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지도 한 달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또 다른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카불 공항이 폭탄 테러에 휩싸이는 일도 있었는데요. 여전한 아프간 사회의 불안과 국제 사회의 눈총 속에서도 탈레반은 기어이 과도정부를 구성해 발표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탈레반 정부에 대한 제재나 인정과는 별개로 이젠 그들을 국제 사회 안에서 사고해야 하는 현실적 필요를 맞닥뜨리고 있는데요. 똑똑 리포트 <키워드로 읽는 이슬람> 마지막 화에서는 오늘날 탈레반이 장악한 아프간 정세를 이해하는 데 도움 될 이야기를 정리했습니다.
지난달 26일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또 한 번의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극단주의 무장단체 IS가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공항에 폭탄 테러를 저지른 건데요. 테러로 인한 사망자와 부상자 수는 각각 170명과 1300명. 희생자에는 미군, 탈레반, 아프간인이 모두 포함돼 있습니다. 테러를 저지른 IS-호라산(IS-K) 역시 "미군과 미국에 협력한 아프간인을 표적으로 한 것"이라고 밝혔죠.
이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18~19일 아프가니스탄 잘랄라바드에서 발생한 폭탄 테러 역시 IS-K는 자신들이 배후임을 밝혔습니다. 이 테러로 숨진 탈레반 전사는 십수명에 달하죠.
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습니다. 탈레반이나 IS나 우리 눈에는 똑같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로 보이는데 말이죠. 물론 탈레반과 IS는 순수한 이슬람 사회를 만들자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공유합니다. 이를 위해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고 쿠란을 선별적으로 해석한다는 점 역시 동일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신성한 전쟁'이라는 뜻의 지하드입니다.
본디 지하드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큰 지하드'는 알라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개인적 투쟁을 가리킵니다. 성전(聖戰)을 가리키는 '작은 지하드' 역시 조건적인 방어의 성격이 강하죠. 외부의 침입과 탄압으로부터 맞서 이슬람을 지키기 위한 전쟁입니다. 여기에는 이슬람 초기 무함마드가 메카를 떠나 메디나로 이주했어야 할 만큼 지독했던 종교적 박해나 이후 십자군전쟁과 같은 역사적 배경이 존재합니다. 또한 성전일지라도 민간인에 대한 살상이나 자살 테러 등은 모두 이슬람 교리에서 금지하는 행위입니다. 창조물인 인간의 목숨을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창조주 알라뿐이기 때문입니다.
이 테러리스트들은 쿠란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기에 그들의 경전 해석을 두고 토론한다든가 그들의 범죄를 두고 '이슬람'에 책임을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 카렌 암스트롱, <신의 전쟁>, 593쪽.
그러나 탈레반, IS와 같은 극단주의 무장단체들은 이와 같은 교리를 자신들의 목적에 따라 해석하고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목적'에서 집단 사이 차이가 존재합니다. 차이는 극단주의나 폭력의 강도로 나타나죠.
IS는 이슬람 무장단체 내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세력으로 꼽힙니다. 이유는 IS의 궁극적인 목적이 모든 무슬림을 규합하고 세계의 중심에 이슬람 국가를 세우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탈레반의 목적은 아프간에 과거 이슬람 이상세계를 복원하는 데까지입니다. IS의 야욕이 전 세계에 미친다면 탈레반의 관심은 비교적 자국에 국한하죠.
IS의 눈에 탈레반이 '순수한 이슬람'이 아닌 배신자 또는 변절자로 비치는 이유입니다. 지난 2020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와 평화 협정을 맺고 미군 철수를 이끌어낸 것부터 오늘날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협상에 나서는 모습 모두 배신 행위이자 지하드를 버린 이단 행위라는 거죠.
가뜩이나 국정 운영 능력이 부족하고 자금난에 시달리는 탈레반은 IS와의 내전까지 감당해야 하는 삼중고를 겪고 있습니다. 그나마 IS는 미국이나 서구 유럽, 정교 분리의 세속주의 국가들에도 적대적이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공통의 안보 위협인 셈입니다.
탈레반과 IS, 그리고 IS의 모태라 할 수 있는 알카에다의 등장은 그리 오랜 일이 아닙니다. 모두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이후 내전 기간 동안 생겨났습니다. 당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걸까요?
아프가니스탄은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고 있으며 과거에는 중국과 서양을 오가는 실크로드 중 하나이기도 했죠. 이 때문에 아프가니스탄은 근현대에 들어 서구 열강들의 침탈 대상이 되었는데요. 1960년대에는 소련이 인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을 공산화하며 아프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힘입어 1978년 공산당 세력이 쿠데타를 통해 아프가니스탄 정권을 잡는 일이 발생합니다.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거의 모든 지역에서 이슬람 세력의 반란이 일어나죠. 당시 공산당 정부가 시행한 여성 참정권 및 직업 선택의 자유 보장, 여성 강제 결혼 철폐 및 부르카 미착용 허용과 같은 사회개혁이 무슬림의 반발을 샀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전통을 어지럽히는 침략 행위로 본 거죠.
궁지에 몰린 친소련 공산당 정부는 소련에 도움을 요청합니다. 소련은 1979년 12월 아프가니스탄에 대규모 병력을 파견하죠. 이에 무슬림들은 지하드를 선포하고 대대적인 전쟁에 돌입합니다. 기나긴 전쟁이 시작되고 수많은 젊은이가 스스로 '무자헤딘'(지하드를 수행하는 전사)을 자청하며 아프가니스탄에 모여듭니다. 끈질긴 게릴라전 끝에 소련은 결국 1989년 2월 철군하기에 이르는데요. 이후에도 혼란은 계속돼 아프간 정부군과 이슬람 반군의 내전이 이어지죠.
소련과의 전쟁과 이후 내전을 통해 생겨난 것이 바로 탈레반과 알카에다 그리고 IS입니다. 지난 화에서 탈레반은 1994년 공식 조직됐으며 그들은 이슬람 근본주의를 배운 '학생들'이란 뜻을 지녔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 근본주의를 배운 이유가 바로 당시 소련군과 공산주의에 대항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길러진 탈레반 전사들은 내전을 종식하고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게 되죠.
2001년 9·11 테러로 악명을 떨친 알카에다 역시 소련과의 전쟁 과정에서 생겨났습니다. 당시 수장 오사마 빈 라덴은 소련과의 전쟁에서 무자헤딘을 지원했던 인물입니다. 주로 후방 지원을 맡던 그는 1986년경부터 전장에 나섰고, 이후 이슬람 전사를 양성하는 훈련캠프를 만들어냅니다. 이것이 후에 알카에다로 발전하죠. 알카에다는 탈레반과 탈레반 정권을 지원하며 밀월관계를 형성했고, 알카에다의 야욕은 세계로 향합니다.
IS는 알카에다에서 파생한 조직입니다. 모태는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응하고자 만들어진 '알카에다 이라크 지부'(AQI)죠. 이슬람 제국의 통치를 꿈꾸는 '칼리프' 국가를 세우고자 한다는 점에서 알카에다와 이상을 공유하지만, IS의 행보는 더욱 급진적입니다. 극단주의 단체를 병합해 칼리프 정권을 자처하는 한편, 미국이나 서방 세계뿐 아니라 자신들의 뜻에 동의하지 않는 무슬림에게도 서슴없이 총구를 겨눕니다.
아프가니스탄이 원래 폐쇄적인 종교성을 발휘하는 국가는 아니었습니다. 탈레반의 재집권 이전인 2000년대가 아니라 1970년대 이전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1964년에는 헌법에 남녀평등을 명시하고 여성의 투표권과 참정권까지 보장했죠. 미니스커트를 입을 정도로 자유로이 거리를 활보하는 아프간 여성들의 모습도 1970년대의 풍경입니다. 수도 카불은 '중앙아시아의 파리'로 불릴 정도였죠.
그러나 그런 아프가니스탄에서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출현할 정도로 이슬람이 변질된 것은 전쟁 때문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기존 사회를 변질시키는 소련 공산주의의 침투는 외부 세력의 침공에 대항하는 지하드를 발동시키기에 충분했죠. 전시 상황 및 이후 복구 과정에서 이슬람은 개방성과 근대성을 잃고 폐쇄적이며 배타적인 모습을 띨 수밖에 없었고요.
또한 이때 소련에 대항하는 아프가니스탄 전사들을 아낌없이 후원한 것이 바로 미국입니다. 소련과 공산주의 진영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고자 무기며 교육 비용까지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죠. 그 결과 미국의 바람대로 소련이 패퇴하긴 했으나, 소련이 물러간 자리엔 미국의 세금을 먹고 자란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가 자라났습니다.
그럼 이제 '2.0 버전'으로 돌아온 탈레반 체제 아프가니스탄을 둘러싼 국제 지형도를 돌아볼까요.
탈레반의 과제는 국제 사회의 인정입니다.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그동안과 다른 포용적인 정부를 구성할 것이라 얘기하고 있죠. 실제로 과거 일방적 성명만 노출했던 것과 달리 영어를 구사하는 대변인을 내세워 유화 발언을 내놓고 있는데요. 그러나 아프간 내부는 물론 국제 사회에서도 신뢰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지난 7일 탈레반은 향후 6개월 동안의 과도정부 구성을 공개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내각 명단 33명 전원이 친 탈레반 강경파 남성입니다. 포용은 허울에 불과했던 거죠. 공식 내각에선 여성 및 전 정부 관료를 포함하리라는 일부 의견이 있지만, 역시 신뢰하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현재 탈레반 체제가 국제 사회의 인정을 받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재정 문제 때문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이전에도 국가 예산의 3분의 2를 국제 원조로 충당해 온 가난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탈레반 집권 이후 미국의 자금 동결 조치를 비롯해 서구의 지원 중단을 맞은 상태죠. 얼마 전 국제 사회로부터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지원을 받기로 했지만, 여전히 목이 마릅니다.
중국은 탈레반 정부에 우호적인 대표적인 나라입니다. 어찌 됐건 미군이 철수한 영향력을 선점하고 싶어 하는데요. 여기에는 경제 및 안보라는 두 가지 셈법이 존재합니다. 먼저 아프가니스탄은 그 위치상 중국을 중심으로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실크로드 사업인 '일대일로' 프로젝트 구현에 빼놓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아프가니스탄에는 반도체나 첨단산업에 사용되는 희토류가 풍부하게 매장돼 있습니다. 이를 기술 경쟁에 활용할 수 있다면 중국몽(中國夢)에도 가까워집니다. 그렇기에 탈레반이 과도정부 구성을 발표하자마자 물자 지원의 뜻을 밝혔죠. 미국의 자금 동결에 대해서도 부당한 처사라며 스피커 노릇을 해줬고요.
안보 문제도 있습니다. 중국은 매우 일부지만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습니다. 게다가 대부분 이슬람교를 믿고 있는 신장 지역 위구르족을 탄압해 온 터라 탈레반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죠. 반중국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이 탈레반 체제 아프가니스탄과 결탁하는 일만은 피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손은 내밀되 테러 세력과 단절하길 요구하는 이중 자세를 취하고 있고요.
미국은 딜레마에 빠졌습니다. 약 20년에 걸친 인명, 재정 피해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손을 떼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 너무 빨리 탈레반이 들어섰고, 이로 인해 자행되는 각종 인권 유린 사태는 국제 사회의 리더로서 미국의 이미지를 깎아 먹었습니다. 첨단 무기까지 남겨두며 유라시아 지역 헤게모니에서 이탈한 미국의 속내가 IS 견제이든 중국 견제이든, 현재로선 바이든 정부의 오점으로 작용하고 있는데요.
약 70억달러에 달하는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 자산을 동결하고 경제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탈레반 정부를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노릇입니다. 탈레반보다 더 막 나가는 무장집단 IS 때문입니다. 카불 공항에서 실제로 미군을 노린 IS를 감시하려면 탈레반의 협조를 통한 아프가니스탄 내 인프라 구성이 불가결합니다. 그렇기에 미국 측은 탈레반 정부와 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인권 존중과 함께 테러 근절에 대한 의지를 요구하는 겁니다.
이번에 들어선 탈레반 정권은 과거 유래를 찾기 힘든 기묘한 문제적 정부입니다. 인권 유린 행태는 여전하고 과연 다른 테러 집단과 유기적 관계를 끊어낼지 역시 불분명하지만, 앞으로 국제 정세를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조각이 된 점은 분명합니다. 이번 사태로 발생한 수많은 아프간 난민에 대한 처우 문제 역시 나라를 불문하고 난항을 겪고 있는 상태인데요. 종교와 현대사의 어둠을 먹고 자란 탈레반 2.0은 존재 자체로 세계 각국에 물음과 과제를 던지고 있습니다.
도서
<신의 전쟁>, 카렌 암스트롱 지음, 정영목 옮김, 교양인, 2021.
<이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서정민 지음, 시공사, 2015.
<중동은 왜 싸우는가?>, 박정욱 지음, 지식프레임,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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