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까지의 회차에서 메타버스가 무엇을 가리키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미래지향적 관점에서 살펴봤습니다. 이른바 '메타버스 희망'편이었다면, 앞으로 3화는 '메타버스 현실'편입니다. 메타버스적 개념이나 요소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되고 있으며 현재 그 수준은 어떠한지, 과제나 문제점은 없는지 짚어볼 텐데요. 이번 화에서는 메타버스의 사례로 가장 대중적으로 언급되는 콘텐츠 및 플랫폼 분야를 조명합니다.
'로블록스' '제페토' '포트나이트' '마인크래프트' '모여봐요 동물의 숲'(이하 동물의 숲). 메타버스를 주제로 화제의 중심에 올라 있는 콘텐츠들입니다. 이들은 쉽게 말해 게임입니다. 그렇다면 왜 게임이 메타버스의 무대로 주목받고 있을까요?
답은 게임과 메타버스 둘 다 가상세계를 형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똑똑 리포트 1화에서 현재 메타버스는 4가지 유형으로 설명된다고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증강현실(AR), 라이프로깅(Life-logging), 거울세계(Mirror Worlds) 그리고 가상세계(VR)입니다.
이 중에서 개념적으로 메타버스의 핵심이 되는 것은 가상세계입니다. 같은 회차에서 짚은 메타버스의 의미 역시 현실과 상호작용하거나 현실적 기능을 영위할 수 있는 가상세계로 정리한 바 있죠. 요컨대 메타버스는 플랫폼입니다. 메타버스의 과제 역시 현실을 대체할 만한 고도의 플랫폼을 만드는 일이죠. 살펴봤던 나머지 유형들 역시 결국 이를 보조하는 개념 또는 기술들입니다.
메타버스의 핵심 과제가 플랫폼의 구현이라면, 현실을 벗어난 가상세계의 몰입을 추구하는 게임과는 그야말로 교집합을 그립니다. 목표나 구현 요소 등에서 그렇죠. 디지털 세계라는 기술 영역도 공유하고요. 게다가 메타버스가 추구하는 현실적 기능은 대부분 상호작용과 2차 콘텐츠 생산으로 귀결됩니다. 유저간 소통이 용이하고 아이템이나 맵, 콘텐츠 등 2차 콘텐츠 생산이 용이한 게임이 메타버스의 장으로 유력한 이유입니다.
메타버스는 게임과 같은 플랫폼 서비스와 결합해 발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임이 현실과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의 경험을 제공하거나 게임 내 활동과 재화로 현실 경제를 대체하는 수준에 이른다면 말이죠.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위축된 대면활동 때문에 행사의 장으로써 가상세계를 주목하는 사회문화적 흐름이나, 기존 서비스 모델을 디지털로 전환하거나 결합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같은 비즈니스 트렌드도 힘을 실어줍니다.
실제로 오늘날 공연, 행사와 같은 적극적 교류가 가능하거나 게임 내 가상자산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플랫폼들이 메타버스로 불리고 있습니다. 수익모델이 존재하는 가상세계의 실현이라는 점에서 플랫폼 게임은 메타버스를 구현하는 직접적 동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게임과 메타버스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는 시각이 관측되기도 합니다. 지난 8월 로블록스가 한국 진출을 공식 선언하자 국회 입법조사처가 '메타버스 자체는 게임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내놓았습니다. 메타버스는 게임을 제공하는 플랫폼이지 그 자체로 게임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국내에서 게임을 관장하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은 게임 속 재화를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게임을 환금성, 사행성 게임으로 규제합니다. 로블록스는 게임 속 화폐 '로벅스'가 유저에게 가상화폐 수익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주목받습니다. 만약 로블록스가 게임으로 분류돼 게임산업법에 적용받는다면, '가상경제'로까지 거론되는 로블록스의 이 시스템은 검열될 가능성이 큽니다. 향후 메타버스와 게임의 법적 구분에 기준으로 자리 잡을 만한 중요한 판단이죠.
현재 메타버스의 가능성과 함께 주목받는 플랫폼 게임들이 각기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지 훑어봅니다.
메타버스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례로 얘기됩니다. 엄밀히 말해 로블록스는 게임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플레이하게 되는 게임은 유저가 직접 설계하고 판매하죠. 로블록스가 제공하는 것은 블록 콘셉트 세계관, 즉 플랫폼입니다.
유저가 업로드한 게임의 숫자는 지난 3월 기준 4000만개 이상입니다. 올해 1분기 기준 일일 활성 이용자 수는 약 4210만명이며, 총 이용자 수는 1억6400만명이 넘습니다. 이들이 로블록스에 머무른 시간은 97억 시간에 달합니다. 이용자는 대부분 10대이며, 특히 미국 어린이의 3분의 2 이상이 현실 친구를 만나는 시간보다 로블록스에 쏟는 시간이 많아 미국의 '초통령' 게임으로 불립니다.
로블록스가 메타버스를 가장 충실히 구현된 사례로 얘기되는 이유는 바로 환전 시스템 때문입니다. 지난 리포트에서 메타버스의 핵심 요소는 플랫폼 내부에서 돌아가는 가상경제라고 얘기한 바 있습니다. 로블록스에선 유저가 게임 및 아이템을 구매하면 이를 설계한 제작자에게 판매 수익의 일부를 돌려줍니다. 게다가 이를 현실화폐로 바꾸는 일도 가능합니다. 일정 금액 이상이면 자체 환전소를 이용해 현금으로 인출하고 계좌 입금시킬 수 있죠.
한국에는 제페토가 있습니다. 게임은 아닙니다. 3D 아바타를 기반으로 한 SNS 서비스입니다. 개성 있게 꾸민 나만의 아바타로 가상공간 이곳저곳을 누비거나 타인과 소통하는 것이 주요 콘텐츠죠. 역시 주 이용층은 10대입니다. 지난해 기준 2억명의 글로벌 가입자 중 80%를 미성년자가 차지합니다.
젊은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콘텐츠가 주를 이룹니다. 엔터테인먼트, 소셜 활동, 사용자 창작 콘텐츠(UGC) 등입니다. 지난해 YG,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로부터 120억원, JYP로부터 50억원의 투자를 받은 배경이기도 합니다. 글로벌 K팝스타 블랙핑크의 가상 팬 사인회와 아바타 공연은 각각 3000만, 4000만뷰를 넘게 찍었죠.
이러한 영향력 때문에 제페토에는 현실 기업들이 다수 입점해 있습니다. 구찌, 나이키, 디즈니 등이 매장을 열고 의상과 액세서리를 판매하는가 하면, 한강을 배경으로 한 맵엔 CU 제페토 한강공원점이 영업합니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도 제페토에 체험 공간을 마련했죠. 유저가 제품을 입거나 사용해보는 일도 가능합니다. 물론 그런다고 이들 기업에 실제 수익이 발생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 고객층으로 자라날 MZ세대에게 브랜드 각인효과를 심어주는 겁니다.
공연 사례로 유명합니다. 포트나이트는 배틀로얄식 슈팅 게임입니다. 총 들고 돌아다니며 싸우는 게 본 콘텐츠죠. 그런데 미국 유명 힙합 가수 트래비스 스콧이 지난해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공연이 어렵게 되자 포트나이트 안에서 콘서트를 열었고, 소위 대박이 납니다.
총 45분 공연을 통해 약 2000만달러(한화 약 220억원)를 벌어들입니다. 분당 5억원을 번 셈인데요. 이는 그의 오프라인 공연 대비 10배 이상 매출입니다. 당시 동시 접속자는 최대 1230만명, 누적 관람자 수는 2770만명에 달했죠.
이후 포트나이트의 개발사 에픽게임즈는 아예 공연이나 참여형 이벤트를 개최할 수 있는 휴식공간인 '파티로얄' 모드를 정식으로 만듭니다. BTS도 포트나이트 파티로얄 모드로 '다이너마이트'의 안무를 공개한 적 있습니다.
두 게임 역시 코로나 특수를 누렸습니다. 마인크래프트는 2020년 누적판매 2억장을 돌파해 단일 게임 사상 세상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게임으로 등재했습니다. 2020년 3월에 출시한 동물의 숲은 언택트 붐에 중국발 생산 차질 이슈까지 겹쳐 한때 프리미엄까지 붙은 과거가 있죠. 출시 직후 월 판매량 500만장을 기록했습니다. 콘솔게임 사상 최대 월간 판매량이죠.
두 게임 모두 가상세계 구현의 완성도가 높습니다. 마인크래프트는 로블록스와 콘셉트 면에서 유사합니다. 블록으로 이뤄진 플랫폼 게임이며, 이 안에서 세상을 자유로이 제작하고 다양한 탐험이나 생활을 즐기는 게 가능하죠. 인터넷 방송 스트리밍으로도 활발히 이용돼 어린이들에게도 매우 친숙한데요. 이 때문에 월드 비전은 아프리카 어린이들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마을을 마인크래프트로 건설하는가 하면 지난해 우리나라 정부는 마인크래프트 청와대 맵을 만들어 아이들을 초대하기도 했습니다.
나만의 섬을 꾸려나가며 생활하는 게 주요 콘텐츠인 동물의 숲은 시각과 경험 측면에서 가상세계 구현도가 뛰어납니다. 닌텐도라는 거대 회사 작품이며 이미 존재하던 타이틀이기에 게임적 완성도나 비주얼 요소가 훌륭한데요. 이에 힘입어 다른 사용자를 자신의 섬에 초대하거나 다른 사용자의 섬에 놀러 갈 수 있는 소셜 요소가 각광받았습니다.
발매 초기에는 홍콩 민주화 시위를 벌이거나 결혼식을 재현하는 모습도 발견됐죠. 미국 대선 때는 바이든 당시 대통령 후보가 출몰(?)하기도 했고요. 비주얼적 강점이 있다 보니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발렌티노는 신상품 패션쇼 무대로 동물의 숲을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국내 기업으로는 LG전자가 올레드TV를 홍보하는 '올레드 섬'을 만든 게 대표적이죠.
메타버스와 함께 주목받는 플랫폼 게임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게임 제작의 전통적 문법은 꽉 짜여진 세계관과 일방형 구조입니다. 제작자는 매력적인 스토리와 플레이 동선을 제공하고 유저는 이에 따릅니다. 그러나 위 게임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기본적인 색깔이나 콘셉트 정도로 차별점을 주고 세계관은 열어둡니다. 오히려 다중세계(multiverse)를 지향하고 새로운 장을 표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는 특정 세계관을 수행하는 캐릭터로서 접속하는 게 아니라 현실의 나를 연장하거나 '부캐' 기능의 아바타 성격을 유지합니다.
플랫폼만 제공하고 유저에게 적극적 개입을 유도하는 점도 특징입니다. 이용자가 직접 콘텐츠를 제작하도록 해 지속과 순환을 이끕니다. 로블록스 외에도 제페토에는 패션 아이템 등을 만드는 '제페토 스튜디오'가 존재하며, 포트나이트에는 유저가 직접 만든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는 '크리에이티브' 모드가 있습니다. 마인크래프트나 동물의 숲 역시 세계에 대한 유저 개입 요소가 무궁무진하죠. 게다가 디자인이나 개발 등 관련 지식 없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도록 직관적 인터페이스를 구현한 자체 템플릿을 제공한다는 점도 중요하죠. 개발 역량은 여기에 쏟습니다.
가상세계에서 현실과 연동되는 경제활동,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은 유저 참여 및 플랫폼 지속성에 강력한 동인이 됩니다. 이용과 공급이 선순환을 이뤄 성장하는 '양면시장 네트워크 효과'죠. 로블록스는 현재 이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플랫폼 게임입니다. 로블록스가 메타버스를 가장 충실히 구현한 사례로 얘기된 이유기도 하고요.
콘텐츠가 변화합니다.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유저가 개입해 생산할 수 있도록 기업 역량은 최적의 플랫폼을 만드는 데 집중되고, 발생 수익을 배분해 선순환 구조를 만든다는 비즈니스 모델은 사실 친숙하실 겁니다. 이미 유튜브가 보여주고 있죠.
전통적인 콘텐츠 문법은 스토리 텔링(story-telling)이었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정해진 구조죠. 그러나 이는 허물어졌습니다. 허물어져 콘텐츠, IP 활용, 콜라보레이션의 폭도 넓어지고 있습니다. 이제 콘텐츠 경제를 이끄는 것은 단순 제작자도 소비자도 아닌 프로슈머(Prosumer)입니다. 메타버스가 기존 게임이나 가상세계와 다른 핵심 역시 경제활동 및 상호작용입니다. 스토리 텔링이 아닌 스토리 리빙(story-living)으로 콘텐츠 경험의 지각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도서
<메타버스 비긴즈>, 이승환 지음, 굿모닝미디어, 2021.
<메타버스가 만드는 가상경제 시대가 온다>, 최형욱 지음, 한스미디어, 2021.
<메타버스의 시대>, 이시한 지음, 다산북스, 2021.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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