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득실표는?

자본주의 체제의 명과 암
5
12.15.2021
박중현
에디터
에디터의 노트

앞으로의 자본주의를 그려보기에 앞서 자본주의 체제가 인류 역사에 남긴 대표적 변화와 의미를 검토합니다. 세계를 단일한 자본주의 체제로 파악했던 사회 경제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저서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을 토대로 자본주의가 가져온 집단적, 개인적 삶의 변화를 살펴봅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가려지기 쉬운 시장 외부효과를 '폴라니의 역설'과 함께 돌아봅니다.

검토1️⃣

자본주의는 '묵시록의 네 기사'를 물리쳤는가?

미국 예일대 석좌교수를 지냈던 고 이매뉴얼 월러스틴(1930~2019)은 세계체제의 차원에서 자본주의 역사를 분석해 <근대세계체제> 시리즈로 유명한데요. 1991년 진행한 대학 강의를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 문명> 전반부에서 그는 자본주의 문명의 역사적 성과에 대해 '득실표'를 따져봅니다. 먼저 얘기할 것은 '묵시록의 네 기사'로 표현된 인류의 오랜 과제, '역병' '기근' '내전' '전쟁'을 자본주의가 물리쳤다는 믿음입니다.

역병에 대한 성과는 인정합니다. 자본주의의 등장과 과학의 발달로 인간 수명이 늘어나고 대규모 질병에 대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세 신항로 개척 및 국제무역으로 발생한 전염병의 발생 및 이로 인한 아메리카 원주민의 사망은 무시할 수 없으며, 인구 증가 및 환경 오염으로 발생할 새로운 질병의 출현에 대해서도 경고했죠.

기근에 대해서도 비슷합니다. 과거엔 가뭄과 같은 재해로 겪었다면, 환경에 대한 개입으로 이를 해결했습니다. 그러나 장기적 위협은 커졌으며 삶의 수준에 따라 이에 대한 노출도 차등적이리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이권 다툼 때문에 벌어지는 내전의 경우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발명품이라고 표현합니다. 전쟁은 물론 자본주의의 전유물은 아니지만, 히로시마 원자 폭탄이나 걸프전과 같은 현대전의 영향은 자본주의 이전과 비교할 수 없다고 꼬집습니다.

검토2️⃣

집단 삶의 변화

모든 역사적 체제는 사회적 정당성을 얻어낼 필요가 있습니다. 중심 가치나 구조, 주체가 바뀌기 때문인데요. 자본주의는 기존 왕과 귀족 중심의 봉건 사회에서 자본가와 시장이 주체가 되는 사회로 변화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존 폐해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질서 체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자유주의, 민주주의 발전이 따라왔죠.

자본가 혹은 개인의 이익활동을 긍정하고 이에 따라 국가의 기능도 정의되다 보니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몽테스키외에서 발전한 삼권분립 등도 주창됐습니다. 왕권신수설과 절대주의 국가의 정치적 정통성도 몰락한 상태에서 자본주의 국가의 지배 근거를 확보하고 구성원을 결집하기 위해 이전과 다른 국민국가(사회·경제·정치 공동체) 형태가 출현했죠.

자본주의의 성과 중 하나는 보편주의의 확립입니다. 보편적이고 영구적인 진리가 존재한다는 사상이며, 대표적인 것이 인권과 과학, 능력주의죠. 이들이 사회 진보에 기여한 바는 분명합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것은 이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그 역할을 수행했다는 점입니다.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정당화하고 '만물의 상품화'엔 민주와 자유의 기표가 씝니다.

'진보'의 개념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팽창은 패턴이자 공식이 있습니다. 월러스틴은 '기독교의 전도' '유럽어의 강요' '특정 기술과 관행의 주입'으로 표현하는데요. 이러한 과정이 진보와 보편주의의 이름으로 '불가피한 것'을 넘어 '발전적인 것'으로 개념화됩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간과되는 불평등이나 축적의 불합리성, 개인·계급 그리고 가치의 소외는 은폐된다는 거죠. 이러한 양상은 개인 삶의 영역에서 잘 포착됩니다.

검토3️⃣

개인 삶의 변화

자본주의가 물질적으로 안락한 삶을 제공한 것은 자명합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단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노미 현상이나 소외, 정신질환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본주의가 낳는 핵심 가치나 문제는 모두 '차등'에서 발생합니다. 자본주의가 발전을 추동하든 문제를 야기하든 기여요인이든 문제원인이든 결국 차등입니다. 보상이든 도태의 합리화든 말이죠. 문제는 보편주의의 이름으로 자본주의의 혜택을 모두 보는 것처럼 조명된다는 점입니다. 못 보면 낙오자인 거고요.

빈곤은 정말 사라졌을까요? 물질의 안락함은 모두가 누리고 있을까요? 월러스틴은 농민과 도시 빈민의 경우 500년 전 그들의 조상보다 못 먹고 있다고 표현합니다. 일생의 노동 시간은 길어졌지만 총 보수는 감소했다고도 말하죠.

통계 및 표본의 오류도 지적합니다. 사회과학은 세계 경제 인구 중 10~15%에 해당하는 '중간계층'의 연구에 집중한다는 점이죠. 산업 노동자들의 수입은 과거에 비교해 상승했으나 그들이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낮다는 점도 비슷한 지적입니다. 능력주의 이데올로기 역시 계층이동을 발생시키긴 하지만 거시적 양극화 추세에 근본적 변화를 발생시키진 않죠.

보편주의의 이름으로 이데올로기가 재단됐다는 점도 문제입니다. 인류사에서 자본주의와 함께 민주주의, 자유주의가 가져온 인권의 진보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구체적 현실에서 인권 침해는 여전하거나 더 심각하다고 월러스틴은 말합니다. 소위 '선택과 집중'으로 자본주의에 도움 되는 쪽으로 가치를 몰아주고 그 바깥은 부정적 영역으로 내버려 뒀다는 거죠.

대표적인 것이 인종차별주의와 성차별주의입니다. 물론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자본주의는 독특한 형태로 둘을 발전시켰다는 겁니다. 인종차별주의는 증오나 박해가 아니라 차별받는 인종 집단을 경제 내에 포함시키되 하층 노동자 집단으로 구분해 배치하는 식으로 작동합니다.

여성의 노동 역시 낮은 생산성에 낮은 보수를 주는 식으로 정당화했죠. 자본주의에서 보수가 낮은 노동이란 질 낮은 노동이며, 임금노동이 삶의 영위 수단인 자본주의에서 이는 차별을 정당화합니다. 전통적 가사 노동의 지위는 더욱 말할 것 없고요. 인권은 자본주의가 옹호하는 가치 아래 주어지는 보상인 셈입니다.

키워드🗝

시장 외부효과

시장경제 체제와 보편주의 아래 발생하는 자본주의적 문제의 은폐는 좀 더 가깝고 실증적인 사례를 찾아볼 수도 있습니다. 살펴볼 것은 '시장 외부효과'입니다.

시장 외부효과란 시장이 움직여서 발생하는 특정 결과입니다. 긍정적 경우도 있지만 대개 부정적입니다. 포인트는 이를 시장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자본주의적 목표(시장요소)를 위해 간과된다는 점입니다.

폴라니의 역설

산업혁명에 대한 분석으로 유명한 <거대한 전환>을 쓴 칼 폴라니는 '폴라니의 역설'을 통해 시장 외부효과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시장체제엔 자율적으로 자기조절 능력이 있다고 하는데, 위 시장 외부효과를 볼 때 그게 가능하냔 거죠. 오히려 시장체제가 강화될수록 한낱 상품으로 전락한 인간과 자연은 파괴의 길로 접어든다는 겁니다.

착취식 플랜테이션 농장에서 한 잔에 해당하는 커피를 얻어내는 과정이나, 한 장의 티셔츠 생산을 위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일이 시장 외부효과가 점철된 적절한 예입니다. 요지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체제 역시 노동력 착취나 환경파괴 비용 등을 시장 밖에 전가함으로써 유지되고 있는 것 아닌지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자본주의는 과연 변화할 수 있을까요?

📢 다음은 자본주의의 미래를 점쳐보는 '앞으로의 자본주의는?'이 이어집니다.

참고한 자료

도서

<경제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가>, 로버트 하일브로너·레스티 서로 지음, 조윤수 옮김, 부키, 2009.

<세계문제와 자본주의 문화>, 리처드 로빈스 지음, 김병순 옮김, 돌베개, 2014.

<역사적 자본주의/자본주의 문명> 이매뉴얼 월러스틴 지음, 나종일·백영경 옮김, 창비, 1993.

<정념과 이해관계>, 앨버트 O. 허시먼 지음, 노정태 옮김, 후마니타스, 2020.

똑똑 Clipping📌

피드백

피드백

이어지는 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