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의 체제와 사상을 구성하고 있는 자본주의는 어떻게 생겨났을까요? 지금이야 국가와 사회, 개인을 막론하고 보편적 구성 원리로 받아들이고 있는 자본주의지만, 그 역사는 길게 잡아야 중세 이후로 500년 안팎입니다. 인류의 역사로 볼 때 자본주의로 살아온 세월은 그리 길지 않은데요. 이런 물음도 가능합니다. 물질적 가치 및 이윤의 추구는 언뜻 도덕적 삶과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얻은 걸까요? 그 배경에 존재하는 당대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지난 화에서 자본주의(capitalism)에 대해 자본의 가치와 활용을 긍정하는 사상 내지 체제로 얘기한 바 있습니다. 이는 개념 정립을 돕고자 오늘날 자본주의의 의미를 함축적으로 정리해본 것인데요. 사실 자본주의에 대한 정의는 오늘날 학자 사이에서도 다양하게 내려지며, 딱 부러지게 합의하진 않습니다.
이는 '자본주의'라는 말이 비로소 출현한 산업혁명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표적으로 오펜하이머는 '자본 및 그 이익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 조직'으로 정의했고, 좀바르트는 '영리 추구와 경제적 합리주의 및 자본가의 노동자 지배'로 설명한 바 있습니다.
좀 더 미시적으로 지적된 자본주의의 요소나 성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리를 추구하는 자본가 위주의 생산 방식,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와 사적 이익을 목적으로 하는 지배 관계, 개인주의적 경제 질서, 대규모 자본가나 기업의 출현 등입니다.
이들 모두 자본주의를 설명하거나 자본주의의 얼굴을 그려내는 일종의 윤곽들입니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자본주의의 핵심을 부분적으로 묘사하는 표현이죠. 물론 어느 하나 그릇된다기보다 모두 모아 총체적으로 이해할 때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보다 정확히 그릴 수 있다는 의미에서입니다.
핵심은 '자본주의'라는 용어가 이전과 대비되는 당대 사회를 분석하고자 나온 해석적 표현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주목하는 부분은 다를지언정 동의하는 부분은 자본주의가 상품 생산을 통한 경제체제로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 사회와 대비되는 자본주의의 특징은 상품 경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중세 이전에도 상거래는 이뤄졌는데 상품 경제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상품(商品): 사고파는 물품. 장사로 파는 물건. 매매를 목적으로 한 재화. 상거래를 목적으로 하는 물건.
먼저 자본주의처럼이나 익숙해 마치 '물건'처럼 여겨지는 '상품'의 뜻부터 짚어보겠습니다. 상품은 팔기 위해 생산하는 물건입니다. 자신이 쓰거나 단순교환을 위해 만들었다면 엄밀히 상품으로 보기 힘듭니다.
물론 물건의 생산은 자본주의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자급자족 경제에서는 직접적인 욕망 충족을 위해 생산했습니다. 중세 도시 경제에서는 다른 재화와의 교환을 위해 물건을 생산했습니다. 이를 두고 먼저 대금을 치렀다는 의미에서 '선대제'로 부르기도 하는데, 쉽게 주문 생산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대금으로 화폐를 받지만, 이는 이윤을 남기거나 부를 축적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화폐를 활용해 다시 욕망 충족을 위한 물건과 바꾸기 위해섭니다. 교환을 위한 생산이죠.
생산을 둘러싼 연쇄의 기본은 근대 자본주의 이전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본주의에선 잉여가치, 이윤을 얻기 위해 상품을 생산합니다. 또한 이전에는 이러한 생산 양식과 이윤 추구의 일반화에 대해 정치적·윤리적 간섭이 많았죠.
그렇기 때문에 상공업은 이윤 추구를 위해 장려되기보다 교환이나 납품, 단순 소상품 생산 형태에 머물렀습니다. '자본가'라는 계급도 없었습니다. 유통만을 담당하는 상인이 있고, 선대제 수공업자는 생산자이자 경영책임자였죠. 물론 오늘날과 비교해 '경영'이라고 할만한 요소는 크게 갖지 못했지만요.
이제 살펴볼 것은 정치적·윤리적으로 가로막혔던 이윤 추구가 어떻게 사회적 합의를 얻어 자본주의로 나타나게 됐는지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재물에 대한 탐욕은 대표적인 악덕(惡德)입니다. 자본주의의 싹이 튼 중세 유럽을 기준으로 얘기해볼 텐데요.
먼저 언급할 사상가가 있습니다. '자본주의'를 두고 드물게도 정신적 태도로 정의한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1864~1920)입니다. 그는 근대 자본주의를 '직업으로서 조직적·합리적으로 합법적 이윤을 추구하는 정신적 태도'로 정의한 바 있습니다. 자본주의 체제는 이런 태도 아래 이뤄지는 상품 생산 유통 경제라고 말했죠.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 아래 자본주의적 사고관이 생겼다는 마르크스와는 대비됩니다. 생각이 물질을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관념론(베버), 물질이 생각을 지배한다는 의미에서 유물론(마르크스)으로 둘의 자본주의에 대한 태도를 대비하기도 하죠.
베버가 자본주의의 뿌리로 말하는 '정신적 태도'는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입니다. 프로테스탄티즘은 16세기 종교개혁과 함께 루터, 칼뱅을 중심으로 기존 가톨릭의 개혁을 추구하며 내세운 기독교 사상입니다. 성직자의 권위를 떠나 오직 신앙과 교리(성서)에 따라 금욕적 삶을 추구할 것을 설파했습니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 중 직업관과 예정론을 중심으로 한 칼뱅주의가 중세 유럽에서 부의 추구를 긍정하는 사고의 뿌리로 판단했습니다.
체제만큼이나 사고 역시 사회를 구성하는 중요한 원리입니다. 단적으로 인간의 노동력 역시 상품으로 거래되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는 이에 합의하는 구성원들의 사고 변화 없인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더 직접적으로 중세 유럽에서 재물에 대한 탐욕은 대표적인 악이었습니다. 기독교 중심 세계 속에서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에 따르자면 이웃에게 돈을 빌려주고도 이자를 받아선 안 됐죠. 또한 마땅히 인간이라면 개인의 이윤보다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 과거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내려오는 유럽의 가치관이었습니다.
베버의 판단이 옳다면 칼뱅주의는 위 두 가지 과제를 해결해 중세 유럽에 사상적 전환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바로 부의 획득과 개인의 이윤 추구에 대한 정당성이죠. 칼뱅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직업관과 예정론은 하나로 묶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는 각자 부여받은 소명이 있으며 이는 일상의 직업활동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루터에 의해서도 주창된 '천직' 개념입니다. 열심히 천직에 매진하면 구원이 가능하며, 그렇기에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는 말도 나온 겁니다.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열심히 직업활동을 해야 한다면, 이에 따른 부산물인 이윤의 획득 역시 인정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물질적 이윤 역시 축복이며 선한 것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고, 사유 재산을 인정합니다.
물론 탐욕을 경계하고 검소할 것과 재산은 공공선을 위해 쓰여야 한다고 강조하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면 오히려 어느 누구도 나눠주는 사랑의 실천에 나서지 못하며, 근면히 일하지 않고 나태해진다고 지적하죠. 이러한 자본주의적 가치관은 칼뱅으로부터 약 100년 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유명한 정치경제학자 애덤 스미스에 의해 좀 더 다듬어집니다. 공공선은 개인의 이윤 추구로 달성될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매일 식사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 — 애덤 스미스 <국부론>
부와 이윤의 정당성은 천직 개념으로 확보했습니다. 개인의 이윤 추구가 공공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도 어느 정도 논증했죠. 중세 이후 유럽에서 부와 개인의 이윤 추구에 대한 정당성 및 정치적·윤리적 합의를 얻는 흐름입니다.
순서를 따지자면 칼뱅주의는 이미 나타나던 중세의 격변과 자본주의의 새싹을 바탕으로 한 개혁안으로 보는 게 타당합니다. 봉건제의 해체, 농민 봉기와 내전, 가뭄과 질병(흑사병)으로 인한 농촌경제 몰락, 위상을 잃어버린 기존 종교, 신대륙 개척과 교역으로 인한 상업 및 부르주아의 위상 상승 등이죠. 이러한 혼란을 개혁으로 묶어 해결하려 한 것이 칼뱅과 칼뱅주의의 시도입니다. 루터 역시 문제의식과 큰 방법론에선 뜻을 같이하나 칼뱅과 달리 기존 봉건제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는 차이가 있죠. 자본주의의 적용에 대한 사회적 배경과 흐름은 다음 화에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 다음은 '자본주의는 어떻게 사회에 적용됐을까?'가 이어집니다.
도서
<세계화와 변화하는 자본주의>, 황준성·강달원 지음, 시그마프레스, 2011.
<역사와 쟁점으로 읽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교육연구회 엮음, 시그마프레스, 2019.
<역사의 비교>, 김대륜 지음, 돌베개. 2018.
<정념과 이해관계>,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노정태 옮김, 후마니타스, 2020.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막스 베버 지음, 박문재 옮김, 현대지성,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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