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마치 SF영화의 한 장면에서 눈을 뜬 느낌이었다. 감염병, 가짜뉴스와 음모론, 추적되고 공개되는 사생활과 무신경한 일부 시민의 반응, 마스크를 둘러싼 정치학, 백신 개발과 경매를 떠올리게 하는 속도전. 다들 삶의 모든 영역이 뒤바뀌었다며 새로운 말을 만들어냈고 하루에도 몇번이고 '언택트'와 '뉴노멀'이 귀에 들렸다. 확진자 수를 날씨처럼 확인하고 방역지침에 따라 휴가계획이 변동되던 일상이 이어졌다.
한 번쯤 정리해볼 일이다. 이 꿈은 무엇인지. 마스크에 갇혀, 줌 스크린에 박혀 일하던 시간은 삶이었는지. 달고나 커피를 만들고 거울에 비친 '확 찐' 몸을 보며 한숨 쉬다가도 넷플릭스와 영화를 찾아 마우스를 휘젔던 시간동안 세상은 어떻게 변했는지.
인간은 몸을 가진 존재다. 악수가 사라지고 마스크로 표정을 찾아볼 수 없는 얼굴을 마주하더라도 마음을 뻗어 닿으려는 욕망은 남아있다. 손을 뻗어 만지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이 닿아있고, 그래서 따뜻했던 시간의 흔적의 기록들을 읽어본다. 언젠가는 이 터널의 끝에 비추는 빛에 닿아 몸과 마음을 데우리라.
코로나가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 시간 1년 남짓. 세계는 바이러스에 휩싸였고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잘못된 판단과 가짜가 흔해진 세상. 거리두기 속 우리의 모습은 어땠을까. 그래도 영웅들이 있어 외롭지는 않았다.
삶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물음을 던지기란 쉽지 않다. '생존'이 행동과 사고의 유일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마스크는 쓰면 그만이고, 백신은 맞으면 그만이고, 코로나는 지나가면 그만일까. 살아남느라 생각해보기 힘들었던 바깥의 보건 이야기를 담았다.
먹고 사는 문제는 2번째 문제인줄 알았다. 바이러스와 싸움에 있어 경제의 희생이 필수적이라면 우리는 기꺼이 내어줄 준비가 되어있었다. 하지만, 막상 경험하고 나니 아니었다. 경기 침체는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협만큼이나 큰 위협이 되었다. 누군가는 직업을 잃었고, 누군가는 집을 잃었다. 이들의 눈물은 바이러스 감염자의 눈물 만큼이나 뜨거웠고 서러웠다. 코로나 리포트 3주차는 이런이들의 눈물을 담았다. 쉽게 지나치지 않았으면 하는 이야기다.
팬데믹, '뉴노멀', '언택트'와 같은 용어가 유행했다. 전문가들은 마치 도망치는 토끼를 잡으려 뛰어가는 사냥꾼처럼 급속도로 바뀌는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신조어를 만들어내는데 바빴다. 그러나 일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조용히 삶을 살아낼 뿐이었다. 일부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은 반면 재난 상황에 꼭 필요한 사람들이라며 새로운 이름도 받은 필수노동자들의 삶은 어떻게 변했을까. 거대 담론이 통계를 뽑고 일반화하기 바쁠 때 그림자 속에서 사라져 갔던 것들은 없었을까. 1년을 살아내며 시민들은 어떻게 함께 손잡고 연대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