오늘날 표현의 자유나 소수 의견의 존중이 필요한 겁니다. 대화나 토론의 장 역시 마찬가지고요.
이러한 잘못된 민주주의에 대한 경계는 서양 철학의 요람인 그리스 아테네의 세 성현(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부터 드러납니다.
먼저 그 배경이 되는 아테네 민주주의부터 들여다보죠. 오늘날 ‘민주주의의 기원’ 하면 ‘그리스 아테네’라고 할 만큼 아주 공식화됐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민주주의를 나타내는 ‘democracy’ 역시 그리스어 ‘demos’(인민)와 ‘kratos’(통치)에서 유래합니다.
그리스의 대표적 폴리스인 아테네의 정치 형태는 왕정을 거쳐 귀족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무역과 상업으로 부를 쌓은 평민의 지위가 오르고, 스스로 전쟁에 참여함으로써 정치적 목소리가 커집니다. 이와 함께 기원전 6세기 솔론과 클레이스테네스에 의해 민회나 도편추방제(참주가 될 가능성 있는 사람을 도자기 파편에 적어 다득표자 추방) 등 민주 정치의 기틀이 마련되죠.
그 결과 당시 아테네 시민들은 개인적 일뿐 아니라 공공업무에도 늘 관심을 기울이고 의견을 나누는 등 정치 이해도가 높았습니다. 공공업무에 관심 두지 않는 사람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 ‘쓸모없는 사람’으로 불렀으며, 이는 오늘날 ‘idiot’(멍청이)의 어원이 되죠. 요컨대 아테네 민주주의는 공공선을 위해 존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혹시 지난 자본주의 리포트에서 재산의 추구를 두고 공공선에 위배되기에 오랫동안 금기시 여겨졌다고 한 점, 기억하시나요? 동양 사상의 요체가 의(義)라면 서양은 공공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아테네 민주주의의 융성을 가져온 것은 전쟁입니다. 정확히는 스파르타와 오랜 기간 펼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죠. 앞서 살짝 지적했지만, 아테네 시민권은 군역 의무와 함께 주어졌습니다. 그렇기에 성인 남성에 국한된 치명적 한계를 지니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스파르트와의 오랜 전쟁 과정에서 아테네 정부는 시민들에게 계속적인 충성과 희생을 요구해야 했습니다. 아테네는 그럴 자격과 가치가 있음을 입증해야 했죠.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페리클레스는 전사자 추모 연설에서 아테네가 민주정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수호할 가치가 있는 영광스러운 국가라고 역설합니다.
‘중우정치’ 또는 ‘폭민정치’라는 말 들어보셨을 겁니다. 각각 ‘어리석은 다수의 정치’ ‘난폭한 대중에 의한 정치’라는 의미로 민주주의를 회의적으로 여긴 플라톤의 표현인데요. 이처럼 민주주의는 처음부터 이상적 정치 체제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경계해야 할 정체(政體)로 여겨지죠.
그렇기 때문에 플라톤의 스승인 소크라테스는 지혜로운 철인왕의 통치인 ‘철인정치’를 가장 이상적으로 여겼습니다. 소크라테스라는 양반을 조금 이해할 필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논리적인 양반입니다. 그가 위대한 철학자로 여겨지는 이유는 세상 모든 문제에 관해 진리를 탐구해 대부분의 사상과 체제에 기틀을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후대 정치철학자들도 모든 서양 사상이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할 정도죠.
논점은 소크라테스가 논리로 답을 찾으려 한 인물이라는 겁니다. 그가 이상적으로 제시한 정치인 철인정치 역시 다른 모든 인간보다 우월한 철인이라는 존재가 있다고 했을 때 유효하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이상적으로 여긴 것은 스파르타의 엘리트주의입니다. 이는 당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스파르타에 패배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욕망과 사리사욕이 넘치는 대중의 요구가 모여선 공공선을 이끌 수 없으며 이러한 대중의 인기를 좇는 민주주의는 올바른 지도력을 구축할 수 없다는 시각입니다. 플라톤에게 있어 가장 똑똑한 인물인 스승 소크라테스가 인민재판에 의해 죽음을 맞는 일 역시 민주주의에 있어 회의로 작용했을 테고요.
경계할 것은 당시 플라톤이 사용한 민주주의의 의미, 엄밀히는 ‘인민’(demos)의 의미가 오늘날과는 다르다는 점입니다. 다수자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일종의 멸칭입니다. 평민이나 가난한 자, 지체 낮은 자를 의미합니다. 역사 속 많은 문물의 비판이나 평가가 향유 계급에 맞춰 이뤄졌던 것처럼요. 따라서 오늘날 민주주의는 물론 앞서 페리클레스가 대중을 고취하며 사용한 민주주의와도 다릅니다.
이상적 정치 체제에 대한 고민은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이르러 구체화됩니다. 그는 국가가 취할 수 있는 정치적 몸체, 즉 정체(政體)를 위의 6가지로 분류합니다. 정치의 목적은 서양 최고의 가치인 공공선의 실현입니다. 이를 기준으로 정체가 잘 조절되는 경우와 사사로이 당사자 사익을 추구해 타락(왜곡)한 형태를 구분합니다. 순환과 타락의 과정이 반복된다고도 지적하죠. 정당성 없이 독재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형태가 참주정이며, 부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체가 과두정, 빈민의 이익을 좇는 경우가 민주정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 역시 민주주의(빈민정치)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쇠락해가는 아테네 민주주의를 보며 귀족들의 의견이 무시되고 다수 빈자들의 결정 속에 무모한 전쟁이 잇따랐다고 판단했죠. 그렇다고 군주정이나 귀족정을 옹호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군주나 귀족(엘리트)에 의한 정치는 그들이 나머지 모두를 합친 것보다 유능할 경우에만 정당하며 이는 신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고 봤죠. 정체로 구분했듯 타락의 가능성도 있고요.
아리스토텔레스의 결론은 마냥 옳거나 마냥 그른 정체는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그가 이상적으로 여긴 건 오늘날 민주주의 중심에 귀족정을 섞은 형태긴 합니다. 영국이나 일본과 유사하죠. 이유는 가난이나 부유함에 상관없이 시민의 참여를 보장하고 규정을 조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돌아와서, 그가 주목하는 정체의 핵심은 구성원이자 주체인 시민의 구성 원리입니다.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복합)정체가 돼야 한다는 거죠. 소수 전문가가 유리한 상황에선 귀족정을 꾸리고, 전체의 의견이 필요한 상황에선 민주정체가 될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이는 오늘날 권력 분립이나 대의제와의 연결도 환기하는데요. 혼합정체의 핵심은 다시 말해 국가는 누구의 전유물도 아니며 아니어야 한다는 겁니다. 공공의 것(res publica)이라는 이 개념은 이후 로마 공화국(republic)으로 계승됩니다.
뉴스
예천투데이
국민 43.9% 표를 얻어… ‘法의 이름’으로 의회와 사법부를 학살하다
도서
<민주주의>, 이승원 지음, 책세상, 2014.
<민주주의를 만든 생각들 고대편>, 구민정·권재연 엮음, 휴머니스트, 2011.
<시민의 교양>, 채사장 지음, 웨일북, 2015.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채사장 지음, 한빛비즈, 2014.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7: 민주주의와 독재>, 크리스티안 마이어 외 6명 지음,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2명 엮음, 나인호 옮김, 푸른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