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화에선 자본을 투자해 이윤을 창출하는 자본가의 등장과 상업(유통)을 중심으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봉건사회 상업 자본주의를 짚어봤습니다. 이어서 유통뿐 아니라 생산에 있어서도 사회의 지배적 체제가 된 산업 자본주의부터 변화의 주요 흐름을 살펴봅니다. 각 시대의 사건, 특징, 학자를 토대로 자본주의 역사의 핵심을 정리해볼까요?
'자본주의' 앞에 붙는 명명은 해당 자본주의 체제를 이끄는 핵심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집니다. 예를 들어 중상주의 시대 자본주의는 유통 위주의 상업이었다면,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는 생산을 포함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산업 자본주의는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부르주아(자본가)가 생산을 주도합니다. 자본이 기계에 투자되고, 제조업을 기반으로 공장 시스템이 자리 잡습니다. 자동화와 분업을 통해 대량생산체제를 갖춰 자본주의 체제를 여는 분기점으로 꼽히죠.
이를 주도한 사건은 역시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입니다. 기후변화로 찾아온 추위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석탄이 새 연료로 떠오르고, 석탄 채굴 과정에서 발생하는 지하수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증기기관이 발달하죠.
영국은 석탄 매장량이 풍부한 나라였습니다. 법률과 재산권, 은행, 금융회사 등 자본주의적 양식도 갖추고 있었으며, 흑사병으로 인한 노동자 감소로 임금 수준도 높았습니다.
이들은 기업가들에게 혁신을 추동하는 요소가 됐습니다. 방직기나 증기기관 등을 통한 기술, 철도 발달에 힘입어 공장제와 분업이 심화돼 생산성이 급격히 향상됩니다. 이윤 확보 자세에 있어 시장 독점뿐 아니라 생산비용 절감이 대두되죠. 식민지·노예무역으로 쌓아 올린 부가 이를 뒷받침했고요.
산업혁명으로 인한 공장제 대량생산 분업체제, 일명 '포드주의'는 소수의 자본가와 다수의 단순 노동자로 사회 계급을 재편했습니다. 극도의 이윤 추구 과정에서 노동자는 자본가 및 기계에 종속되는 등 노동자 인권 문제가 발생했죠. 어린이나 노동에 혹사되거나 근로기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했습니다.
빈부격차 또한 심해져 마르크스나 엥겔스가 사회주의의 길을 모색하는 계기가 됩니다. 그러나 신기술과 새로운 생산조직, 사회적 변화 등과 맞물려 세계적으로 시장 영역은 확대되고 자본주의의 영향력 또한 강화됩니다.
초기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학자는 역시 애덤 스미스(1723~1790)입니다. 상품의 생산 과정에서 추구하게 된 이윤은 자연히 생산한 상품을 자유로이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의 자유를 요구합니다.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의 이기심이 '보이지 않는 손'(가격 형성)에 의해 주도돼 시장을 이끌어갈 것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분석은 오늘날 여전히 유효합니다.
어떤 사람도 구매자 없는 곳에 돈을 투자하지 않을 것이며 어느 누구도 필요하지 않은 제품을 공급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필요와 수요가 있는 곳에서는 투자자도 필요한 재화나 원하는 용역을 공급할 것이다. — 애덤 스미스
산업 자본주의와 이후 수정 자본주의 사이로 언급하면 좋을 자본주의 체제는 독점 자본주의입니다. 소수 대기업이 시장을 독점했으며, 강력한 은행 및 금융 제도의 등장으로 금융자본과 대기업이 결합하는 양상이 나타나 '금융 자본주의'로도 불립니다.
19세기 말에 이르자 그간의 자유 경쟁 과정에서 약소기업들은 도태됩니다. 시장에는 대기업만이 남게 됩니다. 결국 대기업 싸움으로 번지고 과도한 경쟁 속에서 모두가 치명타를 입습니다. 그 결과 서로 경쟁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이윤을 확보하고자 카르텔, 트러스트, 콘체른 등 상호 독점을 위한 기업연합의 형태가 등장합니다.
자본주의 시장 경쟁 체제가 지배적으로 나타난 시기입니다. 자본은 대기업에 집중되고 자본가, 주주, 노동자, 경영자 등으로 구성원 역할도 세분화됩니다.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이 금융자본가들에게 넘어가는 기업 소유자-생산 책임자의 분리도 이뤄지죠.
중소기업이 몰락하고 독점자본 및 대자본의 횡포가 횡행합니다. 실업자가 늘어나고 노사갈등이 심해집니다. 과잉된 생산으로 인해 시장 지표가 악화돼 1873년에는 대불황이 나타납니다. 시장 실패 속에서 이제까지의 자유 방임과는 다른 계획경제 또는 통제경제론이 부상합니다. 시장 자유주의와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는 사회주의 체제도 등장하고요.
서구 열강을 중심으로 제국주의적 침략이 활발히 이뤄진 것도 이 시기입니다. 소싯적 근현대사를 통해 다양한 열강이 다양한 방법으로 약소국에 개항 및 수교를 요구했던 것 기억나실 텐데요. 이 역시 자국 시장의 생산과잉과 경기불황을 무역을 통해 풀어보려 했던 시도입니다. 물론 등가교환이 아닌 부등가교환을 통한 일방적 이윤 착취지만요. 강제적이나마 이뤄진 수교 및 근대화는 자본주의의 세계화에 기여합니다. 그리고 대외적으로 팽창한 식민지 경쟁은 급기야 1차 세계대전을 발발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죠.
개념
소수 대자본에 의한 독과점과 이에 따른 폐해 때문에 나타난 시장 실패를 해결해야 한다는 연구는 19세기 때부터 이뤄집니다. 사회주의는 아예 다른 노선으로 변경한 케이스지만, 대다수 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자본주의를 고수하되 '수정'해보기로 합니다.
당시 시장 실패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1929년 미국에서 발생한 대공황입니다. 상황은 1873년 대불황과 유사합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호황에 기업은 생산을 늘리고 사람들은 빚을 내면서까지 주식에 투자합니다. 그러나 또다시 생산물이 시장에서 다 소비되지 못하고 경제공황이 발생합니다.
생산물의 가치가 절반으로 떨어지고 미국 노동자 네 명 중 한 사람이 실업자가 됩니다. 100만이 넘는 가구가 대출 상환에 실패해 집을 잃고 거리로 나앉습니다. 은행까지 대거 파산해 약 900만명분의 예금이 휴짓조각이 됩니다.
대공황에 따른 수정 자본주의적 처방은 1933년 미국 제32대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시행한 뉴딜 정책입니다. 지금도 '○○뉴딜'이라는 식으로 곧잘 등장하는 뉴딜의 핵심은 정부 지출을 통한 수요 창출입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각종 공공사업을 마련해 실업자를 구제하고 소득 및 수요를 안정시키는 한편 노동자의 권리나 사회 취약층 복지를 증진하는 등 사회안전망을 마련합니다. 기업을 살리고 민간 소득을 증가 시켜 소비 및 경기회복에 이어지도록 정부가 시장에 개입한 거죠.
공공사업이나 사회보장 제도 등을 통해 시장에 적극 개입하는 '큰 정부'의 추구는 케인스(1883~1946)가 대표합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길 게 아니라 '보이는 손'의 개입이 필요하다며 애덤 스미스를 반박하고 나섰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 가격이었다면, '보이는 손'은 국가 또는 정부입니다.
케인스가 얘기하는 정부 개입의 필요성은 시장의 총 유효수요 부족입니다. 시장 체제엔 자본주의가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도록 스스로 작용하는 특성은 없다는 겁니다. 요컨대 시장이 성장하도록 건강한 파이를 키우는 메커니즘은 장착돼 있지 않다는 거죠. 그러므로 정부 지출을 통한 수요 창출로 침체된 경제를 자극하거나, 복지 및 사회안전망을 통해 생계 및 소득을 보조하는 것이 수정 자본주의의 방법론입니다.
이후 신자유주의가 대두하기 전까지 정부 지출은 국민 총생산(GNP)에서 상당 비율을 차지하게 되고, 2차 세계대전 이후 호황을 이끈 자본주의의 변화 요인 중 하나로도 제기됩니다. 복지나 국가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복지국가주의, 국가자본주의로도 불리죠.
도서
<경제학은 무엇을 말할 수 있고 무엇을 말할 수 없는가>, 로버트 하일브로너·레스터 서로 지음, 조윤수 옮김, 부키, 2009.
<미셸 보의 자본주의의 역사>, 미셸 보 지음, 김윤자 옮김, 뿌리와이파리, 2015.
<세계화와 변화하는 자본주의>, 황준성·강달원 지음, 시그마프레스, 2011.
<역사와 쟁점으로 읽는 현대 자본주의>, 경제교육연구회 엮음, 시그마프레스, 2019.
뉴스
이데일리