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이 명나라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여 왕권을 안정시키고자 추진한 외교 정책.
태종과 세종이 왕위에 있었던 조선 초기, 당시 조선보다 앞서는 명의 경제와 문화 문물을 받아들여 정치적 토대를 마련하는 게 목적이었다. 사신을 명에 보내 조공을 바치는 '조공', 내정 간섭 없이 중국 황제에게 한 나라의 왕위 지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절차인 '책봉' 두 축으로 이뤄졌다. 조공은 선진 문물을 들이는 통로가 됐고, 책봉은 국내 정치를 안정시키는 데 도움을 줬다.
외교를 통해 실리를 챙기려는 생각이 깔렸다. 명에게 예속된 관계가 아니라 독립성을 인정받고 나라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무엇보다 건국 초기라 외세와 전쟁이 일어난다면 멸망까지 이를 수 있다는 위기의식도 한몫했다.
친명배금, 즉 명과 친하게 지내고 금나라를 배척하는 정책이라 균형을 잡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다. 금나라는 중국을 장악한 뒤 청으로 국호를 바꾼 후 조선을 침략하는 병자호란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