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탈레반, IS 등 이슬람 무장단체 이슈에서 이런 표현 많이 보셨을 겁니다. 그들의 인권 탄압 및 폭력 행위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토대로 한 원리·원칙적 교리 해석을 바탕으로 한다고요. 이른바 이슬람 교리를 깐깐하게 적용한 결과라는 건데요. 이 말은 진실일까요? 먼저 근본주의란 무엇인지, 또 어떤 배경으로 무엇을 추구하는 움직임인지부터 살펴봅니다.
근본주의(원리주의)는 근대화에 대응해 일어난 전 지구적 종교 현상입니다. 꼭 이슬람에 국한하지 않습니다. 기독교나 유대교에서도 발견할 수 있죠. 근본주의(Fundamentalism)라는 말이 처음 탄생한 것은 1차 세계대전 직후인 1920년대 미국 기독교입니다. 전쟁의 참혹함과 폭력성 그리고 여전한 사회적 불평등 문제는 근대화의 상징인 과학과 이념을 거부하고 절대적 확실성에 대해 갈망하게 합니다. 지난 1화에서도 짚었듯 이런 상황에서 종교가 공적 영역에 더 중심된 역할을 하기 바라는 염원이 바로 근본주의입니다.
근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 한 가지 더 알아야 할 개념이자 흐름이 있습니다. 바로 '세속주의'입니다. 세속주의란 근대화를 거치며 다수 국가에서 일어났던 정교(政敎) 분리의 움직임입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는 헌법 1조에 '라이시테'(Laïcité)로 명시할 만큼 정치와 종교를 중요하게 분리하는 나라입니다. 근대화와 함께 변방으로 내몰리듯 보이던 종교가 근본주의라는 이름으로 다시 소환된 데에는 근대성에 대한 실망과 함께 세속주의 정부가 종교를 없애려 한다는 공포 어린 확신이 있습니다.
종교를 막론하고 근본주의 자체는 폭력적 현상이 아닙니다. 전체가 아닌 일부의 움직임일뿐더러 처음부터 모두 투쟁의 형태를 띠지도 않습니다.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내부적 신앙 운동으로 출발하다가 이차적 단계에서 외부의 적을 대상으로 삼죠. 대체로 자신들만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먼저 주의를 기울이고, 그다음 단계에서 더 넓은 사회를 개종시키고자 하는 '반격'의 형태를 띱니다. 동기가 되는 것은 앞서 언급한 두 가지입니다. 종교적 이상의 재구현과 이대로라면 현대 사회에서 자신들의 신앙이 파괴되리라는 공포죠.
종교가 공적 영역에 중심 역할을 하길 바란다는 것은 곧 종교가 사회를 움직이는 중심 가치 노릇을 하길 원하는 움직임입니다. 이슬람 근본주의는 삶의 모든 원리를 쿠란과 하디스로 대표되는 알라의 가르침대로 운영해야 한다는 사상이죠. 사회나 법은 물론 개인의 사생활이나 사고방식까지도요. 여기까지는 이슬람 사회의 기본 가치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는 1400여년 전에 정립된 이슬람 교리를 정말 깐깐하게 해석 적용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슬람 사회가 이슬람의 가치를 사회 중심에 두는 것은 보편하지만, 실제로 샤리아법 적용은 현대에 맞게 유동성이 존재하며 탈레반 정부와 같이 공포스럽지 않습니다. 세간의 오해처럼 서구적 가치에 대해 부정적이지도 않죠.
9·11 이후 서구 정치인들은 무슬림들이 '우리의 생활 방식, 민주주의, 자유, 성공'을 증오한다고 가정해왔다. 그러나 무슬림들에게 서구의 무엇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지 묻자 정치 성향이 급진적이든 온건하든 모두 이런 것들을 꼽았다. 서구의 기술, 서구의 근면한 직업윤리, 개개인의 책임감, 서구의 민주주의와 법치, 인권 존중, 언론의 자유, 양성 평등. — <신을 위한 변론>, 카렌 암스트롱, 457쪽.
20세기의 많은 무슬림 지식인들 역시 서구적 가치를 깊이 인정했습니다. 이집트의 그랜드 무프티(이슬람 율법 해석 최고 권위자)였던 무함마드 아부두(1849~1905)는 당시 영국의 지배를 증오하면서도 서구의 근대화된 경제를 다음과 같은 말로 칭송한 바 있습니다. 유럽의 근대화가 쿠란이 추구하는 정의와 평등을 잘 실현할 요건을 갖춘 것에 대한 부러움의 표시였죠.
파리에서는 이슬람은 보여도 무슬림은 보이지 않았는데, 이집트에서는 무슬림은 보여도 이슬람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슬람 근본주의의 눈에선 이 점이 문제가 됩니다. 안타까운 측면도 있는데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많은 이슬람 국가는 유럽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이는 2차 세계대전 전후까지 이어집니다. 이후 식민 통치에서 벗어나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지만, 국내 빈부 격차는 계속해서 커질 뿐이었죠. 독실한 무슬림의 눈으로 보면 이해되지 않는 광경인 겁니다. '알라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라는 이슬람의 가르침과 맞지 않으니까요. 쿠란은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라면 번성하리라 보장했는데, 실상 세속적인 서구의 벽에 발전이 가로막힌 거죠. 이슬람 공동체 움마(Ummah)의 정치적 위상이 위기에 처한 셈이죠.
이에 서구 문화의 유입을 통한 근대화와 세속화를 거부하고 이슬람법에 기초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하는 열광적 움직임이 바로 이슬람 근본주의입니다. 순수하고 이상적인 이슬람 사회를 다시 부흥시키자는 거죠. 그 대상은 바로 사도 무함마드가 이룩했던 과거의 이슬람 제국입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다수의 무슬림은 무함마드가 그의 네 후계자와 함께 북아프리카와 중동 지역 전체를 정복했던 과거 이슬람 제국을 가장 '완벽한' 국가 및 체제로 생각합니다. 이른바 '영광의 시대'인 셈이죠. 제국의 융성도 융성이지만, 알라의 계시와 율법에 따라 형성한 사회라는 점이 뜻깊죠. 오늘날 이슬람 근본주의가 널리 퍼져 큰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상이 실제 역사 속에 존재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려 하니 그때 그 율법을 똑같이 엄격히 적용하려는 겁니다. 순수한 '본래의 이슬람'으로 돌아가기 위해서 말이죠.
"프랑스혁명은 인권을 선언하고 자유, 평등, 박애를 부르짖었다. 러시아혁명은 계급 철폐와 사회 정의를 선포했다. 그러나 위대한 이슬람혁명은 이미 1300년 전에 이 모든 것들을 선언했다." — 하산 알 반나(이슬람 근본주의의 시초 '무슬림 형제단' 창립자)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서양이 발전한 이유 역시 이슬람의 뛰어난 점을 먼저 발견해 수용한 덕분이라고 봤습니다. 반대로 이슬람 국가들은 본래의 이슬람으로부터 멀어져 쇠락했다고 주장했죠. 따라서 본래의 이슬람으로 돌아간다면 이슬람 국가들이 다시금 찬란한 발전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설파합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시각에서 1930~40년대에 걸쳐 진행된 경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은 서구 문명이 무너지고 있다는 증거였습니다. 낡은 이슬람을 버리고 서구의 가치와 문화를 받아들여 발전을 이루고자 했던 아랍 민족주의자들과 달리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에게 서구 문화는 극복의 대상입니다. 발전의 해답은 이슬람의 뿌리에 있다고 여기죠.
따라서 이슬람 세계가 약화되어 유럽 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고 오늘날까지 서방에 뒤처져 있는 원인이 지나치게 서구화해 이슬람의 가르침에서 멀어진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직업도 없고 가난에 허덕이며 차별받는 빈곤층들은 이런 이슬람 근본주의에 쉽게 빠져듭니다. 현재의 암울한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다시 이슬람의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설득받죠. 이것이 바로 이슬람을 이념적 혹은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이슬람주의'입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선 세속주의 세력이나 외세에 대한 무력투쟁도 정당하다고 여깁니다. 이슬람 사회를 타락한 적이니까요.
이슬람 국가는 신앙 공동체인 움마가 확대돼 만들어졌습니다. 주권은 신에게 있죠. 그렇기에 신의 계시를 기록한 쿠란이 헌법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1400여년 전 쓰인 쿠란이 무함마드 사후 더 이상 변경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알라가 한 번 계시한 말씀은 영원불변하며, 2화에서 짚었듯 교리의 변질을 우려해 편집을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법학자들이 해석을 통해 겨우 유연성을 발휘하지만 이 역시 한계가 있고 권력자의 입맛에 따라 악용될 여지가 큽니다.
근본주의가 답을 구하는 방식은 환원주의입니다. 지독하게 전통을 따릅니다. 그러나 근대화와 세속주의의 공포에 사로잡힌 근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이 지켜야 할 전통을 되레 왜곡하게 됩니다. 전통의 근본주의적 해석을 공고히 하고자 교리를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우를 범하는 거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인용하는 공격적이고 호전적인 구절들은 극히 일부입니다. 쿠란의 다원성을 무시하고 평화와 관용, 용서의 가치를 설파하는 많은 구절과 맥락을 외면한 인용으로써 폭력을 정당화하죠.
예를 들어 많은 무슬림 사회에서 여성차별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정확히 표현하면 이슬람 교리가 보장하는 권리조차 여성들에게 주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배경과 맥락에 따라 이해하는 쿠란과 하디스에는 꽤 진보적으로 남녀평등을 언급하지만, 남성 중심으로 권력이 분배된 무슬림 사회에서 그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슬람 교리를 선별적으로 해석하고 적용해 온 폐단이 큽니다.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느니라. 즉, 가슴을 가리는 수건을 써서 남편과 그의 부모, 자기 부모, 자기 자식, 자기의 형제, 형제의 자식, 소유하고 있는 하녀, 성욕을 갖지 못하는 하인, 그리고 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이외의 자에게는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하니라. — 쿠란 24장 31절
신체를 가리는 이슬람 전통 복식인 히잡의 하나인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는 이유로 한 여성을 탈레반이 무자비하게 총살해 국제사회의 뜨거운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아랍어로 '가리다'를 가리키는 히잡은 보통 쿠란에서 비롯됐다고 주장되지만, 정작 쿠란에선 정숙한 옷차림을 권장할 뿐입니다. 히잡을 반드시 착용하라거나 신체 어느 부위를 반드시 가리라는 식의 언급이 없죠.
히잡은 본래 아라비아 사막의 뜨거운 열기를 견디기 위해 필요한 물품이었습니다. 마땅히 냉방기구가 없던 때에 두건과 망토 등으로 몸을 가리는 일은 필수였죠. 이는 역시나 뜨거운 지중해성 기후를 이겨내야 했던 그리스 정교회나 로마 가톨릭교에도 남아있는 풍습입니다.
히잡 착용에 목숨을 잃을 만큼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 국가가 들어서고 이에 영향을 받은 탈레반이나 IS가 요구하면서부터입니다. 대다수 국가에선 이미 이러한 극단적 근본주의에서 벗어났지만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은 이를 고수하고 있죠. 두 조직 사이에서도 히잡으로 인정하는 형태가 다를 만큼 원칙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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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신을 위한 변론>,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준형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016.
<신의 전쟁>,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교양인, 2021.
<이슬람>, 카렌 암스트롱 지음, 장병옥 옮김, 을유문화사, 2012.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서정민 지음, 시공사, 2015.
<중동은 왜 싸우는가?>, 박정욱 지음, 지식프레임, 2018.
<지도로 읽는다 세계 5대 종교 역사도감>, 라이프사이언스 지음, 노경아 옮김,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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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다섯 가지 오해와 편견들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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