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 육식이 파괴한 행성에서 바로 먹기

의(衣)와 식(喰)의 저주: 인간의 생활은 어떻게 지구를 오염시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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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2021
이재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고기는 고기서 고기다'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 '치느님'과 같은 말들이 보여주듯, 육식은 우리에게 너무나 평범한 생활의 일부가 돼버렸어요. 하지만 누구나 고기를 저렴하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은 20세기 중후반에 걸친 공장식 축산의 발전 덕이었죠. 한국에서 삼겹살과 치킨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도 몇십년도 되지 않은 일이고요. 육식은 막대한 온실가스를 일으키고 토양와 수질을 오염시킨다고 하는데,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오염이 발생할까요? 우리가 고기를 포기할 수 없다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육의 평범성

육식이 문화가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삼겹살은 저렴한 옥수수 사료와 휴대용 가스버너 개발에 힘입어 1980년대에 대중화됐다. 치킨의 경우 1970년대 초반 재래시장에서 '통닭' 형태로 등장했고, 1980년대 프라이드와 양념치킨을 도입한 페리카나, 멕시카나 치킨 주도로 시장이 커졌다. 오늘날, 육식은 하나의 문화 코드가 됐다. 대중문화 속에서 '함께 고기를 먹는 경험'은 흔히 접할 수 있는 요소가 된 것.

육식과 공장식 축산업에 대한 비판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간의 욕구 충족을 위해 동물이 태어나서 도축되는 모든 과정을 경제적 효율성의 칼로 다듬는 과정이 진행됐다. 이에 많은 이들이 윤리적 문제를 제기했다. 좁디좁은 공간에서 짧은 평생을 보내는 동물들의 고통과 복지에 대한 지적, 성장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양계장 내에 온종일 전구를 켜놓는다는 얘기, 위생 관리가 소홀하고 더러운 환경에서 쉽게 병에 걸리는 동물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투입되는 항생제 등에 대한 얘기가 이젠 낯설지 않다.

공장식 축산의 비인도적 사육 방식은 언론 보도나 다큐멘터리를 통해 대중화됐지만, 그렇다고 육식이 쇠퇴하고 채식이 왕좌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고기를 먹는 일이 너무나 당연하고 습관이 돼 그 어떤 비판도 쉽사리 마음에 와닿지 않는 이 현상을 어찌 설명해야 할까.

채식을 주로 하는 이를 채식주의자라고 하고, 모든 종류의 동물을 먹지 않는 이를 비건이라고 한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어떨까? 한국어 표현으로는 '육식인'이나 '육식자'라는 표현 자체가 어색하다. 고기를 먹는 행위는 너무나 당연해서, 다른 범주와 구분할 필요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잡식동물에게 육식은 선택임에도 필수적으로 여겨지는 현상을 미국의 심리학자 멜라니 조이는 '육식주의'로 설명한다.

육식주의는 특정 동물들을 먹는 일이 윤리적이며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신념체계다. ... 육식주의자는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선택에 따라 고기를 먹는데, 선택은 항상 신념에서 비롯된다. — 도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36~7쪽.

"선택은 신념에서 비롯된다"는 말은 육식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거나 정당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영향도 무시할 정도라는 '습관적 믿음'으로 볼 수 있다. 플라스틱이나 전자제품을 쓰고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의류를 입는 이가 글로벌 공급망이 만들어내는 환경 파괴에 무지한 것처럼, 저녁 회식에 '소고기!'를 외치는 회사원 역시 '평범함이 얼마나 악할 수 있는지' 묻지 않는다. 그런데, 만약 육식이 동물에게만 몹쓸 짓이 아니라 지구를 오염시켜 다음 세대의 삶을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라면 어떨까?

축산업, 지구를 위협하다

'평범한' 육식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고 삼림을 파괴하며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배설물로 토양과 수질을 오염시킨다. 기후변화 자료를 시각화하는 카본브리프(CarbonBrief)에 의하면 음식 생산에서 나오는 온실가스는 전 세계 배출량 중 약 4분의 1에 해당하며, 사용 가능한 토지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축산을 포함해 농업용으로 쓰이는 물은 전체의 70%로, 산업용(19%)이나 가정(11%)에서 쓰이는 물의 양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고기와 유제품은 전체 온실가스 중 14.5%를 생산한다. 산업화 이전 대비 온도 상승을 2도 이내 수준으로 유지하려면 인류의 식생활이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각 식품군이 발생시키는 온실가스를 비교해보면 음식 1kg당 배출량이 소(육우)의 경우 60kgCO2, 양고기 24kgCO2, 치즈 21kgCO2, 소(우유소) 21kgCO2, 돼지고기 7kgCO2, 닭고기 6kgCO2 등이다. 왜 육우의 배출량이 월등히 높을까? 소와 염소는 되새김질하는 반추동물인데, 소화 과정에서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배출한다. 그래서 돼지나 닭과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현저하게 차이 난다.

대기에 가장 많이 퍼진 온실가스는 순서대로 이산화탄소, 메탄, 이산화질소다. 축산업 중 특히 소를 키울 때 메탄과 이산화질소가 발생한다. 메탄은 가축의 트림과 배설물에서 나오는데, 세계 메탄 배출의 37%가 축산업에서 나오고 메탄은 이산화탄소보다 23배 더 온실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이산화질소는 가축의 배설물이나 작물 재배에 이용되는 비료에서 나온다. 이산화질소 배출의 65%가 축산업이며 이산화탄소보다 300배 더 온실효과에 영향을 미친다.

아마존에서 생산된 곡물을 먹고 자란 소고기를 먹는 일은 석탄 발전소에 빗대볼 수 있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 중 가장 최악의 일이다. — 월터 윌렛 하버드 대학 교수

전 세계의 고기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선 목장을 넓히고 사료를 재배할 농경지를 마련해야 한다. 아마존을 포함한 다수의 열대 지역에선 소떼를 기를 목장을 만들기 위한 무분별한 삼림 벌채가 일어나고 있다. 삼림은 인간이 생산한 온실가스의 30%를 흡수하는데, 목장을 짓기 위한 벌채는 한편 이러한 '탄소 흡수' 역량을 축소할 뿐만 아니라 소떼가 배출하는 가스로 추가적인 온실효과를 일으킨다.

돼지 1만 마리가 수용된 큰 축사 서너 곳을 관리하는 농부의 골칫거리를 상상해보라. 축사에 갇힌 돼지들은 배설물을 엄청나게 쏟아낸다. 돼지 1만 마리에서 나오는 배설물이 작은 도시 하나에서 나오는 배설물만큼 많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가 있다. — 도서 <육식의 딜레마>, 케이티 키퍼, 73쪽.

마지막으론 가축 분뇨의 문제가 있다. 배설물은 하수로 들어가거나 토양에 거름으로 쓰는데,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킨다. 분뇨에서 발생한 암모니아 등의 가스로 인해 축산 종사자가 질식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모두 고기를 끊을 수 없다면

온실효과를 일으키고, 숲을 태우며, 수질과 토양을 오염시키는 축산업은 그러나 앞으로도 계속 성장할 전망이다. 육류 소비가 계속 증가해 2030년에는 정점을 찍는다는 '피크 미트(Peak Meat)'라는 용어도 있다. 과학자들은 고기 소비 증가가 환경의 대재난과 '기후 비상사태'를 초래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어떤 대안들이 나오고 있을까.

국내 채식 시장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한국 채식협회에 따르면 2008년 15만명이었던 채식 인구는 2018년 100~150만명까지 늘었다. 이젠 마트에서 식물성 고기나 '채식 도시락' '비건 라면' 등 비건 식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채식 식당이나 비건 빵집도 늘고 있고, 밀레니얼 세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서울시 교육청은 급식에 채식을 원하는 학생들을 위한 '채식 선택제'를 도입해 '채식 선택권'을 보장할 계획을 밝혔다.

그러나 채식에 관심을 가진 사람이 느는 것과, 고기를 끊거나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채식주의자의 60%가 지난 24시간 내에 고기를 먹었음을 인정했다는 통계도 있다.* 고기를 끊기 어려운 이유는, 불에 구워 갈변하면서 특유의 향을 내며 감칠맛을 내게 되는 '마이야르 반응'과 관계가 있다. 풍부한 향내, 육즙, 지방, 감칠맛이 함께 작용하는 스테이크의 맛은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인간이 감칠맛에 끌리는 것은, 유전자와 관계있을 가능성이 높다. 감칠맛 수용체 유전자가 기능하지 않은 자이언트 판다의 경우, 육식동물과 유사하게 장의 길이가 짧은데도 식단의 99%가 대나무다. 고기에 관심이 없는 것이 영양보다 '맛' 때문이라는 거다.

이런 고기의 맛은 자연적이라기보다 '기획'된 것에 가깝다. 풀을 뜯으며 자란 소의 고기가 맛이 좋지 않아 옥수수 사료를 주고, 수컷 돼지는 고기에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는 이유로 거세하며, 저품질의 고기의 맛을 향상시키기 위해 화학 용액을 주입하기도 한다. 환경을 적게 오염시키는 방식으로 고기를 '기획'할 순 없을까?

다른 재료나 생산공정으로 만든 '고기'를 대체육이라 한다. 대체육은 식물성 고기와 배양육으로 나뉘는데, 양 분야에서 기술 혁신을 통해 고기의 맛을 재현하려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한 전망에 따르면, 2030년까지 대체육은 육류 시장의 18%, 배양육은 10% 점유할 것으로, 2040년까지는 대체육이 25%, 배양육이 35% 차지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식물성 고기의 경우, 콩·쌀가루·비트 등을 이용해 익히지 않은 상태의 색깔, 고기 굽는 냄새, 육즙의 색, 식감 등을 실제 고기와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이어진다. 채식주의자가 아닌 고기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고기 대신 '유사 육식경험'을 제공하려는 것이다. 이제 마트에선 식물성 고기 패티 제품을 찾아볼 수 있게 됐고 롯데리아나 버거킹과 같은 유명 햄버거 체인도 채식 패티를 이용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 맛도 잡고 환경오염도 줄일 수 있을까?

현재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소고기와 대표적인 식물성 대체육(비욘드 버거, 임파서블 버거)의 탄소 발자국을 비교했을 때 비율은 거의 20:1로 대체육이 월등히 낮다. 대체육의 대승이다. 그러나 건강의 관점에서는 식물성 고기에 포화지방과 염분이 다량 포함돼 있기 때문에 소고기보다 낫다고 단정하기 힘들다.

한편 배양육은 동물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영양을 공급하는 배양액에 담가 생물반응기에서 길러내 만든다. 실험실이 '고기 농장'이 되는 셈이다. 실제 동물을 기를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와 배설물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포를 배양하는 데 드는 비용과 시간 단축의 과제가 있다. 또 세포 증식을 위해 사용되는 혈청이 소 태아에서 채취되기 때문에 윤리적인 문제 소지가 있다.

자체 기술 개발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국내 스타트업이 있다. 씨위드(Seawith)의 이희재 대표는 똑똑과의 인터뷰에서 '바다와 함께한다'는 씨위드의 사명처럼 "저희는 해조류(Seaweed)를 비용 절감과 시간 단축 방법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한다. 그는 배양육 가격 문제의 핵심인 1리터당 10만원이 넘는 소태아 혈청을 해조류 배양액으로 대체하는 자체 개발 기술을 내세웠다.

추출된 줄기세포 성장의 형태를 잡아주는 지지체는, 말하자면 '집' 역할을 한다. 이 대표는 "미역, 다시마와 같은 갈조류는 세포의 '집'으로 사용하고, 스피루리나 등의 미세조류는 세포의 '밥'인 배양액으로" 사용한다고 밝혔다. '해조류를 사용해 만든 고기'를 생산한다는 얘기다. 해조류는 바다라는 상대적으로 제약이 없는 환경에서 자라 에너지 효율이 높다. 이 대표는 "미세조류는 많이 키울수록 이산화탄소를 소모하며 산소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지구 온난화를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고기의 미래'는 탄소 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대체육과 배양육의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류세라는 설국열차에 탑승해 그린뉴딜이라는 다음 정거장으로의 질주를 시작한 인류에겐 생활 전반에 쓰이는 모든 물건의 '발자국'을 면밀히 살펴야 하는 과제가 남았다. 플라스틱, 쇠, 옷, 그리고 고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생활에 너무나 자연스레 자리 잡은 글로벌 공급망의 '검은 실'들을 가치의 연결고리로 바꾸기 위해서는 파란 티셔츠에서 개도국 농부의 얼굴을 보고, 갈색 스테이크에서 뜨거워지는 지구를 느낄 수 있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다음 정거장이 절멸일지, 변혁일지를 결정할 힘은 시민에게 있다.

💡 다음엔 '인공지능과 포스트 휴먼'을 주제로 한 세 번째 리포트로 이어집니다.

*도서 <고기를 끊지 못하는 사람들>, 마르타 자라스카, 2018, 125쪽.

똑똑! 📕 추천해요

도서 <우리는 왜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을까>, 멜라니 조이 지음, 노순옥 옮김, 모멘토, 2011.

왜 우린 육식에 관한 뉴스와 다큐멘터리를 그렇게 접하고도 금요일 저녁에 '고기!'를 외치게 되는 걸까요? 저자 멜라니 조이는 '육식주의'(Carnism)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왜 특정 동물의 고기를 먹는 일이 정당화 됐는지'를 파헤칩니다.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육식은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먹는 일이 꼭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 것에는 심리적 기제가 있다는 것이죠. 저자는 왜 애완동물과는 달리 돼지나 소에게는 연민이 작동하지 않는지, 개체에 이름을 붙이는 강아지와는 달리 돼지나 소는 하나의 추상적인 범주로만 생각하게 되는지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을 동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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